료미츠 «납작한 나의 새»
새를 불러온 것은 아홉 살 때, 이름은 소타가 붙여주었다.
처음 불러왔을 때는 금방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겠거니 했었다. 소타가 허공에 손을 휘적거리면서 되는대로 지은 이름이라는 것을, 요컨대 ‘새とり’라는 것은 이름이라기보다 임시 호칭에 가깝다는 것을 료타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야기 소타는 미야기 료타의 세 살 많은 형으로, 그해에는 열두 살이었다.
소타가 새를 불러오던 순간을 기억한다. 그때 소타는 몸을 길쭉하게 뻗은 채 다다미 위에서 잠을 청하려 하고 있었다. 그의 하반신은 천장을 보며 똑바로 누워 있었고, 상반신은 비스듬하게 좌측으로 기울어 창가 쪽을 향해 있었다. 아직 그들 가족이 오키나와에서 살고 있을 때였다. 오키나와에 있는 고향 집은 언덕 위에 지어져 있어서 대문에서부터 바다를 훤히 내려다볼 수 있었는데, 소타가 쓰던 방은 그와 반대 방향이었고 창문 너머로 고개를 쭉 빼면 왕성하게 자라는 나무 두어 그루와 야트막한 산이 품고 있는 깊고 푸른 어둠 따위를 볼 수 있었다. 그때도 창 너머로 먹구름이 몰려오는 것이, 구름떼가 만들어내는 눅눅한 어둠에 한순간 젖어 드는 숲이 한눈에 들어왔었다.
료타는 불안해하고 있었다. 그의 형은 주말에 료타를 두고 친구들과 놀러나가는 대신 평일 저녁 시간을 할애해 농구를 함께해주겠다고 약속했었고, 어제저녁부터 간신히 그 약속을 지켜나가는 중이었다. 월요일, 화요일에는 방학 숙제를 핑계로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약속이었다. 오늘 비가 오면 또 다른 핑계가 생길 것이었고, 그 때문에 료타는 소타를 좌우로 흔들면서 더 늦기 전에 나가서 농구를 해야 한다고 설득하는 중이었다.
바람이 점점 거세지고 허벅다리에 맞닿은 다다미가 차갑게 느껴질 만큼 공기가 서늘해지고 있었다. 소타는 슬쩍 얼굴을 찌푸리면서 “비 오잖아….”하고 중얼거렸는데, 눈을 뜨지도 않은 채였다. 료타는 그렇지 않다고 소리쳤다. 하지만 소타의 말이 맞았다. 당장에라도 비가 올 것은 자명해 보였다. 이젠 시간이 별로 없었다. 보란 듯이 요란하게 나갈 준비를 하며 동향을 살폈지만 그때까지 소타는 몸을 슬쩍 뒤척일 뿐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참을성을 잃은 료타가 폭발해 소리쳤다.
“거짓말쟁이! 친구들은 하나도 안 귀찮아하면서!”
소타는 그렇지 않다고 중얼거렸지만, 잠결에 흔히 튀어나오는 성의 없는 목소리였다. 그가 움직인 것은 결국 료타가 혼자서라도 나갈 생각으로 일어났을 때였다. 부스스하게 눈을 뜬 소타가 귀찮은 기색으로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지금 코트에 네 친구가 가 있어.” 선심을 쓰듯 말했다.
“원래는 내 친구였는데 빌려줄게.”
그러면서 소타는 자신의 오랜 친구 이야기를 꺼냈다. 료타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러니까 저녁 시간이면 언덕을 내려와 함께 코트를 누벼줄 동네 친구나 그만한 나이의 남동생이 아직 없을 적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때 소타는 표현을 모호하게 사용했다. 처음에는 그 친구를 ‘만났다’고 말했다가,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만들었다’고 표현을 정정했다.
혼자 농구를 하는 건 아무래도 지루하니까 눈앞에 굉장한 상대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급박한 타이밍에 드리블이나 슈팅을 시도하는 척했다는 것이다. 정말로 누군가 앞에 있는 것처럼 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혼자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말 공을 빼앗길 것 같은 긴박감이나 긴장감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고, 그래서 언젠가부터 혼자 코트로 나갈 때마다 허공에 인사를 던지면서 상상 속의 친구에게 한 사람분의 대우를 해주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런데 금방 이런저런 녀석들을 만나버리는 바람에 그만 잊어버렸지 뭐냐.” 소타는 목소리를 바꾸어 으스스한 투로 덧붙였다.
“내가 꽤 오랫동안 두고 가서 걔가 좀 화가 나 있을지도 몰라.”
“그냥 지어낸 거지?”
료타가 마른침을 삼키며 물었다.
“믿기 싫으면 관둬.”
소타는 아예 팔베개까지 하고선 벌렁 드러누워 능청을 떨었다.
“어차피 곧 비도 오잖아. 료타, 오늘은 그냥 나가지 마라.”
그제야 료타는 방금 이야기는 순전히 그가 혼자 나가지 못하도록 소타가 지어낸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걷잡을 수 없는 배신감이 차올랐고 오기가 생겼다. “바보 취급하지 마!” 그는 일부러 발소리를 내며 거실로 나왔다.
농구공을 챙기고 운동화를 신은 다음 대문을 뛰쳐나왔다. 하늘은 묵직하고 흐렸지만 아직 비가 내리지는 않았다. 빠르게 언덕을 달려 내려와 이차선 옆에 난 동네 코트에 도착하기까지 십 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해안과 바짝 붙어 있는 위치라 그런지 언덕 위와 비교도 안 되는 거센 바람이 불고 있었다. 철창 너머로 이차선 도로가 보였고, 도로의 가드레일 너머로 뿌옇게 보이는 파도가 무시무시한 굉음과 함께 어렴풋한 빛무리를 내뿜으며 끝없이 부서지고 있었다. 잿빛으로 변한 바다는 흐린 하늘과 거의 비슷한 색깔이 되어 있었고, 산산이 부서지는 물거품은 구름에서 떨어져 나온 빗방울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였다.
농구공을 안은 채 료타는 잠시 텅 빈 코트 가장자리에 서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코트에 자기 혼자뿐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나니 소타에 대한 배신감이 다시금 차올랐다. 그는 비가 퍼붓기 전까지는 이곳에서 혼자 농구를 하기로 결심했다. 비에 쫄딱 젖은 채 집으로 돌아가 과시하듯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자신과의 약속을 너무도 쉽게 저버린 소타의 방만을 꾸짖고 싶었다.
료타는 자세를 낮추고 드리블을 시작했다. 퉁, 퉁, 공을 튀기는 소리가 텅 빈 코트를 울리며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먹구름이 투과하는 우중충한 빛 때문에 라인 위로 드리운 료타의 그림자는 너무도 희미해서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사사사 바람이 불고 풀이 허리를 꺾으며 길게 드러누웠다. 어느 순간 료타는 공기가 차가워진 것을 느꼈다. 자신이 곤두서 있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시시각각 닥쳐오는 비바람의 징후일 뿐인지 알 수 없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소타가 들려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뒷덜미에서 식은땀이 솟아올랐다. 그때였다. 사각사각 풀을 밟고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건너편에서 들려온 것이었는데 점점 코트로 내려왔다. 료타의 심장이 얼어붙었다. 공을 놓친 손이 허공으로 길게 뻗었다가 멈추었다. 반사적으로 뒤를 돌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코트에는 여전히 료타 뿐이었다. 신발 앞코에 맞아 크게 튀어 오른 공이 퉁 퉁 소리를 내며 골대 앞으로 데구루루 굴러갔다.
료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본능적으로 숨을 죽인 채였다. 건너편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에도 그곳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건너편, 정확히는 펜스가 쳐져 있지 않아 코트의 출입구로 사용되는 방향에는 살짝 경사진 둔덕이 있었는데, 아이들이 자주 밟으며 드나드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있어 한바탕 경기를 뛴 다음 드러눕기에 좋았다. 종종 소타와 일대일을 마치고나면 료타도 거기 앉아 음료수를 나누어 마시고는 했었다.
그곳이었다. 그 둔덕에, 마치 누군가 서 있기라도 한 것처럼 나란한 한 쌍의 발 모양으로 둥그렇게 풀이 짓눌려 있었다.
한동안 코트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고막을 때리고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흩날리며 뺨을 할퀴었다. 잠시 후 짓눌려 있던 풀이 어정쩡하게 솟구치더니 사각사각 소리가 났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경로를 따라 풀이 꺾이며 고스란히 발자국을 드러냈다. 마침내 코트를 가로지른 발소리가 얼어붙은 료타를 향해 다가와 그 앞에 멈추어 섰다.
료타는 숨을 멈췄다. 공기가 너무 차가워서 입김이 날 것 같았다. 료타는 무엇인가 자신의 팔을 만지는 것을 느꼈다. 팔꿈치를 살짝 터치하는 정도였는데 나중에는 손가락을 세워 주욱 미끄러뜨리더니 손등을 툭하고 건드렸다. 료타가 경기를 일으키며 뒤로 물러났다. 그 순간 무엇인가 료타를 강하게 밀쳤다. 가슴팍에 닿는 두 손의 감촉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료타는 바닥을 나뒹굴었다. 겁에 질려서 거의 흐느끼고 있었지만 극한의 상황에 처한 덕분에 번쩍 정신이 돌아왔다. 료타는 벌떡 일어난 다음 골대 앞까지 굴러간 공을 챙겨 쏜살같이 달아났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단숨에 코트를 빠져나와 언덕을 내달리는 동안 두 뺨에서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집에 도착한 다음에야 그것이 눈물이 아니라 빗물이었음을 깨달았다. 언제부터였는지 비가 내리고 있었고, 머리카락이 조금 젖었을 뿐 료타의 몸은 대부분 보송보송했다.
그날 료타는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하고 방에 처박혔다. 낮잠을 다 잔 소타는 뒤늦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료타를 귀찮게 굴기 시작했다. 동생이 자기를 본체만체하는 것이 기분이 상해서라고 생각했던 그는 장지문을 반쯤 닫아놓고 문 뒤로 열 손가락을 움직이면서 재미있는 그림자를 만들었다. 돌아누운 료타의 목덜미 위로 소타가 만든 토끼, 개, 주전자의 그림자가 길쭉하게 드리웠다. 소타는 새끼손가락을 능숙하게 움직여 개의 주둥이가 뻐끔뻐끔 벌어지게 만들었고, 그 위에 자기 목소리를 우스꽝스럽게 입혀 다른 누군가인 것처럼 물었다. “료-타 군, 료-타 군. 멍멍 박사일세. 누가 료-타 군을 그렇게 가엾게 만들었나?” 료타가 대답하지 않자 개는 다시 주둥이를 뻐끔거렸다. “오호라, 소타 때문이로구나. 그렇지?” 료타는 대답 대신 몸을 돌아누워 장지문을 올려다보았다. 소타가 새끼손가락을 벌리자 개의 주둥이가 벌어졌고 그림자가 료타의 얼굴을 반쯤 가리면서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어쩔 수 없지! 이 멍멍 박사가 못된 소타를 불러내 혼쭐을 내주겠네. 어떤가?”
“소짱이 거짓말했어.”
료타가 말했다.
“옳거니! 거짓말은 나쁜 거야. 소짱을 혼내주자!” 멍멍 박사가 크게 입을 벌렸고, 곧이어 장지문 아래 쪽에서 불쑥 소타의 머리가 나타났다. “으악, 하지 마세요!” 소타가 애원했지만 멍멍 박사는 용서하지 않겠다는 듯 그의 머리 위로 점프했고 전투가 벌어졌다. 멍멍 박사가 소타의 머리카락을 물어뜯자 소타는 과장된 신음을 내면서 살려달라고 빌었다. “부족해. 더 혼내줘.” 료타가 말했다. “지원군을 불러서 더 혼내줘.” 그러자 멍멍 박사가 휘파람 소리를 내면서 땅으로 꺼졌고, 잠시 후 기다랗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이루어진 날개를 흔들며 매 한 마리가 나타났다.
매는 한동안 소타의 머리 위를 빙글빙글 배회하다 기회를 포착한 듯 급강하해 마지막 치명타를 날렸다. 어느새 날카로운 열 개의 발톱으로 변한 날개가 잔혹한 기세로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소타는 끅 끅 죽어가는 소리를 내며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했다.
“료타, 기분 풀어라. 응?”
료타가 얼른 돌아누웠지만 소타는 자신의 승리를 직감했다. 장지문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며 소리쳤다. “어라, 웃는다.”
“아니야.”
“웃는다. 다 봤어.”
두 손이 장지문을 떠나자 그림자 무리는 다시 자신들의 세계로 돌아갔다. 소타가 다가와 동생의 옆구리와 겨드랑이 사이로 손을 집어넣었다. 료타는 꿈틀대다 말고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 마!”
“용서해 줄 거야? 형님을 용서하는 거지?”
“알겠어. 알겠다니까.”
소타가 료타 위로 쓰러졌고 료타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싸움은 끝났다. 늘 그렇듯 소타를 용서하는 것으로 모든 일은 정리되었다. 소타를 옆으로 밀쳐내며 중얼거렸다. “소짱은 바보야.” 대답 대신 킬킬거림만 돌아왔다.
밤새 비바람이 불었다. 창밖은 두려운 소리로 가득 찼고, 새파란 빛 아래서 나무 그림자가 이리저리 흔들리며 방바닥을 할퀴었다. 야자수와 옥수수 대가 반쯤 드러눕고, 나뭇가지들이 힘겹게 구부러지며 비명을 질러대는 한밤중에 느닷없이 눈이 떠졌다. 곁에는 소타가 잠들어 있었고 방은 깜깜했다.
어째서인지 다음 순간 료타는 바깥에 서서 누군가 기우뚱거리며 걷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것은 한 발 한 발 힘겹게, 언덕 아래서부터 천천히 올라가려 하고 있었다. 다리를 절거나 몸을 가누기 힘들어서는 아니었지만, 뭐랄까, 그것의 몸짓에는 설명하기 힘든 께름칙함이 있었다. 비틀거리는 몸이 서서히 비탈길에서부터 그 모습을 드러냈다. 료타는 점점 겁에 질렸다. 저게 집을 찾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꿈에서 드는 감정은 일종의 계시와 같아서, 료타가 그렇게 생각해 버려서인지 아니면 원래 그렇게 정해진 전개였던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은 결국 료타의 집 대문 앞에 멈추어 섰다.
어느새 료타는 다시 방에 누워 있었다. 이불이 반쯤 내려간 상태였고, 그래서인지 몹시 추웠다. 곁에 누운 소타가 평온하게 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쪽으로 돌아눕거나 손을 움직여 이불을 덮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잠시 후 거실 쪽에서 드르륵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 폭풍우가 휘몰아쳤다가 드르륵 소리와 함께 다시 조용해졌다. 료타는 극도의 공포에 질렸다. 무언가가 발을 절며 오고 있었다. 나무 바닥이 삐걱거렸고,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그러다 문 앞에 멈추어 섰다.
