료미츠 «띵Thing»
난 원래 미신 같은 건 안 믿는다. 으스스한 얘기는 좀 무서워 할 때도 있지만, 그건 분위기를 타서 그런 거고. 내가 생각해도 난 좀 겁 없는 타입이다.
그 박스를 발견했을 때도 그랬다. 우린 구식 체육관에 있었는데, 시합 중에 루카와가 다리를 삐는 바람에 곤란하던 참이었다. 즉흥적으로 꾸린 모임이었기 때문에 우리 중에 파스를 챙겨 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비품실로 들어간 건 그래서였다. 가끔 여기서 놀다가 간혹 물건을 두고 가는 녀석들이 있었으니까. 어슬렁거리면서 선반을 뒤지고 있는데, 그게 보였다.
나는 곧바로 튀어나와서 여기에 이상한 게 있다고 했다. 미야기 녀석은 ‘그렇군요. 뭐 어쩌라는 건지?’ 같은 싸가지 없는 얼굴을 했지만 기특하게도 사쿠라기는 한번 확인해주겠다며 비품실로 들어가 내가 발견한 그것을 가지고 나왔다.
 
그것은 가로 세로 폭이 최소 1m는 될 것 같은 거대한 보드 게임이었다.
표지에는 불꽃을 뿜는 로봇과 미사일이 큼지막하게 그려져 있고, 그 위에는 ‘ZATHURA’라고 인쇄되어 있었는데 팝아트 풍이라서 영락없는 미국 블록버스터 영화 포스터처럼 보였다. 먼지를 털고 뚜껑을 열어보니 상자는 철제 보드 게임 하나를 제외하곤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다. 못해도 3kg는 나가는 고물 보드 게임이었다. 난 실망했다. “별 거 아니었네.”
“비싸 보이는데.”
미야기가 거들었다.
“근데 이건 어쩌다 찾은 거야, 밋치?”
사쿠라기가 물었다.
“파스 좀 찾는다고 선반 뒤지다가.”
그제야 난 하던 일을 마저 떠올렸다.
“선반에 파스통이 있기는 하더라. 그거 쓰자.”
“주인 있는 걸 그렇게 막 써도 되는 거예요?”
싸가지 없게 미야기가 태클을 걸었다.
“두고 간 사람 잘못이지.”
“뭐, 그렇긴 한데.”
“그렇게 나올 거면서 왜 시비야?”
갑자기 조용해졌다. 미야기가 입을 다물면 꼭 이런 분위기가 된다. 뭐야? 나는 다시 보드 게임으로 주의를 돌렸다.
다시 보니 이 보드 게임은 만듦새가 상당하다. 한눈에 봐도 우주선 탐사를 콘셉트로 짜인 것이다. 구불구불 길쭉하게 패인 홈마다 정거장 조형물이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는 게 마음에 든다. 출발선에는 로켓 두 대가 시동을 걸며 모험을 기다리고 있다.
보드 정면에는 태엽을 끼울 수 있는 구멍이 보인다. 그러고 보니 아까 상자를 열면서 떨어진 게 있었는데. 이게 그 구멍에 넣고 돌리는 건가보다. 나는 태엽을 끼웠다.
안쪽에서 뭔가 걸리는 듯하더니, 곧바로 “출발”이라 쓰인 빨간색 발사 스위치가 튀어 나왔다. 이쯤되자 미야기도 관심을 보인다. “그게 뭐예요?”
“몰라.”
그런 다음 나는 버튼을 누른다.
 
어릴 적에는 보드 게임을 자주 했었다. 농구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종종 아버지와 함께 캐치볼을 하거나 모노폴리를 했고, 그 기억은 여전히 내 안에 꽤 유용한 경험으로 남아있다.
농구부에 들어간 뒤에도 실내에서 시간을 때울 일이 있으면 부원들을 불러 모아다 보드 게임을 하고는 했었다.
그 뒤로도 종종 친한 녀석들을 집에 초대할 일이 있으면 구석에 있던 보드 게임을 꺼냈다.
뭐, 언젠가는 미야기와 함께 보드 게임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곧 하게 될 수도 있겠다. 슬슬 집에 초대해도 좋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는 항상 부 활동이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남처럼 헤어진다. 영 만날 일이 없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학교 바깥의 미야기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방과 후에 뭘 하는지 물어본 적도 없다.
미야기는 어떤 녀석이지? 예전에는 쉽게 대답할 수 있었는데, 요즘은 영 껄끄러운 문제다. 이게 다 미야기 녀석 때문이다. 그 녀석이 농구부 부장이 된 뒤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우고 있다.