료타는 숨죽인 채 시선만 움직여 장지문 쪽을 확인했다. 누군가 서 있었다. 별로 키가 커 보이지는 않았고, 기껏해야 료타 또래 정도 돼 보이는 덩치였는데, 윤곽을 이루는 가장자리가 노이즈가 낀 텔레비전 화면처럼 지저분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아까 코트에서 만난 녀석이라고 료타는 직감했다. 내내 비를 맞으며 언덕을 올라와 잔뜩 젖어있었고, 물이 뚝 뚝 떨어지는 소리가 고스란히 들려왔다. 그것은 료타가 깨어있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꽤 오랫동안 문 앞에 서 있기만 하다가 어느 순간 아주 천천히, 한 손을 들어 올렸다.
겁에 질려 크게 뜬 눈으로 료타는 문 너머에서 벌어지는 일을 숨죽여 지켜보았다. 우선 그것은 한 손을 머리 높이까지 들어 올린 다음, 다른 한 손을 마저 들어 올렸다.
한동안은 그 상태로 어쩔 줄 모르는 것처럼 굳어 있었다. 그것은 마치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는 동안 윤곽을 이루는 가장자리가 심하게 치직대면서 미세한 먼지 같은 것을 뿜어냈다. 마침내 그것이 다시 손을 움직였다. 팔을 교차해 작은 엑스자를 만든 다음, 느릿느릿한 속도로 양 손바닥을 힘껏 펼쳤다. 그러고는 무척이나 조심스럽고 신중한 몸짓으로, 두 손을 포개었다. 료타는 숨을 들이켰다. 소타가 만든 것처럼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그것은 아마도 매를 만들려 하는 것 같았다….
눈을 떴을 때는 이른 아침이었다. 소타는 벌써 일어나 이불을 걷고 있었다. 발끝으로 장난스럽게 료타를 깨우면서 이불을 걷어갔다. 얼굴을 찌푸리며 웅크리자 소타는 이리저리 동생을 흔들면서 요란을 떨었다. “일어나, 료타. 더워지기 전에 한 판하고 오자.”
마지못해 일어난 료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정원과 통하는 대청 문이 제대로 잠겨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고리는 제대로 잠금장치에 걸려 있었고, 밤새 문이 열린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긴장이 풀리면서 손쓸 도리 없이 눈물이 고였다. 소타가 다가왔다.
“나갈 준비 안 하고 왜 그러고 있어?”
소타는 벌써 옷을 갈아입은 채였다. 헐렁헐렁하고 통풍이 잘되는 검은색 나시를 입고 있었는데, 그 무렵 소타가 즐겨 입던 것이었다. 료타는 정원을 노려보면서 작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나가기 싫어.”
“뭐야, 농구하기 싫어?”
고개를 떨어뜨렸다. “농구는 하고 싶어.”
“그럼 얼른 준비해.”
마침내 소타가 료타의 눈물을 발견했다. 그는 호들갑을 떨면서 료타를 돌려세웠다. “뭐야, 료타. 너 우는 거야?” 입을 쭉 내밀면서 한동안 버텼지만, 결국 료타는 입술을 물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소짱 때문이잖아.” 뜨거운 눈물이 속절없이 두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소짱이 불러왔잖아.” 그러고는 와앙 울음을 터뜨렸다.
자초지종을 들은 소타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는 간밤에 동생에게 벌어진 일을 허구와 현실의 세계를 넘나드는, 어떤 초자연적인 현상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료타가 순진하다고 생각했고, 겁에 질린 동생에게 공감하려고 애쓰는 와중에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입가에 만연한 미소를 띤 채 소타는 발소리를 내면서 복도를 이리저리 걸어 다니고 장지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료타를 안심시켰다.
“그냥 꿈이야. 그리고 그 녀석 화도 안 났을걸.”
료타는 믿지 못했다. “어떻게 알아?” 소타는 휘파람을 불었다. “그냥. 감이야.”
“아직도 농구하러 나가기 싫어?”
소타가 믿어주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인지 간밤의 일이 더욱 바보같이 느껴졌다. 어쩌면 료타는 그저 무서운 꿈을 꾼 걸지도 모른다. 머뭇거리는 동생을 지켜보던 소타가 능청스럽게 툴툴댔다.
“아, 슬슬 다른 녀석들도 내려올 텐데.”
“갈래.”
소타의 얼굴이 환해졌다.
“번개처럼 준비 끝내고 나오는 거야.”
두 사람은 느긋하게 언덕을 내려왔다. 그새 누가 쓸어둔 것인지 나뭇잎이나 돌 따위가 길가 가장자리로 치워져 있었다. 간밤의 비바람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마다 무언가 훼손되거나 부러졌다. 옆집 대문에는 꺾인 나뭇가지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이 정도면 코트도 엉망일 수 있겠다고 소타가 중얼거렸지만, 막상 내려가 보니 물난리가 난 흔적이 있을 뿐 코트는 대체로 멀쩡했다. 골대 그물에 나뭇잎이 걸린 것을 본 소타가 슛을 날렸고, 공은 림에 한 번 맞고 튀어 올랐다가 안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그물에 걸린 잔여물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소타가 기분 좋게 주먹을 들어 올렸다. “아자!”
그곳에서 한 시간 정도 농구를 했다. 료타는 좀처럼 집중하지 못했다. 불현듯 뒤를 돌아보거나 둔덕 쪽을 살피면서 하던 행동을 멈추었고, 그때마다 소타에게 어이없이 점수를 내어주고 말았다. 태양이 높게 떠오르며 점차 지열이 올라왔다. 소타는 농구를 중단하고 근처 자판기로 달려가서 물방울이 맺힌 음료수 캔을 뽑아왔다. 두 사람은 둔덕에 드리운 나무그늘에 앉아 이온음료를 들이켜며 숨을 돌렸다.
“그냥 지어낸 이야기인 줄 알았어.” 료타가 말했다.
“어제 들려준 얘기?” 소타가 그를 쳐다보았다.
“응.”
“전부 지어낸 건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 부풀려서 말한 건 있어.”
소타는 남은 음료수를 한입에 들이켰다.
“혼자 농구할 때 누가 있다고 생각하고 움직인 건 맞아. 그래도 그게 진짜 있다고 믿은 적은 없어.”
료타는 어제 그것이 서 있던 둔덕의 자리를 쳐다보았다.
“진짜?”
“그럼. 인사도 장난삼아 한두 번 하고 말았는걸. 이름도 안 지어줬단 말이야.”
소타가 캔을 구기고는 자리에 벌렁 드러누웠다. 료타는 양손으로 음료수를 감싼 채 생각에 잠겼다.
“소짱은 아니라고 했지만, 걔는 화난 것 같아.”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왜?”
“어제 날 밀쳤어.”
“그랬단 말이야?”
“응.” 료타가 건너편 코트를 가리켰다.
“그래서 저기서 넘어졌어.”
소타는 흥미롭다는 반응이었다. 료타의 시무룩한 표정을 보곤 손바닥으로 차양을 만들어 동생이 가리킨 지점을 꼼꼼하게 살피는 척했다.
“내 동생이랑 놀아달라고 부탁했더니, 놀아주진 않고 괴롭혔구나!”
그것으로 끝내지 않고 큰소리로 으름장을 놓기 시작했다. 마치 그것이 곁에 서있거나, 혹은 숨어서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는 것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소타는 허공에 대고 삿대질하며 엄숙하게 말했다.
“이 녀석, 내 동생 괴롭히지 말고 상냥하게 대해주라고. 너 때문에 내 동생이 겁먹었잖아. 그러면 다음에 누가 너랑 놀아주겠냐?”
“그만해, 소짱. 또 화낼 거야….”
료타가 질겁하자 소타는 보란 듯이 콧김을 내뿜었다.
“내 동생 또 괴롭히기만 해.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사사사 바람이 불었다. 코트 가장자리에 난 웅덩이의 수면 위로 물결이 일더니 갑자기 주위가 고요해졌다. 건너편 도로로 자전거를 탄 아저씨가 느릿느릿 페달을 밟으며 지나갔다. 소타가 주변을 살피며 귀를 기울였다. 다른 기척은 없었다. 둔덕에는 여전히 두 형제만이 앉아 있었고, 결국 소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겁먹었나 봐.” 엉덩이에 묻은 풀을 털면서 소타가 말했다.
“그니까 이제 안 올 거야.”
일상은 금방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폭풍이 휩쓸고 간 골목도 사흘 정도 만에 정리되었다. 이웃집은 부러진 가지를 치우고 나무에 부목을 덧대주었고, 료타도 더는 비슷한 일을 겪거나 악몽을 꾸지 않았다. 하지만 소타는 그 일이 제법 인상에 남았는지 그 후로 단둘이 농구를 할 때면 허공에 사인을 주고받거나 콜을 부르는 시늉을 하면서 동생을 놀리곤 했다. “거기, 료타 옆에! 제대로 막아!” 장난인 걸 모르지 않는데도 료타는 매번 질겁했다. 언제가 되었든 형의 그러한 행동은 조금 섬뜩한 느낌을 주었다. 그 녀석의 이름도 그 무렵에 생겼다. 늘 그렇듯 허공에 콜을 넣던 소타가 얼결에 “어이! 거기 새!”하고 부른 것이 그대로 호칭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그게 새를 만들었다며.” 손바닥을 포개어 매를 날리면서 소타가 설명했다.
“그래서 일단은 새라고 부른 거야. 진짜 이름은 아니니까, 뭐 괜찮지 않을까?”
그렇다고는 해도 금방 새로운 이름을 지어줄 게 분명하다고 료타는 생각했다. 소타는 이 일에 재미가 들린 것 같았다. 얼마 안 가 코트에 들어갈 때나 나올 때 꼬박꼬박 새에게 인사하는 습관까지 들었고, 둔덕에 누워있다가도 곁에 있는 것처럼 새에게 말을 걸기도 했다. 그저 장난일 뿐이라고 소타는 말했지만, 때때로 료타는 두 사람의 가까운 곳에서 불현듯 서성이는 기척이나 알 수 없는 시선을 느끼곤 했고, 그때마다 고개를 돌려 거기에 아무도 없음을 반드시 확인한 다음에야 마지못해 자리를 떠날 수 있었다.
조만간 새가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뒤로도 무서운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대신 장난이 끝났다. 소타가 바다에 나갔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하게 된 날부터 모든 것이 변했다.
방학이 끝나자마자 료타는 학교 체육관에 박혀 살았다. 부 활동은 좋은 핑곗거리가 되어주었다. 아이들은 형의 등번호를 달고 돌아온 료타를 보고 처음에는 우물쭈물했지만, 일단 시합이 시작되면 그가 처한 상황을 잊어버렸고 금방 변화에 익숙해졌다. 료타도 그러한 분위기에 적응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이따금씩 소타의 생각이, 그가 남기고 간 모든 것들이 불현듯 가슴을 할퀴는 통증과 함께 찾아오곤 했다. 그것은 료타를 손쉽게 무장 해제시키는 것이어서, 달릴 때나 슛을 던질 때, 코트를 가로지르면서 큰소리로 팀 메이트를 부를 때마다 반드시 그를 멈추어 세우고 마는 것이었다.
타교 상급생들에게 대패한 날에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료타는 자신을 도발하는 상대 선수에게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고, 중간에 손목 부상을 입고 교체되는 굴욕까지 맛보아야 했다. 하필 어머니가 오랜만에 안나와 함께 체육관을 찾은 날이었고,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료타에게 그 일은 무척 치욕으로 남았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날은 어머니에게도 여러모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것 같다. 정확히 어떤 인상을 받은 것인지 료타로서는 알 길이 없지만, 그 일이 있고 얼마 안 가 소타의 방을 치우기로 마음먹은 어머니가 박스를 든 채 방으로 들어갔다가 료타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일이 벌어졌다. 거세게 저항했지만, 료타는 결국 어머니를 이길 수 없었다. 그가 어머니를 이길 수는 없는 법이었다. 언제나 그랬다.
울분에 차서 밖으로 뛰쳐나와 달리다 보니 어느새 동네 코트 앞이었다. 저녁노을이 지고 있었고, 파도가 잔잔하게 물결치며 해안으로 밀려들었다. 형이 죽은 다음부터 료타는 일부러 이곳을 피해 다녔다. 소타 생각이 나서도 있었지만, 코트에서 공을 튀기고 있으면 지나가던 주민이 그를 알아보고 말을 걸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한동안 자리에 서서 그가 하는 것을 구경하는 일이 잦아졌기 때문이었다.
때로 주민들은 곁에 있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음을 모른 척하기란 어려웠다. 사람들은 료타나 그의 가족들에게 뭔가 해주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괜한 참견일 뿐이었다.
이 모든 상황이 어쩔 도리 없이 흘러가는 수순처럼 느껴졌던 것이 기억난다. 세상에 존재하는 소타의 모든 흔적을 지우기로 작정한 듯 구는 어머니에게 대항하기 위해서, 마치 운명이 료타 자신을 그곳에 데려다 놓은 것처럼 느껴졌던 것 같기도 하다. 손을 펼쳐보니 소타가 자주 차던 빨간색 아대가 들려 있었다. 어머니와 몸싸움을 벌이다 챙겨서 나온 유일한 것이었다. 그것을 기도하듯 그러쥐면서 흐느낌을 억누르려고 애썼다. 그런 방식으로, 그는 오랫동안 속에서 끓어오르는 뜨거운 울음을 견뎠다. 그가 작게 헐떡였다. “돌아와 줘.” 간절하게 속삭이고 또 속삭였다. “돌아와 줘, 부탁이야….”
사사사 바람이 불면서 돌연 세상이 침묵했다. 파도가 부서지며 사방으로 물거품을 흩날리다가, 전부 멈췄다. 료타는 등 뒤로 다가온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차가운 냉기가 훅 끼치더니 입김이 피어올랐다. 무엇인가 료타의 어깨를 툭하고 건드렸다. 발끝에서부터 소름이 돋아났다. 료타는 천천히 뒤돌았다.
새는 거기 있었다. 바로 뒤, 두 팔을 벌린 채, 마주 보듯 우두커니 서 있었다. 반투명한 몸체 너머로 건너편 코트가 어른거리고 구부러지며 굴절되는 광경이 그대로 비추어 보였다. 거센 바람이 귓가를 때렸다. 파도가 산산조각 나고 새로운 파도가 수평선에서부터 밀려들기 시작했다. 료타는 눈을 깜빡였다. 어느새 눈앞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코트는 텅 비어있었다.
이 주 뒤 료타는 가족들과 함께 요코하마 부근으로 이사했다. 어머니가 인부들을 시켜 오래된 가구를 바깥으로 내놓는 동안 료타와 안나는 자잘한 짐 정리를 도왔다. 가구를 포함한 대부분의 물건을 치우고 나니 공간이 탁 트이면서 집이 엄청나게 넓어졌다. 안나는 한평생 살아놓고 갑자기 낯설어진 복도와 방 구석구석을 뛰어다녔다. 어머니는 무릎을 접고 앉아 구석에 낀 먼지와 얼룩들을 정성스럽게 닦아냈다. 오랫동안 신세를 졌던 공간을, 때로는 행복에 겨워 기대곤 했으나 종국에는 슬픔에 겨워 두고 떠나는 집의 구석구석 묻히고 만 삶의 흔적을 꼼꼼하게 지워냈다.
어머니가 료타를 부른 것은 마지막으로 우측 복도를 닦아내고 있을 때였다. 소타의 방문 앞에 앉아 바닥을 유심히 들여다보다가, 료타가 다가오자 “이거 네가 그런 거니?”하고 물었다. 료타는 그녀가 가리킨 곳을 내려다보았다. 마룻바닥에 희끄무레하게 남아있던 흔적이 물기를 머금으며 차차 선명해지고 있었다.
그것은 어린아이의 것으로 보이는 짙고 새카만 발자국이었다. 소타보다 훨씬 작았지만, 료타의 것도 아니었다. “잘 모르겠어요.” 마침내 료타가 대답했다. “잘 모르겠으니까 그냥 내버려둬요.” 그렇지만 알고 있었다.
두려웠다. 새가 남긴 흔적이었다.
─
한동안은 겁에 질려 있었다. 가나가와의 작은 아파트로 이사 온 다음에도 종종 바깥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숨죽여 귀를 기울였고, 방문 너머에 누군가 서 있는 악몽을 꾸고는 했다. 하지만 아무도 없는 곳에서부터 발소리가 들리거나 불현듯 서늘한 공기가 찾아드는, 그런 일들은 더는 벌어지지 않았다. 불길한 기운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였다. 그러는 동안 료타는 서서히 새가 바다를 넘을 만큼의 힘은 없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해를 가리던 구름이 바람에 천천히 떠밀리듯, 두려움이 마음속에서 사라져갔다. 어쩌면 그들 가족이 고향 집에 남아있는 소타의 흔적과 낡은 가구들을 두고 섬을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새 역시 함께 처분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 그것을 이루는 힘이 약해지다 못해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닐까.
아마 그럴 것이었다. 평화로운 몇 주가 지속되자 그는 안도했다. 얼마 안 가 학교생활에 주의를 빼앗기면서부터 료타의 고난은 조금 더 실질적인 세계로 진입했고, 그런 식으로, 새 말고도 새롭게 두려운 것들이 생겨났다. 삶이 끊임없이 변했다.
학교 아이들은 료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료타는 신학기가 시작되고도 몇 주가 지났을 무렵 전학생의 신분으로 나타난 것이었고, 아이들은 그의 말투에서 드러나는 방언과 날 선 표정에 낯을 가리면서 쉽게 모험을 하려 들지 않았다. 사내아이들은 걸핏하면 그에게 시비를 걸어댔다. 료타 역시 그들을 필요로 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부터 반 아이들과의 사이는 점점 더 벌어졌다. 벌써 초여름이었다. 여름방학이 닥쳐오고 있었지만 그는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소타가 떠난 다음 처음으로 맞는 방학이었다. 안나가 있었지만, 손위 형제와 지내는 것과는 느낌이 달랐다. 그는 외로웠다. 외로웠지만 친구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애원하고 싶지 않았다. 동료를 필요로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전처럼 혼자 코트로 나가야 하는 처지를 자처했다. 이전에는 소타를 간절히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나갔지만, 지금은 혼자서도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나갔다. 외로운 상태를 유지하려고 악을 쓰면서 그 무렵에는 내내 홀로 서 있었다.
미츠이 히사시는 한 학년 위 선배로, 같은 학교는 아니었다. 그 무렵 단 한 번, 료타가 자주 찾는 동네 코트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날 만남이 전부였고 그 뒤로 다시는 코트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가 지역구에서 유명한 중학생 농구 선수라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그날 료타는 내내 멍청하게 굴었다. 오키나와를 떠나온 이래로 몇 주 만에 남과 승부하는 것이었고, 미츠이는 당황스러울 만큼 명랑하고 적극적으로 나왔다. 미츠이는 어마어마한 슛을 가지고 있었다. 손을 들어 올리면 깔끔한 포물선을 그리며 공이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가 림을 스치며 그물 정중앙으로 떨어지는 광경이 몇 번이고 연출되었다. 어느 타이밍이 되었건 간에 그런 슛을 정확하게 쏠 줄 알았다. 처음 그 슛을 보았을 때 료타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미츠이는 슛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드리블에 능숙한 반면 점프슛에는 쥐약이고, 컨디션에 따라 승부수를 두는 데에도 취약한 모습을 보이곤 하던 료타와는 다르게, 미츠이는 슛뿐 아니라 드리블에도 능숙했고, 상황을 계산하거나 치고 빠지는 일에도 두각을 드러냈다. 자신감 있게 플레이를 이어 나갔을 뿐더러 중간중간 잊지 않고 료타의 승부욕을 종용하는 여유까지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미츠이에게는 당시 료타가 또래아이들로부터 거의 받지 못했던 온정 어린 능력이 있었다. 바로 인내심이었다. 그는 료타의 실책이나 소극적인 모습에도 아랑곳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가르쳐주려고 했다. 슛을 쏘기 좋은 타이밍, 일대일 대치 중에 상대를 뚫고 나가는 법, 도발하거나 도발당하지 않는 법을 알려줌으로써 료타와 제대로 된 한 판을 해나가고 싶어 했다.
‘이 사람, 소타를 닮았다.’
그런 다음, 료타는 큰 충격을 받았다. 가나가와로 이사를 온 이래로 소타의 존재는 암묵적인 금기가 되어 있었다. 어머니는 소타의 물건을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워버린 지 오래였고, 료타도 료타대로 가족을 포함한 어느 누구와도 소타에 관한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안나만이 이따금 떠보듯 큰오빠를 언급하며 두 사람의 눈치를 살피곤 했지만, 두 사람이 껄끄럽게 굴며 제대로 반응하지 않았으므로 금방 다른 주제로 넘어가기 십상이었다. 그런 식으로, 어머니는 어머니만의 소타를, 료타는 료타만의 소타를 만들어갔다. 공유되지 않은 상처는 각자의 이야기로 굳어지는 법. 이제 소타는, 소타라는 것은 료타가 원할 때만 기억 속에서 몸을 일으켜 세우는 또 다른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낯선 사람으로부터 이끌리듯 형을 떠올리고 말았다는 것을 료타는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이 아직 소타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소타를 공유할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그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누군가와 진실로 상처를 나누기를 포기하고, 고통을 삭이며 살아가더라도 사람을 약하게 만드는 외로움으로부터 결코 도망칠 수 없다는 그 사실은 료타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미츠이를 내버려두고 코트를 빠져나오는 동안 두 다리가 후들거렸다. 미츠이가 미웠다.
그날 밤 고향 집에 갔다.
기억이 그를 그곳으로 데리고 갔다.
료타는 대청에 앉아 있었는데, 밤이었고, 실내는 텅 비어있었다. 빈집 곳곳에선 기둥이 느릿느릿 삭아가는 소리, 천장이 삐걱거리는 소리, 쥐들이 만들어내는 작은 발소리 같은 것들이 끊임없이 속삭이듯 들려왔다. 소타의 방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푸른 달빛이 창문을 투과해 사선으로 떨어지면서 문 앞에 선 무언가를 희끄무레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어둠에 싸인 옆모습이 일렁일렁하고 있었다. 료타는 어렵지 않게 그것을 알아보았다. 새였다. 그것이 여전히 거기 있었다.
그때 새가 고개를 돌렸다. 대청 쪽으로 다가오는 것을 본 료타의 가슴이 얼어붙고 몸이 뻣뻣해졌다. 하지만 새는 그를 지나쳐 마당으로 나왔다. 대문을 통과한 다음 느릿느릿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했고, 어느새 상황이 바뀌어 료타는 언덕 아래서 내려오는 새를 기다리고 있었다.
새는 서두르지 않고 움직였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는 것처럼 보였다. 언덕을 다 내려온 다음 작은 해변 쪽으로 향했고, 그곳에 정박해 있는 작은 배에 올라탔다. 하얗게 도색돼 있는, 두 명 정도가 간신히 올라탈 법한 아기자기한 돛단배였다. 통달에 삼각돛을 걸고 레버를 당겨 활짝 펼친 다음, 노를 저으며 천천히 육지를 벗어났다. 바람이 천을 떠밀었고, 뱃머리는 평화롭게 물살을 가르며 바다로 나아갔다. 새는 배에 앉아 줄곧 한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료타는 부유하는 영혼처럼 조금 떨어져 그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망망대해를 가르며, 어디론가 꾸준히 나아가는 것을 계속해서 내려다보면서, 어디로 가는 거지. 어디로 가고 있는 거야, 하고 물었다.
새는 대답하지 않았다.
한동안 료타는 미츠이를 기다렸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미츠이를 그런 식으로 보낸 것이 후회가 되었다. 미츠이가 나타났던 시간대에 코트를 어슬렁거려보기도 하고, 길을 걷다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한 무리의 남학생들이 보이면 발걸음을 멈추고 아는 얼굴이 없나 순간적으로 훑어보기도 했지만 미츠이가 다시 나타나는 일은 없었다. 대신 다른 것이 왔다.
새가 섬을 건너왔다는 것은 반년쯤 뒤에 알았다. 징후가 먼저였다. 안나가 외출했는데도 집에서 약간의 인기척이 들릴 때가 있었고, 그런데 막상 들어가 보면 아무도 없다거나, 혼자 공을 튀기고 있으면 빈 그늘에서부터 시선이 느껴진다던가 하는 일이 있었다. 희미하지만 발자국이, 혹은 손자국이 남을 때도 있었다. 무엇인가 근처를 맴돌고 있다는 것을 료타는 느낄 수 있었다. 방이 차갑게 느껴질 때마다 일어나서 창문을 닫았지만 설명할 수 없는 써늘한 냉기가 여전히 방안을 맴돌고는 했다.
료타는 다시 나타난 새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처음에는 두려웠다. 어떻게든 떨쳐내 보려고 이런저런 방법을 동원해 보았다. 부적을 쓰거나, 불경을 외거나, 주기도문을 외운다거나 해서 달아나게 만들려고 했다. 불온한 존재를 쫓아내기 위한 신성한 문장과 행위를 몇 번이고 되풀이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새는 요괴나 유령처럼 다를 수 있는 존재가 아닌 것 같았다. 차라리 그림자와 비슷한 존재라고 봐야 할 것 같기도 했다. 그저 내버려두는 것 외에는, 두려워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새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아리송해져 갔다. 때로 그것은 그저 료타를 따라온 것에 족해 보였다. 거리를 둔 채 지켜보고는 있지만 전처럼 료타에게 직접적으로 닿거나, 개입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새가 이 이상으로 날뛸 것 같다는 인상을 받기란 어려웠다.
새는 모습을 드러내는 데에도 신중해진 것 같았다. 더는 전처럼 문 너머로 실루엣을 드러내 료타를 공포에 질리게 하거나, 아무도 없는 코트에 불현듯 나타나 그를 만지거나 밀치는 소동을 벌이지도 않았다. 어느 순간 료타는 새를 쫓아내는 일을 그만두었다. 한 번 포기하고 나자 새를 내버려두는 일은 무척 쉬웠다. 가끔씩은 새가 어디 있는지 두리번거리는 일조차 잊어버렸다. 그럴 때면 새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가, 어느 순간 휙 하고 나타났다. 꽤 오랫동안 모습을 감추었다가 조용히 돌아오는 날도 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일들이 점점 더 잦아졌다.
중학교 2학년이 되고부터 료타는 본격적으로 시비에 걸리기 시작했다. 그는 반쯤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녹아들었지만 몇몇 아이들에게는 이전보다 더 큰 반감을 샀다. 성장기에 들어선 아이들 틈에서 료타는 변함없이 작은 축에 속했다. 그런 그를 대놓고 깔보는 녀석들이 생겨나며 충돌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한번은 그의 순순히 굽혀주지 않는 성격 때문에 양키무리와 마찰을 빚은 일이 있었다. 그때 료타는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양키 중 하나가 내려와 길을 가로막았다. 아마 료타여서가 아니라 평소에도 그렇게 구는 녀석들이고, 늘 그렇듯 지나가는 사람에게 그냥 시비를 걸고 싶었던 것 같았다. 난간 쪽에 서 있던 료타는 갑자기 등장한 양키 때문에 어색하게 멈추어 섰고, 거의 매달리듯 난간을 잡는 포즈로 잠시 휘청거렸다. 그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본 양키들이 낄낄 웃어댔다.
료타는 조용히 피해 가려고 했지만, 양키들은 재미가 들린 것인지 따라붙어서 끈질기게 경로를 가로막았다. 결국 료타도 화가 났다. 그가 양키 한 명의 어깨를 거칠게 밀치면서 계단을 내려가자 녀석들은 꽥꽥 소리를 지르며 “가만두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 다음부터 한동안 료타를 두고 질 나쁜 별명을 지어서 부르거나, 그가 지나갈 때마다 침을 뱉으며 짜증나게 만들었다.
이렇다 할 반응이 돌아오지 않자 양키들은 열이 뻗쳤는지 방학이 시작되기 전에 강수를 두었다. 굽실거리며 선배 하나에게 이 일을 고자질하고는, “적절한 선에서 손을 좀 봐 달라”고 한 것이다. 이 일을 꿈에도 모르고 학교 뒤편에 있는 쓰레기장에 나갔다가 그만 봉변을 당했다. 양키들이 불러온 선배는 료타보다 한참은 컸는데, 아마 못해도 180센티는 돼 보였고 벌써부터 어깨도 떡 벌어져서 굉장한 위압감을 주었다. 짐승처럼 손가락에 굵은 털이 나 있었고, 화가 난 목소리로 료타를 위협하면서 물었다.
“네가 미야기 료타냐.”
“그런데요.”
겁에 질려서 도리어 딱딱한 목소리로 료타가 대답했다.
“내가 왜 찾아온 건지 알 거다.”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고 있자 선배가 눈을 부릅떴다.
“아니, 그러면 안 되지. 잘못을 했으면 사과를 해야 할 거 아냐?”