한 가지 확신하는 것은 보드 게임을 하게 된다면 내가 미야기를 이길 게 빤하다는 것이다.
장담컨대 미야기는 보드 게임하고는 영 상성이 맞지 않는다.
이런 느낌은 틀리는 법이 없다.

띵. 보드판 안에서 맑은 종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안쪽 홈에서 카드 한 장이 튀어나온다. 레스토랑 번호표를 뽑는 기분이다. 카드를 뽑는 동안 로켓 한 대가 천천히, 태엽 돌아가는 소리를 내면서 앞으로 전진한다.
나와 미야기는 카드를 읽는다. ‘동료가 5회 동안 동면에 들어간다.’
“그렇다는데?”
내가 입을 여는 순간, 사쿠라기가 공룡처럼 고함을 지른다.
“밋치!!! 료칭!!!”
고개를 돌리자마자 믿을 수 없는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비품실 문이 하얗게 얼어붙기 시작한 것이다. 우윳빛 성에가 삽시간에 바닥을 뒤덮더니 순식간에 문틈 사이까지 빼곡히 들어찼다. “야, 여우!! 여우 너 괜찮냐!” 사쿠라기가 포효하며 문으로 돌진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제 비품실 문은 거의 냉동고 입구처럼 보인다.
나는 얼빠진 얼굴로 카드를 내려다보았다. ‘동료가 5회 동안 동면에 들어간다.’ 동료라니… 루카와를 말하는 건가?
“사쿠라기. 혹시 루카와가 저 안에 들어갔냐?”
“밋치, 그럼 여태까지 내가 뭐 하고 있는 걸로 보였어?”
사쿠라기가 펄펄 뛴다. 시끄러워, 인마. 나도 상황 파악 좀 하자고. 미야기가 뒤늦게 그를 진정시킨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우리는 얼어붙은 비품실 문을 여는 데 성공한다. 동시에, 눈앞의 광경에 얼어붙는다.
루카와는 선반 위쪽을 살펴보며 손을 쭉 뻗고 있다. 부상을 입은 다리에 일부러 힘을 빼고, 반대쪽 다리에 힘을 실은 채 비스듬한 각도로 서 있다. 자세가 너무 리얼하다. 아무것도 모른 채 선반을 살피다가 순식간에 얼어붙은 것 같다. “여우가 냉동식품이 됐잖아….” 사쿠라기가 중얼거리고는 말이 없어졌다.
나는 사쿠라기를 데리고 나와서 방금 벌어진 일을 설명해준다. 사쿠라기는 미심쩍은 얼굴로 카드를 한 번 들여다보곤, 나를 질책한다.
“밋치, 말이 되는 소릴 해….”
“역시 그렇지?”
나도 바보 같이 웃으며 대답한다.
“그런 일이 벌어질 수야 없겠지?”
그럼 루카와는 어떻게 된 거라고 생각해야 하지? 갑작스러운 냉동 공기 때문에 불쌍하게도 동사하고 만 건가?
미야기가 허옇게 질린 얼굴로 돌아온다.
“미, 미츠이상….”
그가 덜덜 떨며 체육관 출구를 가리킨다.
“바깥이 이상해요.”
“무슨 소리야?”
“그래. 빨리 구급차 불러, 료칭!”
“바깥이 이상하다고.”
미야기는 굳은 표정으로 우리 둘을 확 잡아끈다. 악력이 장난 아니다. 아파서 악 소리를 냈는데 꿈쩍도 않는다. 안 그래 보여도 미야기는 은근 힘이 세다.
미야기는 말없이 우리를 문 앞에 세워두고 체육관 문을 열어젖힌다. 왁왁 소리를 지르던 사쿠라기도 팔뚝 때문에 엄살을 부리던 나도 그대로 멈추어 선다. 바깥이 깜깜하다.
벌써 밤인가?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본능적으로 안다. 눈앞에 펼쳐진 깜깜한 밤하늘은 우리가 알던 일상적인 풍경과 너무도 다르다. 눈앞의 풍경은 그러니까, 좀 더 공허하고, 깜깜하고, 별도 너무, 너무 많고…. 거대한 행성 하나가 발밑에서 솟구쳐 오른 순간, 우리는 숨을 죽인다. 사쿠라기가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쭉 빼고 아래를 내려다본다.
“없어.”
“없다고?”
내가 묻는다.
“없어.”