그런 다음 선배는, 털이 부숭부숭한 손으로 료타를 들어 올려 땅바닥에 매쳤다. 흙먼지와 함께 나뒹구는 료타를 잡아챈 다음 멱살을 잡아 올리고 이리저리 흔들자 몸이 종이처럼 힘없이 흔들거렸다. 넥카라가 위로 심하게 쏠리면서 숨이 턱하고 막혔다. 그 순간 왜인지 두려움보다는 분노가 앞섰던 것이 떠오른다. 목구멍에서부터 날카로운 무언가가 올라오는 느낌이 엄습하더니, 머리가 차갑게 식으며 사시나무처럼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겁에 질려서가 아니라 단지 주체할 수 없는 분노 때문에, 눈앞의 상대에 대한 깊은 혐오감과 증오 때문에 떨려오는 것이었다. 그때였다. 마치 그 분노에 전이된 것처럼 선배의 손이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는 료타를 놓아주고 주춤주춤 물러났다. 료타는 켁켁 기침하며 고개를 들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선배가 허공을 향해 손을 허우적거리고 그 거대한 몸을 비틀며 발버둥 치고 있었다. 그의 넥카라가 위로 바짝 올라갔고 두 발은 허공에 살짝 들려 있었다.
선배의 두 눈은 핏발이 서려 있었고 입은 크게 벌어져 있었다. 그는 공포에 질린 표정이었다. 창백한 얼굴로 허공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무언가 말하려 애쓰고 있었는데, 얼마 안 가 숨이 막히는 듯 목을 그러쥐었다. 료타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깨달았다. 처음에는 놀라움이 스쳤는데, 반갑기도 했고 살짝 즐겁기도 했던 것 같다. 미소를 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너털웃음소리를 내기는 했을 것이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선배가 컥컥거리며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는데, 그 모습이 더 이상 우스꽝스러워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어느새 눈앞의 광경은 장난의 수위를 한참 넘은 상황이 되어갔다. 선배의 얼굴이 점점 보라색으로 물들고 눈알이 바깥으로 거의 튀어나올 듯했다. 료타의 반가움은 돌연 공포로 변했다. 바닥에서부터 퉁겨지듯 일어나 허공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그만해!” 하지만 아무것도 멈추지 않았다. “됐으니까 이만하고 멈춰!” 컥컥 소리를 내던 선배가 눈을 까뒤집었다. “그만하라니까!” 겁에 질린 채로 료타가 벌컥 화를 냈다. “이럴 거면 차라리 꺼져버려!” 그 순간 그것이 선배를 벽에 집어 던졌다. 풍선이 터지는 듯한 뻥 소리와 함께 솜 빠진 인형처럼 선배의 몸이 바닥으로 스르르 미끄러졌다. 선배가 끅끅대는 소리가 공터를 가득 울렸고, 료타는 숨을 헐떡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새는 그곳을 떠난 지 오래였다.
안나가 외출한 날이었고, 엄마도 집에 없었다. 노을이 지고 있었고, 바깥에선 코트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어렴풋하게 들려왔다. 현관에 들어왔을 때는 손이 벌벌 떨리고 있었다. 아까의 광경으로부터 받은 충격이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료타는 숙제를 하기 위해 책상에 앉았다가 결국 몇 분 안 가 다시 일어났다. 부엌으로 가서 지난 저녁에 먹다 남은 낫또를 전자레인지에 데우고, 엄마가 덮어두었던 프라이팬 뚜껑을 걷고 아침에 구워둔 생선 한 토막을 꺼내 졸인 무와 함께 먹으려고 했다. 저녁을 먹은 다음 기운을 차리고, 해야 할 일과를 해치울 생각이었다.
방문은 닫혀 있었다. 커튼을 치지 않아 창이 활짝 열려 있었고, 아직 방은 밝았다. 료타는 자리에서 일어나다 말고 동작을 멈추었다. 장지문 너머에 새가 서 있었다. 그의 실루엣이 보였다. 창밖에서 아이들이 꺄악 소리를 지르며 술래잡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사이 새는 조금 자라있었다. 료타보다 한 뼘 정도 더 컸고, 살짝 후리후리해진 것도 같았다. 무엇보다 더는 일렁일렁하거나 노이즈가 낀 텔레비전처럼 치직대지 않았다. 그의 존재는 무척이나 안정돼 있었고, 어느 때보다도 분명하고 또렷해 보였다. 장지문 너머에 서있는 실루엣만으로도 그러한 변화가 뚜렷이 느껴졌다.
료타는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느꼈다. 두려웠고, 끔찍했지만, 한편으로 자신이 키워낸 무언가의 과정을 중간 점검하는 기분이 들었던 것도 같다. 료타는 새가 자신을 적대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오늘 일처럼, 불현듯 공격성을 드러내게 될지, 그러다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또다시 료타를 밀치거나 겁을 주려고 할지가 궁금했다. 새를 앞으로도 줄곧 두려워해야만 하는지 그는 혼란스러웠다.
“너 뭐야?” 료타가 물었다.
“누구 편이야?”
“…….”
“다시 사람들 그렇게 괴롭힐 거야?” 어느새 그는 소리치고 있었다.
“나 괴롭히고 쫓아다닐 거냐고!”
새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천천히, 서두르지 않고 두 팔을 어깨높이만큼 들어 올렸다. 침묵 속의 연극과도 같은 순간이었다. 새가 팔을 교차해 작은 엑스자를 만들었을 때, 료타는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았다. 느릿느릿한 속도로 새는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양 손바닥을 있는 힘껏 펼쳤다. 그러고는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여전한 신중함으로 두 손을 포개어 매를 만들었다. 나풀나풀 흔들면서 허공으로 매를 날리고 또 날리다가, 그것으로 족하다는 듯, 팔을 내리고는 조용히 그곳을 떠났다.
어느 날 밤의 일이었다. 료타의 생일날이었다. 그들 가족에게 있어 그의 생일이란 한 자리가 비어있는 4인용 식탁에 둘러앉아 죽은 형과 료타의 이름이 나란히 적힌 초콜릿을 올라간 케이크를 잘라 먹는 날을 뜻했다. 료타는 자신의 생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생일만 되면 침울해지는 집의 분위기를 견디기가 어려웠다.
잠자리에 들기 전, 잠깐이지만 료타는 어머니에게 새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그는 주변에 기댈 사람이 많지 않았다. 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 이야기를 진지하게 대해줄 사람도 거의 없었다. 그는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다. 자신보다 나이가 많고, 자신을 이해하고, 가까이 있어 줄 누군가를 그 순간 간절히 원했다. 하지만 료타는 이내 자신의 충동을 거두어들였다. 새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소타의 이야기부터 꺼내야 했다. 그 이야기를 빠뜨릴 수는 없었다. 그의 어머니는 버티지 못할 것이었다.
바로 그날에 벌어진 일이었다. 료타는 잠들었었는데, 어느 순간 방이 너무 추워서 깨고 말았다. 깨자마자 알았다. 새가 근처를 맴돌고 있으리란 것을. 최근까지 기척이 거의 희미했기 때문에 그토록 가깝게 다가온 건 정말 오랜만의 일이었다. 고작해야 장지문 너머에 서 있거나, 아니면 좁은 복도를 오락가락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새는 방 안에 들어와 있었다.
그런 적은 처음이었다. 처음에 료타는 잠이 덜 깨서 눈이 침침한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새가 너무 가까이에 얼굴을 붙이고 있어서, 그 반투명한 몸을 통해 보고 있던 까닭에 주변이 평소보다 어둡게 보이던 것이었다. 그것은 료타의 머리맡에 서서 무릎을 구부린 자세로 잠든 그의 얼굴을 고요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료타가 질겁해 일어나려던 순간이었다. 휙 하고 연약한 바람 소리가 귓가를 스치더니, 하복부에 강한 압력이 느껴졌다. 소름 끼치도록 차가운 손길이 료타의 옆구리와 겨드랑이 사이를 더듬는 것이 느껴졌다. 어마어마한 냉기가 엄습했다. 입을 벌렸지만 비명은 나오지 않았다. 새는 료타를 짓누른 채 대자로 팔다리를 벌리고 있었다. 압력의 면적이 넓어지면서 차차 무게가 실렸다. 어마어마하게 무거웠고, 무서웠고, 무엇보다 추웠다. 입김이 피어오르고 온몸이 달달 떨렸다. 마침내 료타가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경기를 일으키듯 발버둥 치면서 살려달라고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다가 까무룩 기절했다.
방학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왔을 때 양키들은 더는 적의를 드러내지 않았다. 한동안 료타가 귀신을 부린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얼마 안 가 수그러들었다. 료타가 크게 대응하지 않았고 아이들 역시 예전만큼 그와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료타는 중학교 1학년 말 농구부에 입부한 이래로 체육관에 붙박여 살았다. 곤경에 빠졌을 때 그가 몸을 의탁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그로부터 약 일 년쯤 뒤에, 고교에 올라가기 직전 학교에서 벌어진 일들을 되짚어보는 과정에서 야스다는 이 사건을 두고 “정말 별일이 다 있었다”고 했다.
중학 생활 내내 료타는 새를 다루기 위해 애를 먹었다. 새의 돌발행동 때문에 소동이 벌어지면 가슴이 철렁했고 심장이 서늘해지는 것 같았다. 몇 년 동안 야스다나 다른 아이들이 미처 알아내지 못한 기묘한 일들이 교내와 교외에서 번갈아 벌어졌다. 새는 난폭해지려고 들면 얼마든지 난폭해졌다. 양키 선배를 목 졸라 죽이려 들었던 것처럼, 새에게는 료타가 헤아리기 어려운 폭력성이 감추어져 있었다. 새는, 적어도 그것이 원한다면 언제가 되었든 사람을 해칠 준비가 되어있는 것 같았다.
새는 료타를 해치려 들기도 했다. 처음 만났을 적에 그를 밀쳐 넘어뜨린 일은 시작에 불과했다. 새는 료타를 겁주거나, 손끝이나 팔 따위를 만져서 도망치게 만들거나, 공포감을 조성하며 곁을 맴도는 일을 즐기는 것 같았다. 생일 밤에 벌어진 일도 비슷했다. 아마 새는 구체적인 소통이 가능한 정도의 지능을 갖춘 존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료타의 말이나 감정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료타가 강하게 겁을 먹거나 분노할 때, 그러한 감정으로 새가 사라지기를 간절히 바랄 때마다 존재의 위기감을 느끼고 그를 공격하게 되는 것 같았다.
중요한 건 료타가 그것을 관찰하고 통제하기 위해 중학 생활 내내 애써왔다는 것이다. 새가 폭력적으로 굴거나 자신과 접촉하려 드는 이유를 알아내기 위하여 료타는 오래 골몰했다. 그러는 동안 새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얌전해졌다. 때마침 지역대회가 시작되었다. 타 학교와 몇 번의 경합을 마치고 돌아왔을 즈음, 습관처럼 새를 찾았지만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한참 나중에 체육관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공터에서 덩그러니 앉아 있는 새를 찾았다. 새는 폐타이어를 쌓아둔 탑 위에 앉아 노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새는 다시 지지직거리고 있었다. 료타는 깨달았다. 돌보지 않은 한 차차 다시 투명해지는 것이다. 그런데도 왜일까. 그게 영영 사라질 거라는 기대가 들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삶이라는 건 원래 이런 것을 데리고 사는 일인지 모른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으로 했던 것 같다. 사라졌다가 불현듯 모습을 드러내고, 기억 속에서 멀어질수록 흐릿해지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잊을 수는 없기에 결국 다시 나타나고야 마는 무언가를 데리고 사는 일이다. 어쩌면 남들도 비슷한 것을 데리고 사는지 모른다. 아무리 몸을 바쁘게 움직이고 아무리 빠르게 달려보아도, 자신의 삶을 충실히 이행해 보려고 해도, 언젠가는 견딜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온다는 것을 료타는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영원히 이것과 함께 살겠구나. 료타는 직감했다. 새와 영원히 살아가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겠구나. 누구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 자꾸만 늘어나는구나. 그런 삶을 살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 다음에는 새를 방치해두는 법을 터득해 가기 시작했다. 그것의 존재를 항시 느끼고 있더라도 반쯤은 무시한 채 생활할 수 있는 무심함을 몸에 익히게 되었고, 나중에는 잊어버린 듯 굴면서 일상을 보내다가, 가끔은 정말로 잊어버릴 수도 있게 되었다. 생각이 많아지고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나 분노가 몰려올 때면 어쩔 수 없이 새가 떠올랐다. 그러면 밖으로 나가서 달렸고, 어느 순간에는 그것이 습관이 되었다.
미츠이가 새를 불러왔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던 것도 같다. 때때로 미츠이가 무엇을 하는지가 궁금했다. 어느 순간에는 소타보다도 그의 생각을 더 자주 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자각한 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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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성수기의 물떼새장은 인터하이 때와는 다른 운치가 있었다. 인터하이 때는 여관을 드나드는 다른 손님들과 마주치지 않도록 커튼을 친 채 생활해야 했지만, 늦가을에는 정원 쪽으로 통하는 문을 눈치 보지 않고 열어둘 수 있었고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운데 가까운 야산에서 밤새가 우는 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할 수도 있었다.
가을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아직 풀벌레가 드문드문 울고 있었다. 늘 그렇듯 사쿠라기가 소란을 떨다가 한 소리를 들었고, 큰 무대에 나가본 경험이 없는 후배 녀석들은 평소보다 밥을 적게 먹은 채 어영부영 주변을 산책하다 돌아왔다. 안자이 감독은 아이들을 일찍 해산시키고 방으로 돌려보냈다. 긴장감으로 점점 팽팽해지고 있는 분위기를, 지나친 비장함이 만들어내기 시작한 아이들의 두려움을 그가 느끼지 못할 리가 없었다. “내일을 위해 모두 일찍 주무시길 바랍니다.” 그 말에 동의했지만, 료타는 일찍 잠들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주장이 되고 처음 나가는 전국대회였고, 그는 어느 때보다 중압감을 느끼고 있었다. 아직 새가 곁에 왔다고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밤에는 분명 근처를 서성거리기 시작할 테였고 결국 료타를 한 번은 깨우고 말 것이었다.
눈을 떴을 때는 한밤중이었다. 몇 시인지 알 수 없었지만 곁에 누운 녀석들은 모두 잠이 들어 있었다. 료타는 습관처럼 닫힌 문 쪽을 확인했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어렴풋한 냉기가 느껴지고 있었으므로 료타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원으로 나와 산책을 하는 동안 새를 만나게 된다면 무슨 말을 할지 고민했다. 료타는 아마 정중하게 부탁할 것이다. “이만 돌아가 주세요.” 어쩌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중요한 시합이 있습니다.” 새가 들어줄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두려움을 떨쳐내고 다시 잠에 들려고 노력할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차가운 바람이 발목을 스치고 지나갔고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흔들렸다. 료타는 멈추어 섰다. 정원 쪽으로 통하는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그 앞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미츠이는 유카타 차림이었다. 헐거운 소매에 팔을 집어넣은 채 느슨하게 팔짱을 낀 자세로 문간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인기척을 느끼고는 고개를 들었다. “너였냐.” 시시한 것을 보았다는 듯 툴툴거리다 이내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왜, 긴장돼서 잠이 안 와?” 료타가 울컥해서 대꾸했다. “그런 거 아니에요.”
갑자기 미츠이가 괘씸하게 느껴졌다. 이런 감정이 부당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미츠이는 저녁 내내 긴장으로 뻣뻣하게 굳은 팀 분위기를 풀기 위해 일부러 사쿠라기와 우스꽝스러운 역할을 자처했다. 사쿠라기와 그의 차이점이 있다면, 사쿠라기는 명백히 그런 선의를 가지고 그러한 행동을 한다는 것이고, 미츠이는 그저 하던 대로 행동한 것뿐이라는 것이겠지만. 미츠이가 이런 사람인 줄 처음에는 전혀 몰랐다. 료타는 그가 얼빠지고 제멋대로인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중학교 시절에 만난 미츠이와 지금 눈앞의 미츠이는 다른 존재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 다시 만났을 때 그를 한눈에 알아본 자신이 이상할 정도였다.
이런 사람에게서 형을 떠올리고, 그 바람에 오키나와에 남아있던 새를 불러오고 말았다니. 료타는 복도 쪽 장지문을 멍하니 응시했다. 새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을 본 듯했다.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앉아.” 미츠이가 옆자리를 두드렸다. 대답 없이 서 있자 미츠이가 다시 불렀다. “어이, 미야기.” 료타는 그와 슬쩍 거리를 두고 대청에 앉았다. 미츠이는 흘끔거리기만 할 뿐 무어라 따로 말 붙이지는 않았다.
등 뒤에서 냉기가 어른어른 느껴졌다. ‘방 밖에 서 있구나.’ 료타는 뒤를 흘끔거렸다. ‘다가오는 걸까, 멈추어 선걸까….’ 온 신경이 복도 쪽 문에 쏠려있을 무렵, 미츠이가 실없는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인터하이 때, 아직 농구부에 남아있던 3학년들끼리 있었던 일화에 대한 것이었다. 아카기 이야기를 하면서 미츠이는 유독 즐거워 보였다. 그 우직했던 아카기가 실은 이곳에 앉아 얼마나 긴장하고 겁을 먹었었는지, 왜 미츠이 넌 떨지 않느냐고 물어보고는 얼마나 짜증스러운 듯 자신을 흘겨보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대화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료타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고 어느새 미츠이는 그때의 일과 지금을 비교하고 있었다.
“너, 그때 아카기랑 똑같은 표정이야.”
미츠이의 이야기는 료타를 짜증스럽게 만들었다. 헛소리를 들은 얼굴로 흘겨보았다.
“긴장돼서가 아니라 미츠이상이 쓸데없는 말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 거예요.”
“이 자식이.”
료타는 툴툴거렸다. “조금은 선배답게 굴어달라고요.”
말문이 막혔는지 미츠이는 끙 소리를 냈다. 료타는 냉기가 가까워진 것을 느꼈다. 새가 장지문 너머에 일렁일렁하고 있었다. 오늘 제대로 잠을 잘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을 때였다. 미츠이가 입을 열었다.
“네가 말을 안 하니까 그렇지.” 턱을 긁으면서 떨떠름해 했다.
“넌 이런 얘기 잘 안 하는 녀석이잖아.”
“…….”
미츠이는 신경 쓰이는 게 있냐면서 료타를 따라 뒤를 한 번 돌아보고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들어줄게.”
료타는 곧바로 알아듣지는 못했다.
“예?”
“그러니까, 들어준다고.”
“뭐, 뭘요?”
그러자 미츠이는 뭐 이런 바보가 다 있냐는 표정으로 료타를 바라보았다.
“뭐가 걱정돼서 잠을 설치는 거냐고 물어보는 거잖아.”
평소 같았으면 자리를 뜨거나, 무슨 소리냐고 얼버무리면서 대화 주제를 돌렸을 것이다. 여태껏 료타는 자신의 문제를 남들에게 제대로 털어놓은 적이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새에 대한 이야기를 누구에게 털어놓을 수 있단 말인가. 서로가 애쓴다
처음 불러왔을 때는 금방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겠거니 했었다. 소타가 허공에 손을 휘적거리면서 되는대로 지은 이름이라는 것을, 요컨대 ‘새とり’라는 것은 이름이라기보다 임시 호칭에 가깝다는 것을 료타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야기 소타는 미야기 료타의 세 살 많은 형으로, 그해에는 열두 살이었다.
소타가 새를 불러오던 순간을 기억한다. 그때 소타는 몸을 길쭉하게 뻗은 채 다다미 위에서 잠을 청하려 하고 있었다. 그의 하반신은 천장을 보며 똑바로 누워 있었고, 상반신은 비스듬하게 좌측으로 기울어 창가 쪽을 향해 있었다. 아직 그들 가족이 오키나와에서 살고 있을 때였다. 오키나와에 있는 고향 집은 언덕 위에 지어져 있어서 대문에서부터 바다를 훤히 내려다볼 수 있었는데, 소타가 쓰던 방은 그와 반대 방향이었고 창문 너머로 고개를 쭉 빼면 왕성하게 자라는 나무 두어 그루와 야트막한 산이 품고 있는 깊고 푸른 어둠 따위를 볼 수 있었다. 그때도 창 너머로 먹구름이 몰려오는 것이, 구름떼가 만들어내는 눅눅한 어둠에 한순간 젖어 드는 숲이 한눈에 들어왔었다.
료타는 불안해하고 있었다. 그의 형은 주말에 료타를 두고 친구들과 놀러나가는 대신 평일 저녁 시간을 할애해 농구를 함께해주겠다고 약속했었고, 어제저녁부터 간신히 그 약속을 지켜나가는 중이었다. 월요일, 화요일에는 방학 숙제를 핑계로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약속이었다. 오늘 비가 오면 또 다른 핑계가 생길 것이었고, 그 때문에 료타는 소타를 좌우로 흔들면서 더 늦기 전에 나가서 농구를 해야 한다고 설득하는 중이었다.
바람이 점점 거세지고 허벅다리에 맞닿은 다다미가 차갑게 느껴질 만큼 공기가 서늘해지고 있었다. 소타는 슬쩍 얼굴을 찌푸리면서 “비 오잖아….”하고 중얼거렸는데, 눈을 뜨지도 않은 채였다. 료타는 그렇지 않다고 소리쳤다. 하지만 소타의 말이 맞았다. 당장에라도 비가 올 것은 자명해 보였다. 이젠 시간이 별로 없었다. 보란 듯이 요란하게 나갈 준비를 하며 동향을 살폈지만 그때까지 소타는 몸을 슬쩍 뒤척일 뿐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참을성을 잃은 료타가 폭발해 소리쳤다.
“거짓말쟁이! 친구들은 하나도 안 귀찮아하면서!”
소타는 그렇지 않다고 중얼거렸지만, 잠결에 흔히 튀어나오는 성의 없는 목소리였다. 그가 움직인 것은 결국 료타가 혼자서라도 나갈 생각으로 일어났을 때였다. 부스스하게 눈을 뜬 소타가 귀찮은 기색으로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지금 코트에 네 친구가 가 있어.” 선심을 쓰듯 말했다.
“원래는 내 친구였는데 빌려줄게.”
그러면서 소타는 자신의 오랜 친구 이야기를 꺼냈다. 료타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러니까 저녁 시간이면 언덕을 내려와 함께 코트를 누벼줄 동네 친구나 그만한 나이의 남동생이 아직 없을 적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때 소타는 표현을 모호하게 사용했다. 처음에는 그 친구를 ‘만났다’고 말했다가,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만들었다’고 표현을 정정했다.
혼자 농구를 하는 건 아무래도 지루하니까 눈앞에 굉장한 상대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급박한 타이밍에 드리블이나 슈팅을 시도하는 척했다는 것이다. 정말로 누군가 앞에 있는 것처럼 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혼자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말 공을 빼앗길 것 같은 긴박감이나 긴장감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고, 그래서 언젠가부터 혼자 코트로 나갈 때마다 허공에 인사를 던지면서 상상 속의 친구에게 한 사람분의 대우를 해주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런데 금방 이런저런 녀석들을 만나버리는 바람에 그만 잊어버렸지 뭐냐.” 소타는 목소리를 바꾸어 으스스한 투로 덧붙였다.
“내가 꽤 오랫동안 두고 가서 걔가 좀 화가 나 있을지도 몰라.”
“그냥 지어낸 거지?”
료타가 마른침을 삼키며 물었다.
“믿기 싫으면 관둬.”
소타는 아예 팔베개까지 하고선 벌렁 드러누워 능청을 떨었다.
“어차피 곧 비도 오잖아. 료타, 오늘은 그냥 나가지 마라.”
그제야 료타는 방금 이야기는 순전히 그가 혼자 나가지 못하도록 소타가 지어낸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걷잡을 수 없는 배신감이 차올랐고 오기가 생겼다. “바보 취급하지 마!” 그는 일부러 발소리를 내며 거실로 나왔다.
농구공을 챙기고 운동화를 신은 다음 대문을 뛰쳐나왔다. 하늘은 묵직하고 흐렸지만 아직 비가 내리지는 않았다. 빠르게 언덕을 달려 내려와 이차선 옆에 난 동네 코트에 도착하기까지 십 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해안과 바짝 붙어 있는 위치라 그런지 언덕 위와 비교도 안 되는 거센 바람이 불고 있었다. 철창 너머로 이차선 도로가 보였고, 도로의 가드레일 너머로 뿌옇게 보이는 파도가 무시무시한 굉음과 함께 어렴풋한 빛무리를 내뿜으며 끝없이 부서지고 있었다. 잿빛으로 변한 바다는 흐린 하늘과 거의 비슷한 색깔이 되어 있었고, 산산이 부서지는 물거품은 구름에서 떨어져 나온 빗방울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였다.
농구공을 안은 채 료타는 잠시 텅 빈 코트 가장자리에 서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코트에 자기 혼자뿐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나니 소타에 대한 배신감이 다시금 차올랐다. 그는 비가 퍼붓기 전까지는 이곳에서 혼자 농구를 하기로 결심했다. 비에 쫄딱 젖은 채 집으로 돌아가 과시하듯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자신과의 약속을 너무도 쉽게 저버린 소타의 방만을 꾸짖고 싶었다.
료타는 자세를 낮추고 드리블을 시작했다. 퉁, 퉁, 공을 튀기는 소리가 텅 빈 코트를 울리며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먹구름이 투과하는 우중충한 빛 때문에 라인 위로 드리운 료타의 그림자는 너무도 희미해서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사사사 바람이 불고 풀이 허리를 꺾으며 길게 드러누웠다. 어느 순간 료타는 공기가 차가워진 것을 느꼈다. 자신이 곤두서 있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시시각각 닥쳐오는 비바람의 징후일 뿐인지 알 수 없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소타가 들려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뒷덜미에서 식은땀이 솟아올랐다. 그때였다. 사각사각 풀을 밟고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건너편에서 들려온 것이었는데 점점 코트로 내려왔다. 료타의 심장이 얼어붙었다. 공을 놓친 손이 허공으로 길게 뻗었다가 멈추었다. 반사적으로 뒤를 돌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코트에는 여전히 료타 뿐이었다. 신발 앞코에 맞아 크게 튀어 오른 공이 퉁 퉁 소리를 내며 골대 앞으로 데구루루 굴러갔다.
료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본능적으로 숨을 죽인 채였다. 건너편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에도 그곳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건너편, 정확히는 펜스가 쳐져 있지 않아 코트의 출입구로 사용되는 방향에는 살짝 경사진 둔덕이 있었는데, 아이들이 자주 밟으며 드나드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있어 한바탕 경기를 뛴 다음 드러눕기에 좋았다. 종종 소타와 일대일을 마치고나면 료타도 거기 앉아 음료수를 나누어 마시고는 했었다.
그곳이었다. 그 둔덕에, 마치 누군가 서 있기라도 한 것처럼 나란한 한 쌍의 발 모양으로 둥그렇게 풀이 짓눌려 있었다.
한동안 코트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고막을 때리고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흩날리며 뺨을 할퀴었다. 잠시 후 짓눌려 있던 풀이 어정쩡하게 솟구치더니 사각사각 소리가 났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경로를 따라 풀이 꺾이며 고스란히 발자국을 드러냈다. 마침내 코트를 가로지른 발소리가 얼어붙은 료타를 향해 다가와 그 앞에 멈추어 섰다.
료타는 숨을 멈췄다. 공기가 너무 차가워서 입김이 날 것 같았다. 료타는 무엇인가 자신의 팔을 만지는 것을 느꼈다. 팔꿈치를 살짝 터치하는 정도였는데 나중에는 손가락을 세워 주욱 미끄러뜨리더니 손등을 툭하고 건드렸다. 료타가 경기를 일으키며 뒤로 물러났다. 그 순간 무엇인가 료타를 강하게 밀쳤다. 가슴팍에 닿는 두 손의 감촉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료타는 바닥을 나뒹굴었다. 겁에 질려서 거의 흐느끼고 있었지만 극한의 상황에 처한 덕분에 번쩍 정신이 돌아왔다. 료타는 벌떡 일어난 다음 골대 앞까지 굴러간 공을 챙겨 쏜살같이 달아났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단숨에 코트를 빠져나와 언덕을 내달리는 동안 두 뺨에서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집에 도착한 다음에야 그것이 눈물이 아니라 빗물이었음을 깨달았다. 언제부터였는지 비가 내리고 있었고, 머리카락이 조금 젖었을 뿐 료타의 몸은 대부분 보송보송했다.
그날 료타는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하고 방에 처박혔다. 낮잠을 다 잔 소타는 뒤늦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료타를 귀찮게 굴기 시작했다. 동생이 자기를 본체만체하는 것이 기분이 상해서라고 생각했던 그는 장지문을 반쯤 닫아놓고 문 뒤로 열 손가락을 움직이면서 재미있는 그림자를 만들었다. 돌아누운 료타의 목덜미 위로 소타가 만든 토끼, 개, 주전자의 그림자가 길쭉하게 드리웠다. 소타는 새끼손가락을 능숙하게 움직여 개의 주둥이가 뻐끔뻐끔 벌어지게 만들었고, 그 위에 자기 목소리를 우스꽝스럽게 입혀 다른 누군가인 것처럼 물었다. “료-타 군, 료-타 군. 멍멍 박사일세. 누가 료-타 군을 그렇게 가엾게 만들었나?” 료타가 대답하지 않자 개는 다시 주둥이를 뻐끔거렸다. “오호라, 소타 때문이로구나. 그렇지?” 료타는 대답 대신 몸을 돌아누워 장지문을 올려다보았다. 소타가 새끼손가락을 벌리자 개의 주둥이가 벌어졌고 그림자가 료타의 얼굴을 반쯤 가리면서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어쩔 수 없지! 이 멍멍 박사가 못된 소타를 불러내 혼쭐을 내주겠네. 어떤가?”