나는 사쿠라기 옆에서 고개를 쭉 빼고 아래를 내려다본다. 과연. 사쿠라기 말대로다. 땅이 없다.
지대가 통째로 뜯겨져 나온 것처럼, 우리는 공허한 공간을 부유하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체육관이 우주를 부유하고 있었다. 광활한 우주 한복판을.

우리는 보드 게임 앞으로 돌아온다.
“우린 좆됐어요.”
미야기가 심각하게 말한다.
“기다려봐.”
나는 상자를 샅샅이 뒤지고 게임기를 뒤집어 본다. 빙고. 역시 없을 리 없다. 상자 뚜껑 안쪽에 게임 설명서가 끼어 있었다. 나는 설명서를 살펴본 다음 미야기에게 건넨다. 사쿠라기도 덩달아 옆에서 얼굴을 들이밀고 열심히 읽는다.
“그럼 여우 자식은 아직 안 죽은 거야?”
한참 종이를 쏘아보던 사쿠라기가 묻는다.
“그래, 일단 골인을 해야지.”
“골인을 한다고요?”
미야기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그래. 게임을 끝내야 원래대로 돌아간다잖아. 이 카드를 봐, 루카와는 적어도 우리가 다섯 번이나 카드를 뽑는 동안 내내 냉동 인간 상태로 있어야 한다고.”
내가 골인 지점을 가리킨다. 골인 지점에는 까만색 구체 형태의 아름다운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구체 위에는 큼지막하게 ‘ZATHURA’라고 쓰여 있다. 뭐라고 읽는 걸까. 아마 자투라나 잣후라쯤 될 것이다.
“그럼 여우 자식은 임시로 죽은 상태란 거지?”
사쿠라기는 심각하다.
“그래, 인마.”
“그럼 또 카드를 뽑아야 한다고요?”
“그래.”
“또 이상한 거 나오는 거 아녜요? 이거 취소 못 해요?”
“낸들 아냐? 취소할 수 있으면 진작 했지.”
그때 사쿠라기가 냅다 끼어든다. 이동한 내 우주선을 붙잡더니 억지로 출발지점으로 돌려놓기 시작한다.
“바보야, 이런다고 취소가 되겠냐?”
“혹시 모르잖아!”
출발한 우주선이 마침내 시작점으로 돌아가고, 우리는 숨을 죽인 채 보드판을 내려다본다. 아무런 징후도 없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사쿠라기가 비품실 쪽을 흘끔거린다. 문은 여전히 냉동 상태다.
“아무 일도 없는데?”
미야기가 입을 여는 순간, 띵. 그 종소리가 들린다. 잠시 후 보드가 카드 한 장을 뱉어낸다. 우리 셋은 머리를 맞대고 카드를 읽는다.
‘반칙! 한 턴 내내 유성 폭격을 맞는다.’
어라, 방금 천장에서 뭐가 떨어진 거지?

얼마 안 가 사쿠라기가 펄펄 날뛰기 시작한다. 특히 이 게임을 시작한 나에게 비난을 아끼지 않았다. 너무하네. 나도 이럴 줄 알았겠냐?
마지못해 남은 플레이어 자리를 책임지기로 한 미야기 녀석은 카드를 뽑는 내내 말이 없다.
유성우와 살인 로봇, 조르곤(뭔진 모르겠지만 외계 종족인 것 같다)의 습격을 연달아 받은 뒤 체육관은 완전 걸레짝이 됐다. 주변은 깨진 유리와 그을린 나무 조각 때문에 엉망진창이고, 우리는 겨우 보드의 중간 지점을 지나고 있다. 이 정도면 죽지 않은 게 기적이라고나 할까.
뒤늦게 깨어난 루카와는 상황 파악이 되지 않은 것 같다. “아까 시합은 저희가 이긴 건가요.” 같은 얼빠진 소리나 늘어놓는 것이다. 어이없는 녀석.
보드의 절반쯤 도착했을 때, 미야기가 나를 부른다. “잠깐 얘기 좀 해요.”
“무슨 일인데?”
미야기는 한쪽 눈썹을 치켜 올리고 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죠?”
“뭔 소리야?”
“이 보드 게임 일부러 꺼내온 거 아니냐고.”
나는 황당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야, 너까지 내 탓을 하고 싶냐? 일이 이렇게 될 줄 내가 알았겠냐고?”
“뭐, 그렇긴 하죠.”
그런데도 미야기는 영 탐탁치않은 눈치다.