“소짱이 거짓말했어.”
료타가 말했다.
“옳거니! 거짓말은 나쁜 거야. 소짱을 혼내주자!” 멍멍 박사가 크게 입을 벌렸고, 곧이어 장지문 아래 쪽에서 불쑥 소타의 머리가 나타났다. “으악, 하지 마세요!” 소타가 애원했지만 멍멍 박사는 용서하지 않겠다는 듯 그의 머리 위로 점프했고 전투가 벌어졌다. 멍멍 박사가 소타의 머리카락을 물어뜯자 소타는 과장된 신음을 내면서 살려달라고 빌었다. “부족해. 더 혼내줘.” 료타가 말했다. “지원군을 불러서 더 혼내줘.” 그러자 멍멍 박사가 휘파람 소리를 내면서 땅으로 꺼졌고, 잠시 후 기다랗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이루어진 날개를 흔들며 매 한 마리가 나타났다.
매는 한동안 소타의 머리 위를 빙글빙글 배회하다 기회를 포착한 듯 급강하해 마지막 치명타를 날렸다. 어느새 날카로운 열 개의 발톱으로 변한 날개가 잔혹한 기세로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소타는 끅 끅 죽어가는 소리를 내며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했다.
“료타, 기분 풀어라. 응?”
료타가 얼른 돌아누웠지만 소타는 자신의 승리를 직감했다. 장지문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며 소리쳤다. “어라, 웃는다.”
“아니야.”
“웃는다. 다 봤어.”
두 손이 장지문을 떠나자 그림자 무리는 다시 자신들의 세계로 돌아갔다. 소타가 다가와 동생의 옆구리와 겨드랑이 사이로 손을 집어넣었다. 료타는 꿈틀대다 말고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 마!”
“용서해 줄 거야? 형님을 용서하는 거지?”
“알겠어. 알겠다니까.”
소타가 료타 위로 쓰러졌고 료타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싸움은 끝났다. 늘 그렇듯 소타를 용서하는 것으로 모든 일은 정리되었다. 소타를 옆으로 밀쳐내며 중얼거렸다. “소짱은 바보야.” 대답 대신 킬킬거림만 돌아왔다.
밤새 비바람이 불었다. 창밖은 두려운 소리로 가득 찼고, 새파란 빛 아래서 나무 그림자가 이리저리 흔들리며 방바닥을 할퀴었다. 야자수와 옥수수 대가 반쯤 드러눕고, 나뭇가지들이 힘겹게 구부러지며 비명을 질러대는 한밤중에 느닷없이 눈이 떠졌다. 곁에는 소타가 잠들어 있었고 방은 깜깜했다.
어째서인지 다음 순간 료타는 바깥에 서서 누군가 기우뚱거리며 걷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것은 한 발 한 발 힘겹게, 언덕 아래서부터 천천히 올라가려 하고 있었다. 다리를 절거나 몸을 가누기 힘들어서는 아니었지만, 뭐랄까, 그것의 몸짓에는 설명하기 힘든 께름칙함이 있었다. 비틀거리는 몸이 서서히 비탈길에서부터 그 모습을 드러냈다. 료타는 점점 겁에 질렸다. 저게 집을 찾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꿈에서 드는 감정은 일종의 계시와 같아서, 료타가 그렇게 생각해 버려서인지 아니면 원래 그렇게 정해진 전개였던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은 결국 료타의 집 대문 앞에 멈추어 섰다.
어느새 료타는 다시 방에 누워 있었다. 이불이 반쯤 내려간 상태였고, 그래서인지 몹시 추웠다. 곁에 누운 소타가 평온하게 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쪽으로 돌아눕거나 손을 움직여 이불을 덮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잠시 후 거실 쪽에서 드르륵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 폭풍우가 휘몰아쳤다가 드르륵 소리와 함께 다시 조용해졌다. 료타는 극도의 공포에 질렸다. 무언가가 발을 절며 오고 있었다. 나무 바닥이 삐걱거렸고,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그러다 문 앞에 멈추어 섰다.
료타는 숨죽인 채 시선만 움직여 장지문 쪽을 확인했다. 누군가 서 있었다. 별로 키가 커 보이지는 않았고, 기껏해야 료타 또래 정도 돼 보이는 덩치였는데, 윤곽을 이루는 가장자리가 노이즈가 낀 텔레비전 화면처럼 지저분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아까 코트에서 만난 녀석이라고 료타는 직감했다. 내내 비를 맞으며 언덕을 올라와 잔뜩 젖어있었고, 물이 뚝 뚝 떨어지는 소리가 고스란히 들려왔다. 그것은 료타가 깨어있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꽤 오랫동안 문 앞에 서 있기만 하다가 어느 순간 아주 천천히, 한 손을 들어 올렸다.
겁에 질려 크게 뜬 눈으로 료타는 문 너머에서 벌어지는 일을 숨죽여 지켜보았다. 우선 그것은 한 손을 머리 높이까지 들어 올린 다음, 다른 한 손을 마저 들어 올렸다.
한동안은 그 상태로 어쩔 줄 모르는 것처럼 굳어 있었다. 그것은 마치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는 동안 윤곽을 이루는 가장자리가 심하게 치직대면서 미세한 먼지 같은 것을 뿜어냈다. 마침내 그것이 다시 손을 움직였다. 팔을 교차해 작은 엑스자를 만든 다음, 느릿느릿한 속도로 양 손바닥을 힘껏 펼쳤다. 그러고는 무척이나 조심스럽고 신중한 몸짓으로, 두 손을 포개었다. 료타는 숨을 들이켰다. 소타가 만든 것처럼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그것은 아마도 매를 만들려 하는 것 같았다….
눈을 떴을 때는 이른 아침이었다. 소타는 벌써 일어나 이불을 걷고 있었다. 발끝으로 장난스럽게 료타를 깨우면서 이불을 걷어갔다. 얼굴을 찌푸리며 웅크리자 소타는 이리저리 동생을 흔들면서 요란을 떨었다. “일어나, 료타. 더워지기 전에 한 판하고 오자.”
마지못해 일어난 료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정원과 통하는 대청 문이 제대로 잠겨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고리는 제대로 잠금장치에 걸려 있었고, 밤새 문이 열린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긴장이 풀리면서 손쓸 도리 없이 눈물이 고였다. 소타가 다가왔다.
“나갈 준비 안 하고 왜 그러고 있어?”
소타는 벌써 옷을 갈아입은 채였다. 헐렁헐렁하고 통풍이 잘되는 검은색 나시를 입고 있었는데, 그 무렵 소타가 즐겨 입던 것이었다. 료타는 정원을 노려보면서 작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나가기 싫어.”
“뭐야, 농구하기 싫어?”
고개를 떨어뜨렸다. “농구는 하고 싶어.”
“그럼 얼른 준비해.”
마침내 소타가 료타의 눈물을 발견했다. 그는 호들갑을 떨면서 료타를 돌려세웠다. “뭐야, 료타. 너 우는 거야?” 입을 쭉 내밀면서 한동안 버텼지만, 결국 료타는 입술을 물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소짱 때문이잖아.” 뜨거운 눈물이 속절없이 두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소짱이 불러왔잖아.” 그러고는 와앙 울음을 터뜨렸다.
자초지종을 들은 소타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는 간밤에 동생에게 벌어진 일을 허구와 현실의 세계를 넘나드는, 어떤 초자연적인 현상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료타가 순진하다고 생각했고, 겁에 질린 동생에게 공감하려고 애쓰는 와중에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입가에 만연한 미소를 띤 채 소타는 발소리를 내면서 복도를 이리저리 걸어 다니고 장지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료타를 안심시켰다.
“그냥 꿈이야. 그리고 그 녀석 화도 안 났을걸.”
료타는 믿지 못했다. “어떻게 알아?” 소타는 휘파람을 불었다. “그냥. 감이야.”
“아직도 농구하러 나가기 싫어?”
소타가 믿어주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인지 간밤의 일이 더욱 바보같이 느껴졌다. 어쩌면 료타는 그저 무서운 꿈을 꾼 걸지도 모른다. 머뭇거리는 동생을 지켜보던 소타가 능청스럽게 툴툴댔다.
“아, 슬슬 다른 녀석들도 내려올 텐데.”
“갈래.”
소타의 얼굴이 환해졌다.
“번개처럼 준비 끝내고 나오는 거야.”
두 사람은 느긋하게 언덕을 내려왔다. 그새 누가 쓸어둔 것인지 나뭇잎이나 돌 따위가 길가 가장자리로 치워져 있었다. 간밤의 비바람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마다 무언가 훼손되거나 부러졌다. 옆집 대문에는 꺾인 나뭇가지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이 정도면 코트도 엉망일 수 있겠다고 소타가 중얼거렸지만, 막상 내려가 보니 물난리가 난 흔적이 있을 뿐 코트는 대체로 멀쩡했다. 골대 그물에 나뭇잎이 걸린 것을 본 소타가 슛을 날렸고, 공은 림에 한 번 맞고 튀어 올랐다가 안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그물에 걸린 잔여물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소타가 기분 좋게 주먹을 들어 올렸다. “아자!”
그곳에서 한 시간 정도 농구를 했다. 료타는 좀처럼 집중하지 못했다. 불현듯 뒤를 돌아보거나 둔덕 쪽을 살피면서 하던 행동을 멈추었고, 그때마다 소타에게 어이없이 점수를 내어주고 말았다. 태양이 높게 떠오르며 점차 지열이 올라왔다. 소타는 농구를 중단하고 근처 자판기로 달려가서 물방울이 맺힌 음료수 캔을 뽑아왔다. 두 사람은 둔덕에 드리운 나무그늘에 앉아 이온음료를 들이켜며 숨을 돌렸다.
“그냥 지어낸 이야기인 줄 알았어.” 료타가 말했다.
“어제 들려준 얘기?” 소타가 그를 쳐다보았다.
“응.”
“전부 지어낸 건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 부풀려서 말한 건 있어.”
소타는 남은 음료수를 한입에 들이켰다.
“혼자 농구할 때 누가 있다고 생각하고 움직인 건 맞아. 그래도 그게 진짜 있다고 믿은 적은 없어.”
료타는 어제 그것이 서 있던 둔덕의 자리를 쳐다보았다.
“진짜?”
“그럼. 인사도 장난삼아 한두 번 하고 말았는걸. 이름도 안 지어줬단 말이야.”
소타가 캔을 구기고는 자리에 벌렁 드러누웠다. 료타는 양손으로 음료수를 감싼 채 생각에 잠겼다.
“소짱은 아니라고 했지만, 걔는 화난 것 같아.”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왜?”
“어제 날 밀쳤어.”
“그랬단 말이야?”
“응.” 료타가 건너편 코트를 가리켰다.
“그래서 저기서 넘어졌어.”
소타는 흥미롭다는 반응이었다. 료타의 시무룩한 표정을 보곤 손바닥으로 차양을 만들어 동생이 가리킨 지점을 꼼꼼하게 살피는 척했다.
“내 동생이랑 놀아달라고 부탁했더니, 놀아주진 않고 괴롭혔구나!”
그것으로 끝내지 않고 큰소리로 으름장을 놓기 시작했다. 마치 그것이 곁에 서있거나, 혹은 숨어서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는 것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소타는 허공에 대고 삿대질하며 엄숙하게 말했다.
“이 녀석, 내 동생 괴롭히지 말고 상냥하게 대해주라고. 너 때문에 내 동생이 겁먹었잖아. 그러면 다음에 누가 너랑 놀아주겠냐?”
“그만해, 소짱. 또 화낼 거야….”
료타가 질겁하자 소타는 보란 듯이 콧김을 내뿜었다.
“내 동생 또 괴롭히기만 해.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사사사 바람이 불었다. 코트 가장자리에 난 웅덩이의 수면 위로 물결이 일더니 갑자기 주위가 고요해졌다. 건너편 도로로 자전거를 탄 아저씨가 느릿느릿 페달을 밟으며 지나갔다. 소타가 주변을 살피며 귀를 기울였다. 다른 기척은 없었다. 둔덕에는 여전히 두 형제만이 앉아 있었고, 결국 소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겁먹었나 봐.” 엉덩이에 묻은 풀을 털면서 소타가 말했다.
“그니까 이제 안 올 거야.”
일상은 금방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폭풍이 휩쓸고 간 골목도 사흘 정도 만에 정리되었다. 이웃집은 부러진 가지를 치우고 나무에 부목을 덧대주었고, 료타도 더는 비슷한 일을 겪거나 악몽을 꾸지 않았다. 하지만 소타는 그 일이 제법 인상에 남았는지 그 후로 단둘이 농구를 할 때면 허공에 사인을 주고받거나 콜을 부르는 시늉을 하면서 동생을 놀리곤 했다. “거기, 료타 옆에! 제대로 막아!” 장난인 걸 모르지 않는데도 료타는 매번 질겁했다. 언제가 되었든 형의 그러한 행동은 조금 섬뜩한 느낌을 주었다. 그 녀석의 이름도 그 무렵에 생겼다. 늘 그렇듯 허공에 콜을 넣던 소타가 얼결에 “어이! 거기 새!”하고 부른 것이 그대로 호칭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그게 새를 만들었다며.” 손바닥을 포개어 매를 날리면서 소타가 설명했다.
“그래서 일단은 새라고 부른 거야. 진짜 이름은 아니니까, 뭐 괜찮지 않을까?”
그렇다고는 해도 금방 새로운 이름을 지어줄 게 분명하다고 료타는 생각했다. 소타는 이 일에 재미가 들린 것 같았다. 얼마 안 가 코트에 들어갈 때나 나올 때 꼬박꼬박 새에게 인사하는 습관까지 들었고, 둔덕에 누워있다가도 곁에 있는 것처럼 새에게 말을 걸기도 했다. 그저 장난일 뿐이라고 소타는 말했지만, 때때로 료타는 두 사람의 가까운 곳에서 불현듯 서성이는 기척이나 알 수 없는 시선을 느끼곤 했고, 그때마다 고개를 돌려 거기에 아무도 없음을 반드시 확인한 다음에야 마지못해 자리를 떠날 수 있었다.
조만간 새가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뒤로도 무서운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대신 장난이 끝났다. 소타가 바다에 나갔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하게 된 날부터 모든 것이 변했다.
방학이 끝나자마자 료타는 학교 체육관에 박혀 살았다. 부 활동은 좋은 핑곗거리가 되어주었다. 아이들은 형의 등번호를 달고 돌아온 료타를 보고 처음에는 우물쭈물했지만, 일단 시합이 시작되면 그가 처한 상황을 잊어버렸고 금방 변화에 익숙해졌다. 료타도 그러한 분위기에 적응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이따금씩 소타의 생각이, 그가 남기고 간 모든 것들이 불현듯 가슴을 할퀴는 통증과 함께 찾아오곤 했다. 그것은 료타를 손쉽게 무장 해제시키는 것이어서, 달릴 때나 슛을 던질 때, 코트를 가로지르면서 큰소리로 팀 메이트를 부를 때마다 반드시 그를 멈추어 세우고 마는 것이었다.
타교 상급생들에게 대패한 날에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료타는 자신을 도발하는 상대 선수에게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고, 중간에 손목 부상을 입고 교체되는 굴욕까지 맛보아야 했다. 하필 어머니가 오랜만에 안나와 함께 체육관을 찾은 날이었고,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료타에게 그 일은 무척 치욕으로 남았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날은 어머니에게도 여러모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것 같다. 정확히 어떤 인상을 받은 것인지 료타로서는 알 길이 없지만, 그 일이 있고 얼마 안 가 소타의 방을 치우기로 마음먹은 어머니가 박스를 든 채 방으로 들어갔다가 료타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일이 벌어졌다. 거세게 저항했지만, 료타는 결국 어머니를 이길 수 없었다. 그가 어머니를 이길 수는 없는 법이었다. 언제나 그랬다.
울분에 차서 밖으로 뛰쳐나와 달리다 보니 어느새 동네 코트 앞이었다. 저녁노을이 지고 있었고, 파도가 잔잔하게 물결치며 해안으로 밀려들었다. 형이 죽은 다음부터 료타는 일부러 이곳을 피해 다녔다. 소타 생각이 나서도 있었지만, 코트에서 공을 튀기고 있으면 지나가던 주민이 그를 알아보고 말을 걸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한동안 자리에 서서 그가 하는 것을 구경하는 일이 잦아졌기 때문이었다.
때로 주민들은 곁에 있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음을 모른 척하기란 어려웠다. 사람들은 료타나 그의 가족들에게 뭔가 해주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괜한 참견일 뿐이었다.
이 모든 상황이 어쩔 도리 없이 흘러가는 수순처럼 느껴졌던 것이 기억난다. 세상에 존재하는 소타의 모든 흔적을 지우기로 작정한 듯 구는 어머니에게 대항하기 위해서, 마치 운명이 료타 자신을 그곳에 데려다 놓은 것처럼 느껴졌던 것 같기도 하다. 손을 펼쳐보니 소타가 자주 차던 빨간색 아대가 들려 있었다. 어머니와 몸싸움을 벌이다 챙겨서 나온 유일한 것이었다. 그것을 기도하듯 그러쥐면서 흐느낌을 억누르려고 애썼다. 그런 방식으로, 그는 오랫동안 속에서 끓어오르는 뜨거운 울음을 견뎠다. 그가 작게 헐떡였다. “돌아와 줘.” 간절하게 속삭이고 또 속삭였다. “돌아와 줘, 부탁이야….”
사사사 바람이 불면서 돌연 세상이 침묵했다. 파도가 부서지며 사방으로 물거품을 흩날리다가, 전부 멈췄다. 료타는 등 뒤로 다가온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차가운 냉기가 훅 끼치더니 입김이 피어올랐다. 무엇인가 료타의 어깨를 툭하고 건드렸다. 발끝에서부터 소름이 돋아났다. 료타는 천천히 뒤돌았다.
새는 거기 있었다. 바로 뒤, 두 팔을 벌린 채, 마주 보듯 우두커니 서 있었다. 반투명한 몸체 너머로 건너편 코트가 어른거리고 구부러지며 굴절되는 광경이 그대로 비추어 보였다. 거센 바람이 귓가를 때렸다. 파도가 산산조각 나고 새로운 파도가 수평선에서부터 밀려들기 시작했다. 료타는 눈을 깜빡였다. 어느새 눈앞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코트는 텅 비어있었다.
이 주 뒤 료타는 가족들과 함께 요코하마 부근으로 이사했다. 어머니가 인부들을 시켜 오래된 가구를 바깥으로 내놓는 동안 료타와 안나는 자잘한 짐 정리를 도왔다. 가구를 포함한 대부분의 물건을 치우고 나니 공간이 탁 트이면서 집이 엄청나게 넓어졌다. 안나는 한평생 살아놓고 갑자기 낯설어진 복도와 방 구석구석을 뛰어다녔다. 어머니는 무릎을 접고 앉아 구석에 낀 먼지와 얼룩들을 정성스럽게 닦아냈다. 오랫동안 신세를 졌던 공간을, 때로는 행복에 겨워 기대곤 했으나 종국에는 슬픔에 겨워 두고 떠나는 집의 구석구석 묻히고 만 삶의 흔적을 꼼꼼하게 지워냈다.
어머니가 료타를 부른 것은 마지막으로 우측 복도를 닦아내고 있을 때였다. 소타의 방문 앞에 앉아 바닥을 유심히 들여다보다가, 료타가 다가오자 “이거 네가 그런 거니?”하고 물었다. 료타는 그녀가 가리킨 곳을 내려다보았다. 마룻바닥에 희끄무레하게 남아있던 흔적이 물기를 머금으며 차차 선명해지고 있었다.
그것은 어린아이의 것으로 보이는 짙고 새카만 발자국이었다. 소타보다 훨씬 작았지만, 료타의 것도 아니었다. “잘 모르겠어요.” 마침내 료타가 대답했다. “잘 모르겠으니까 그냥 내버려둬요.” 그렇지만 알고 있었다.
두려웠다. 새가 남긴 흔적이었다.
─
한동안은 겁에 질려 있었다. 가나가와의 작은 아파트로 이사 온 다음에도 종종 바깥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숨죽여 귀를 기울였고, 방문 너머에 누군가 서 있는 악몽을 꾸고는 했다. 하지만 아무도 없는 곳에서부터 발소리가 들리거나 불현듯 서늘한 공기가 찾아드는, 그런 일들은 더는 벌어지지 않았다. 불길한 기운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였다. 그러는 동안 료타는 서서히 새가 바다를 넘을 만큼의 힘은 없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해를 가리던 구름이 바람에 천천히 떠밀리듯, 두려움이 마음속에서 사라져갔다. 어쩌면 그들 가족이 고향 집에 남아있는 소타의 흔적과 낡은 가구들을 두고 섬을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새 역시 함께 처분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 그것을 이루는 힘이 약해지다 못해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닐까.
아마 그럴 것이었다. 평화로운 몇 주가 지속되자 그는 안도했다. 얼마 안 가 학교생활에 주의를 빼앗기면서부터 료타의 고난은 조금 더 실질적인 세계로 진입했고, 그런 식으로, 새 말고도 새롭게 두려운 것들이 생겨났다. 삶이 끊임없이 변했다.
학교 아이들은 료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료타는 신학기가 시작되고도 몇 주가 지났을 무렵 전학생의 신분으로 나타난 것이었고, 아이들은 그의 말투에서 드러나는 방언과 날 선 표정에 낯을 가리면서 쉽게 모험을 하려 들지 않았다. 사내아이들은 걸핏하면 그에게 시비를 걸어댔다. 료타 역시 그들을 필요로 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부터 반 아이들과의 사이는 점점 더 벌어졌다. 벌써 초여름이었다. 여름방학이 닥쳐오고 있었지만 그는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소타가 떠난 다음 처음으로 맞는 방학이었다. 안나가 있었지만, 손위 형제와 지내는 것과는 느낌이 달랐다. 그는 외로웠다. 외로웠지만 친구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애원하고 싶지 않았다. 동료를 필요로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전처럼 혼자 코트로 나가야 하는 처지를 자처했다. 이전에는 소타를 간절히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나갔지만, 지금은 혼자서도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나갔다. 외로운 상태를 유지하려고 악을 쓰면서 그 무렵에는 내내 홀로 서 있었다.
미츠이 히사시는 한 학년 위 선배로, 같은 학교는 아니었다. 그 무렵 단 한 번, 료타가 자주 찾는 동네 코트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날 만남이 전부였고 그 뒤로 다시는 코트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가 지역구에서 유명한 중학생 농구 선수라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그날 료타는 내내 멍청하게 굴었다. 오키나와를 떠나온 이래로 몇 주 만에 남과 승부하는 것이었고, 미츠이는 당황스러울 만큼 명랑하고 적극적으로 나왔다. 미츠이는 어마어마한 슛을 가지고 있었다. 손을 들어 올리면 깔끔한 포물선을 그리며 공이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가 림을 스치며 그물 정중앙으로 떨어지는 광경이 몇 번이고 연출되었다. 어느 타이밍이 되었건 간에 그런 슛을 정확하게 쏠 줄 알았다. 처음 그 슛을 보았을 때 료타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미츠이는 슛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드리블에 능숙한 반면 점프슛에는 쥐약이고, 컨디션에 따라 승부수를 두는 데에도 취약한 모습을 보이곤 하던 료타와는 다르게, 미츠이는 슛뿐 아니라 드리블에도 능숙했고, 상황을 계산하거나 치고 빠지는 일에도 두각을 드러냈다. 자신감 있게 플레이를 이어 나갔을 뿐더러 중간중간 잊지 않고 료타의 승부욕을 종용하는 여유까지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미츠이에게는 당시 료타가 또래아이들로부터 거의 받지 못했던 온정 어린 능력이 있었다. 바로 인내심이었다. 그는 료타의 실책이나 소극적인 모습에도 아랑곳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가르쳐주려고 했다. 슛을 쏘기 좋은 타이밍, 일대일 대치 중에 상대를 뚫고 나가는 법, 도발하거나 도발당하지 않는 법을 알려줌으로써 료타와 제대로 된 한 판을 해나가고 싶어 했다.
‘이 사람, 소타를 닮았다.’
그런 다음, 료타는 큰 충격을 받았다. 가나가와로 이사를 온 이래로 소타의 존재는 암묵적인 금기가 되어 있었다. 어머니는 소타의 물건을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워버린 지 오래였고, 료타도 료타대로 가족을 포함한 어느 누구와도 소타에 관한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안나만이 이따금 떠보듯 큰오빠를 언급하며 두 사람의 눈치를 살피곤 했지만, 두 사람이 껄끄럽게 굴며 제대로 반응하지 않았으므로 금방 다른 주제로 넘어가기 십상이었다. 그런 식으로, 어머니는 어머니만의 소타를, 료타는 료타만의 소타를 만들어갔다. 공유되지 않은 상처는 각자의 이야기로 굳어지는 법. 이제 소타는, 소타라는 것은 료타가 원할 때만 기억 속에서 몸을 일으켜 세우는 또 다른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낯선 사람으로부터 이끌리듯 형을 떠올리고 말았다는 것을 료타는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이 아직 소타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소타를 공유할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그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누군가와 진실로 상처를 나누기를 포기하고, 고통을 삭이며 살아가더라도 사람을 약하게 만드는 외로움으로부터 결코 도망칠 수 없다는 그 사실은 료타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미츠이를 내버려두고 코트를 빠져나오는 동안 두 다리가 후들거렸다. 미츠이가 미웠다.
그날 밤 고향 집에 갔다.
기억이 그를 그곳으로 데리고 갔다.
료타는 대청에 앉아 있었는데, 밤이었고, 실내는 텅 비어있었다. 빈집 곳곳에선 기둥이 느릿느릿 삭아가는 소리, 천장이 삐걱거리는 소리, 쥐들이 만들어내는 작은 발소리 같은 것들이 끊임없이 속삭이듯 들려왔다. 소타의 방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푸른 달빛이 창문을 투과해 사선으로 떨어지면서 문 앞에 선 무언가를 희끄무레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어둠에 싸인 옆모습이 일렁일렁하고 있었다. 료타는 어렵지 않게 그것을 알아보았다. 새였다. 그것이 여전히 거기 있었다.
그때 새가 고개를 돌렸다. 대청 쪽으로 다가오는 것을 본 료타의 가슴이 얼어붙고 몸이 뻣뻣해졌다. 하지만 새는 그를 지나쳐 마당으로 나왔다. 대문을 통과한 다음 느릿느릿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했고, 어느새 상황이 바뀌어 료타는 언덕 아래서 내려오는 새를 기다리고 있었다.
새는 서두르지 않고 움직였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는 것처럼 보였다. 언덕을 다 내려온 다음 작은 해변 쪽으로 향했고, 그곳에 정박해 있는 작은 배에 올라탔다. 하얗게 도색돼 있는, 두 명 정도가 간신히 올라탈 법한 아기자기한 돛단배였다. 통달에 삼각돛을 걸고 레버를 당겨 활짝 펼친 다음, 노를 저으며 천천히 육지를 벗어났다. 바람이 천을 떠밀었고, 뱃머리는 평화롭게 물살을 가르며 바다로 나아갔다. 새는 배에 앉아 줄곧 한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료타는 부유하는 영혼처럼 조금 떨어져 그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망망대해를 가르며, 어디론가 꾸준히 나아가는 것을 계속해서 내려다보면서, 어디로 가는 거지. 어디로 가고 있는 거야, 하고 물었다.
새는 대답하지 않았다.
한동안 료타는 미츠이를 기다렸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미츠이를 그런 식으로 보낸 것이 후회가 되었다. 미츠이가 나타났던 시간대에 코트를 어슬렁거려보기도 하고, 길을 걷다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한 무리의 남학생들이 보이면 발걸음을 멈추고 아는 얼굴이 없나 순간적으로 훑어보기도 했지만 미츠이가 다시 나타나는 일은 없었다. 대신 다른 것이 왔다.
새가 섬을 건너왔다는 것은 반년쯤 뒤에 알았다. 징후가 먼저였다. 안나가 외출했는데도 집에서 약간의 인기척이 들릴 때가 있었고, 그런데 막상 들어가 보면 아무도 없다거나, 혼자 공을 튀기고 있으면 빈 그늘에서부터 시선이 느껴진다던가 하는 일이 있었다. 희미하지만 발자국이, 혹은 손자국이 남을 때도 있었다. 무엇인가 근처를 맴돌고 있다는 것을 료타는 느낄 수 있었다. 방이 차갑게 느껴질 때마다 일어나서 창문을 닫았지만 설명할 수 없는 써늘한 냉기가 여전히 방안을 맴돌고는 했다.