“뭐가 걸리는데. 똑바로 말해.”
닦달하자 미야기는 머뭇거린다. 마지못해 입을 연다.
“전에도 저한테 보드 게임 하자는 얘기 했었잖아요.”
“엉?”
잠시 후 나는 불같이 화를 낸다.
“야, 그거랑 이게 같냐?”
“어쨌든 선배가 발견한 게 보드 게임인 건 알고 있었잖아요.”
“그래서 어쩌라고. 어쨌든 내 잘못이다, 이거냐?”
미야기는 끙 소리를 낸다.
“그건 아니고요. 그냥….”
“그냥 뭐?”
“아니에요.”
“뭐야, 똑바로 말해.”
“…그러니까 왜 그런 소릴 하고 그래요?”
미야기가 황급히 주제를 돌린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나도 초조했던 모양이다.
미야기 녀석과 싸우는 게 처음은 아니었지만 대부분 그렇게 심각하진 않았다. 이번은 다르다. 남자답지 못하긴. 뭘 물고 늘어지는 거야?
말다툼이 길어지고 우리는 거나하게 싸운다. 미야기는 나의 평소 태도를 지적하고, 나는 말도 안 되는 억지에 맞서 반격한다. 조금만 더 싸웠더라면 주먹을 들었을 것이다. 거의 그러기 일보직전이기는 했다. 사쿠라기가 끼어들지 않았다면 미야기와 우주 한복판에서 뒹구는 경험을 해볼 수 있었을 것이다.
“뭐야, 그만 싸워!! 둘이 뭐 하는 거야.”
사쿠라기는 보드를 통째로 들고 왔다.
“빨리 게임이나 끝내. 농구도 못 하고 이게 뭐야.”
나는 미야기를 노려본다.
“그래. 이 상황에 뭘 따지고 드냐, 너는?”
미야기는 고개를 젓는다. 날 포기하겠다는 투다.
“됐어요.”
“선배 차례예요.”
루카와가 얼른 보드를 내밀며 끼어든다. 이 자식들이. 지금 나랑 미야기 싸우는 거 안 보여? 나는 마른세수를 하며 혀를 찬다.
“그래, 뽑아주마. 뽑아준다고.”
나는 태엽을 돌린다. 잠시 후 띵, 하고 맑은 종소리와 함께 카드 한 장이 튀어나온다. 어라, 이번 건 황금색 카드군. ‘별똥별이 지나간다. 소원을 빌어라.’
“뭐야, 좋은 카드잖아?”
사쿠라기가 박수를 뻑뻑 쳤다.
“나도 소원 빌래. 밋치도 소원 잘 생각하고 빌어라.”
괴연, 저 멀리서부터 천천히 혜성이 다가오고 있다. 어슴푸레한 빛 무리가 벌써부터 체육관 오른편을 감싸기 시작했다. 나는 미야기를 흘끔거린다. 미야기는 등을 돌린 채 주머니에 손을 쑤셔 넣고 있다. 이쪽으로는 관심도 주지 않는다. 모처럼 황금카드까지 뽑았는데. 속 좁은 녀석, 게임 매너가 없구만.
나는 미야기에게 다가간다.
“야.”
“…….”
황금 카드를 팔락팔락 흔들며 말을 걸어본다.
“들었지? 너도 소원 빌고 싶으면 빌어라.”
미야기가 마지못해 대답한다.
“…그거 선배 소원만 해당 사항인 거 아녜요?”
“엉?”
“미츠이상이 뽑은 카드잖아요.”
“그런가?”
“그렇죠.”
미야기가 일부러 툴툴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우리가 평소와 같은 관계로 돌아온 것을 알아차린다. 거짓말처럼, 갑자기 마음이 누그러진다. 조금 전까지 싸웠던 일이 별 거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미야기가 했던 심한 말도 벌써 용서했다.
“평소에 너랑 보드 게임이 하고 싶긴 했는데 이런 걸 원하진 않았어.”
내가 말한다.
미야기는 한참 말이 없다.
“왜 하필 보드 게임인데요?”
“뭐, 그야… 우리 집에 있으니까?”
“…….”
“우리 그 정도로는 친하지 않냐?”
미야기는 다시 대답이 없다. 또다. 이 녀석이 입을 다물면 꼭 이런 분위기가 된다.
농구를 할 때는 당연하지만 농구 생각만 한다. 보드 게임은 다르다. 카드도 뽑고 주사위도 굴리고 말을 옮기다 보면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이런저런 얘기가 튀어나오는 법. 미야기와 농구를 할 땐 전력으로 미야기를 느낄 수 있지만, 그래서 농구만을 생각하는 미야기를 제외하고는 영 모르겠다.
그래서 이 녀석을 데리고 보드 게임을 하고 싶었나 보다. 가끔가다 영 모르겠는 얼굴을 하곤 하니까. 중요한 건 잘 말하지 않고 은근 비밀이 많은 녀석이니까. 그걸 알 수 있다면 꼭 보드게임이 아니어도 좋았다. 그걸 이 우주 한복판까지 와서야 깨닫다니. 그냥 나는, 미야기를 좀 더 알고 싶었을 뿐인데 말이다…….
눈부신 빛이 체육관을 따스하게 감쌌다. 눈앞이 새하얗게 물드는 동안, 아까 미안했다고 중얼거리는 미야기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서서히 빛이 가시자 엉망진창이 된 체육관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밋치! 소원 뭐 빌었어!!”
사쿠라기가 우다다 달려왔다.
그런 다음 갑자기 성질을 냈다.
“왜 그대로야! 집에 가게 해달라고 빌었어야지!!”
앗차, 소원 비는 걸 깜빡했다.
“인마, 네가 집에 가게 해달라고 빌었어야지.”
“난 빌었거덩?”
“안 빌었잖아.”
루카와가 끼어들더니 고자질을 했다.
“멍청이는 다른 걸 빌었어요.”
“루카와 넌 뭘 빌었는데?”
“조던 사인 농구공 달라고 빌었는데 안 이루어졌어요.”
“인마, 너라도 집에 가게 해달라고 빌었어야지.”
그때 사쿠라기가 빽 고함을 지른다.
“뭐야, 이 꼬맹이는? 밋치, 이 녀석 뭐야?”
모두가 사쿠라기가 고함을 지른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곳에는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어린 애가 농구공을 든 채 멀뚱멀뚱 서 있다. 흰 티셔츠에 운동복 반바지 차림이다. 얼마 가지 않아 나는 그 아이를 알아본다.
“뭐야. 저거 난데?”
갑자기 미야기가 허둥지둥한다. 보드판을 찾아 두리번거리더니 다급하게 태엽을 돌리면서 중얼거린다.
“이 게임 좀 빨리 끝내죠.”
“뭐야, 저기서 갑자기 내가 왜 튀어나왔지?”
다음 순간 중학생인 내 등 뒤에서 처음 보는 어린 애 하나가 빼꼼 튀어나온다. 음, 이건 모르는 얼굴이군.
“한 명 더 있었네. 안녕, 꼬맹아.”
“근데 왜 튀어나온 거지? 밋치, 혹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빈 거야?”
“그럴 리가 있겠냐.”
사쿠라기를 면박 주며 나는 고민한다. 흠, 특별한 소원을 빌진 않았는데. 혹시 혜성이 지나가는 동안 내가 소원으로 칠 만한 생각을 했던가?
“저 카드 뽑습니다? 진행 빠릿빠릿 좀 합시다?”
생각 좀 하려는데 이 자식이.
대놓고 흘겨보았지만 미야기는 꿋꿋하게 자기 카드를 뽑은 다음 곧장 내 쪽으로 보드를 민다. ‘2칸 앞으로 전진.’
미야기가 뽑은 카드는 무난하고, 이제 우리의 로켓은 보드의 2/3 지점을 통과하고 있다. 나는 투덜거리다가, 이내 생각을 고쳐먹는다. ‘뭐, 골인 지점까진 좀 남았으니까.’ 사쿠라기를 피해 또 다른 내 등 뒤로 숨는 초등학생 꼬맹이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말했다.
“그런데 저 꼬맹이 계속 보니 어딘지 좀 낯익다?”
“…….”
“진짜 왜 튀어나온 거지, 둘 다?”
“…….”
아마 남은 게임 동안 차차 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우리에겐 적어도 다섯 차례가 남아 있었고, 보드 게임은 이쯤부터가 가장 재미있어지는 법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내가 이길 거라는 예감이 든다. 갑자기 궁지에 몰린 듯 하얗게 질린 미야기의 저 영문 모를 표정에서부터 강렬한 확신을 느낀다. 역시 미야기는 보드 게임에는 소질이 없다.
그리고 이 게임이 끝날 즈음 아마 나는 미야기에 대한 많은 걸 알게 될 것이다.
띵, 하고 맑은 종소리가 울렸다. ■ <띵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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