료타는 다시 나타난 새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처음에는 두려웠다. 어떻게든 떨쳐내 보려고 이런저런 방법을 동원해 보았다. 부적을 쓰거나, 불경을 외거나, 주기도문을 외운다거나 해서 달아나게 만들려고 했다. 불온한 존재를 쫓아내기 위한 신성한 문장과 행위를 몇 번이고 되풀이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새는 요괴나 유령처럼 다를 수 있는 존재가 아닌 것 같았다. 차라리 그림자와 비슷한 존재라고 봐야 할 것 같기도 했다. 그저 내버려두는 것 외에는, 두려워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새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아리송해져 갔다. 때로 그것은 그저 료타를 따라온 것에 족해 보였다. 거리를 둔 채 지켜보고는 있지만 전처럼 료타에게 직접적으로 닿거나, 개입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새가 이 이상으로 날뛸 것 같다는 인상을 받기란 어려웠다.
새는 모습을 드러내는 데에도 신중해진 것 같았다. 더는 전처럼 문 너머로 실루엣을 드러내 료타를 공포에 질리게 하거나, 아무도 없는 코트에 불현듯 나타나 그를 만지거나 밀치는 소동을 벌이지도 않았다. 어느 순간 료타는 새를 쫓아내는 일을 그만두었다. 한 번 포기하고 나자 새를 내버려두는 일은 무척 쉬웠다. 가끔씩은 새가 어디 있는지 두리번거리는 일조차 잊어버렸다. 그럴 때면 새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가, 어느 순간 휙 하고 나타났다. 꽤 오랫동안 모습을 감추었다가 조용히 돌아오는 날도 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일들이 점점 더 잦아졌다.
중학교 2학년이 되고부터 료타는 본격적으로 시비에 걸리기 시작했다. 그는 반쯤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녹아들었지만 몇몇 아이들에게는 이전보다 더 큰 반감을 샀다. 성장기에 들어선 아이들 틈에서 료타는 변함없이 작은 축에 속했다. 그런 그를 대놓고 깔보는 녀석들이 생겨나며 충돌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한번은 그의 순순히 굽혀주지 않는 성격 때문에 양키무리와 마찰을 빚은 일이 있었다. 그때 료타는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양키 중 하나가 내려와 길을 가로막았다. 아마 료타여서가 아니라 평소에도 그렇게 구는 녀석들이고, 늘 그렇듯 지나가는 사람에게 그냥 시비를 걸고 싶었던 것 같았다. 난간 쪽에 서 있던 료타는 갑자기 등장한 양키 때문에 어색하게 멈추어 섰고, 거의 매달리듯 난간을 잡는 포즈로 잠시 휘청거렸다. 그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본 양키들이 낄낄 웃어댔다.
료타는 조용히 피해 가려고 했지만, 양키들은 재미가 들린 것인지 따라붙어서 끈질기게 경로를 가로막았다. 결국 료타도 화가 났다. 그가 양키 한 명의 어깨를 거칠게 밀치면서 계단을 내려가자 녀석들은 꽥꽥 소리를 지르며 “가만두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 다음부터 한동안 료타를 두고 질 나쁜 별명을 지어서 부르거나, 그가 지나갈 때마다 침을 뱉으며 짜증나게 만들었다.
이렇다 할 반응이 돌아오지 않자 양키들은 열이 뻗쳤는지 방학이 시작되기 전에 강수를 두었다. 굽실거리며 선배 하나에게 이 일을 고자질하고는, “적절한 선에서 손을 좀 봐 달라”고 한 것이다. 이 일을 꿈에도 모르고 학교 뒤편에 있는 쓰레기장에 나갔다가 그만 봉변을 당했다. 양키들이 불러온 선배는 료타보다 한참은 컸는데, 아마 못해도 180센티는 돼 보였고 벌써부터 어깨도 떡 벌어져서 굉장한 위압감을 주었다. 짐승처럼 손가락에 굵은 털이 나 있었고, 화가 난 목소리로 료타를 위협하면서 물었다.
“네가 미야기 료타냐.”
“그런데요.”
겁에 질려서 도리어 딱딱한 목소리로 료타가 대답했다.
“내가 왜 찾아온 건지 알 거다.”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고 있자 선배가 눈을 부릅떴다.
“아니, 그러면 안 되지. 잘못을 했으면 사과를 해야 할 거 아냐?”
그런 다음 선배는, 털이 부숭부숭한 손으로 료타를 들어 올려 땅바닥에 매쳤다. 흙먼지와 함께 나뒹구는 료타를 잡아챈 다음 멱살을 잡아 올리고 이리저리 흔들자 몸이 종이처럼 힘없이 흔들거렸다. 넥카라가 위로 심하게 쏠리면서 숨이 턱하고 막혔다. 그 순간 왜인지 두려움보다는 분노가 앞섰던 것이 떠오른다. 목구멍에서부터 날카로운 무언가가 올라오는 느낌이 엄습하더니, 머리가 차갑게 식으며 사시나무처럼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겁에 질려서가 아니라 단지 주체할 수 없는 분노 때문에, 눈앞의 상대에 대한 깊은 혐오감과 증오 때문에 떨려오는 것이었다. 그때였다. 마치 그 분노에 전이된 것처럼 선배의 손이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는 료타를 놓아주고 주춤주춤 물러났다. 료타는 켁켁 기침하며 고개를 들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선배가 허공을 향해 손을 허우적거리고 그 거대한 몸을 비틀며 발버둥 치고 있었다. 그의 넥카라가 위로 바짝 올라갔고 두 발은 허공에 살짝 들려 있었다.
선배의 두 눈은 핏발이 서려 있었고 입은 크게 벌어져 있었다. 그는 공포에 질린 표정이었다. 창백한 얼굴로 허공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무언가 말하려 애쓰고 있었는데, 얼마 안 가 숨이 막히는 듯 목을 그러쥐었다. 료타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깨달았다. 처음에는 놀라움이 스쳤는데, 반갑기도 했고 살짝 즐겁기도 했던 것 같다. 미소를 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너털웃음소리를 내기는 했을 것이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선배가 컥컥거리며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는데, 그 모습이 더 이상 우스꽝스러워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어느새 눈앞의 광경은 장난의 수위를 한참 넘은 상황이 되어갔다. 선배의 얼굴이 점점 보라색으로 물들고 눈알이 바깥으로 거의 튀어나올 듯했다. 료타의 반가움은 돌연 공포로 변했다. 바닥에서부터 퉁겨지듯 일어나 허공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그만해!” 하지만 아무것도 멈추지 않았다. “됐으니까 이만하고 멈춰!” 컥컥 소리를 내던 선배가 눈을 까뒤집었다. “그만하라니까!” 겁에 질린 채로 료타가 벌컥 화를 냈다. “이럴 거면 차라리 꺼져버려!” 그 순간 그것이 선배를 벽에 집어 던졌다. 풍선이 터지는 듯한 뻥 소리와 함께 솜 빠진 인형처럼 선배의 몸이 바닥으로 스르르 미끄러졌다. 선배가 끅끅대는 소리가 공터를 가득 울렸고, 료타는 숨을 헐떡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새는 그곳을 떠난 지 오래였다.
안나가 외출한 날이었고, 엄마도 집에 없었다. 노을이 지고 있었고, 바깥에선 코트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어렴풋하게 들려왔다. 현관에 들어왔을 때는 손이 벌벌 떨리고 있었다. 아까의 광경으로부터 받은 충격이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료타는 숙제를 하기 위해 책상에 앉았다가 결국 몇 분 안 가 다시 일어났다. 부엌으로 가서 지난 저녁에 먹다 남은 낫또를 전자레인지에 데우고, 엄마가 덮어두었던 프라이팬 뚜껑을 걷고 아침에 구워둔 생선 한 토막을 꺼내 졸인 무와 함께 먹으려고 했다. 저녁을 먹은 다음 기운을 차리고, 해야 할 일과를 해치울 생각이었다.
방문은 닫혀 있었다. 커튼을 치지 않아 창이 활짝 열려 있었고, 아직 방은 밝았다. 료타는 자리에서 일어나다 말고 동작을 멈추었다. 장지문 너머에 새가 서 있었다. 그의 실루엣이 보였다. 창밖에서 아이들이 꺄악 소리를 지르며 술래잡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사이 새는 조금 자라있었다. 료타보다 한 뼘 정도 더 컸고, 살짝 후리후리해진 것도 같았다. 무엇보다 더는 일렁일렁하거나 노이즈가 낀 텔레비전처럼 치직대지 않았다. 그의 존재는 무척이나 안정돼 있었고, 어느 때보다도 분명하고 또렷해 보였다. 장지문 너머에 서있는 실루엣만으로도 그러한 변화가 뚜렷이 느껴졌다.
료타는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느꼈다. 두려웠고, 끔찍했지만, 한편으로 자신이 키워낸 무언가의 과정을 중간 점검하는 기분이 들었던 것도 같다. 료타는 새가 자신을 적대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오늘 일처럼, 불현듯 공격성을 드러내게 될지, 그러다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또다시 료타를 밀치거나 겁을 주려고 할지가 궁금했다. 새를 앞으로도 줄곧 두려워해야만 하는지 그는 혼란스러웠다.
“너 뭐야?” 료타가 물었다.
“누구 편이야?”
“…….”
“다시 사람들 그렇게 괴롭힐 거야?” 어느새 그는 소리치고 있었다.
“나 괴롭히고 쫓아다닐 거냐고!”
새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천천히, 서두르지 않고 두 팔을 어깨높이만큼 들어 올렸다. 침묵 속의 연극과도 같은 순간이었다. 새가 팔을 교차해 작은 엑스자를 만들었을 때, 료타는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았다. 느릿느릿한 속도로 새는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양 손바닥을 있는 힘껏 펼쳤다. 그러고는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여전한 신중함으로 두 손을 포개어 매를 만들었다. 나풀나풀 흔들면서 허공으로 매를 날리고 또 날리다가, 그것으로 족하다는 듯, 팔을 내리고는 조용히 그곳을 떠났다.
어느 날 밤의 일이었다. 료타의 생일날이었다. 그들 가족에게 있어 그의 생일이란 한 자리가 비어있는 4인용 식탁에 둘러앉아 죽은 형과 료타의 이름이 나란히 적힌 초콜릿을 올라간 케이크를 잘라 먹는 날을 뜻했다. 료타는 자신의 생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생일만 되면 침울해지는 집의 분위기를 견디기가 어려웠다.
잠자리에 들기 전, 잠깐이지만 료타는 어머니에게 새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그는 주변에 기댈 사람이 많지 않았다. 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 이야기를 진지하게 대해줄 사람도 거의 없었다. 그는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다. 자신보다 나이가 많고, 자신을 이해하고, 가까이 있어 줄 누군가를 그 순간 간절히 원했다. 하지만 료타는 이내 자신의 충동을 거두어들였다. 새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소타의 이야기부터 꺼내야 했다. 그 이야기를 빠뜨릴 수는 없었다. 그의 어머니는 버티지 못할 것이었다.
바로 그날에 벌어진 일이었다. 료타는 잠들었었는데, 어느 순간 방이 너무 추워서 깨고 말았다. 깨자마자 알았다. 새가 근처를 맴돌고 있으리란 것을. 최근까지 기척이 거의 희미했기 때문에 그토록 가깝게 다가온 건 정말 오랜만의 일이었다. 고작해야 장지문 너머에 서 있거나, 아니면 좁은 복도를 오락가락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새는 방 안에 들어와 있었다.
그런 적은 처음이었다. 처음에 료타는 잠이 덜 깨서 눈이 침침한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새가 너무 가까이에 얼굴을 붙이고 있어서, 그 반투명한 몸을 통해 보고 있던 까닭에 주변이 평소보다 어둡게 보이던 것이었다. 그것은 료타의 머리맡에 서서 무릎을 구부린 자세로 잠든 그의 얼굴을 고요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료타가 질겁해 일어나려던 순간이었다. 휙 하고 연약한 바람 소리가 귓가를 스치더니, 하복부에 강한 압력이 느껴졌다. 소름 끼치도록 차가운 손길이 료타의 옆구리와 겨드랑이 사이를 더듬는 것이 느껴졌다. 어마어마한 냉기가 엄습했다. 입을 벌렸지만 비명은 나오지 않았다. 새는 료타를 짓누른 채 대자로 팔다리를 벌리고 있었다. 압력의 면적이 넓어지면서 차차 무게가 실렸다. 어마어마하게 무거웠고, 무서웠고, 무엇보다 추웠다. 입김이 피어오르고 온몸이 달달 떨렸다. 마침내 료타가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경기를 일으키듯 발버둥 치면서 살려달라고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다가 까무룩 기절했다.
방학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왔을 때 양키들은 더는 적의를 드러내지 않았다. 한동안 료타가 귀신을 부린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얼마 안 가 수그러들었다. 료타가 크게 대응하지 않았고 아이들 역시 예전만큼 그와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료타는 중학교 1학년 말 농구부에 입부한 이래로 체육관에 붙박여 살았다. 곤경에 빠졌을 때 그가 몸을 의탁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그로부터 약 일 년쯤 뒤에, 고교에 올라가기 직전 학교에서 벌어진 일들을 되짚어보는 과정에서 야스다는 이 사건을 두고 “정말 별일이 다 있었다”고 했다.
중학 생활 내내 료타는 새를 다루기 위해 애를 먹었다. 새의 돌발행동 때문에 소동이 벌어지면 가슴이 철렁했고 심장이 서늘해지는 것 같았다. 몇 년 동안 야스다나 다른 아이들이 미처 알아내지 못한 기묘한 일들이 교내와 교외에서 번갈아 벌어졌다. 새는 난폭해지려고 들면 얼마든지 난폭해졌다. 양키 선배를 목 졸라 죽이려 들었던 것처럼, 새에게는 료타가 헤아리기 어려운 폭력성이 감추어져 있었다. 새는, 적어도 그것이 원한다면 언제가 되었든 사람을 해칠 준비가 되어있는 것 같았다.
새는 료타를 해치려 들기도 했다. 처음 만났을 적에 그를 밀쳐 넘어뜨린 일은 시작에 불과했다. 새는 료타를 겁주거나, 손끝이나 팔 따위를 만져서 도망치게 만들거나, 공포감을 조성하며 곁을 맴도는 일을 즐기는 것 같았다. 생일 밤에 벌어진 일도 비슷했다. 아마 새는 구체적인 소통이 가능한 정도의 지능을 갖춘 존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료타의 말이나 감정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료타가 강하게 겁을 먹거나 분노할 때, 그러한 감정으로 새가 사라지기를 간절히 바랄 때마다 존재의 위기감을 느끼고 그를 공격하게 되는 것 같았다.
중요한 건 료타가 그것을 관찰하고 통제하기 위해 중학 생활 내내 애써왔다는 것이다. 새가 폭력적으로 굴거나 자신과 접촉하려 드는 이유를 알아내기 위하여 료타는 오래 골몰했다. 그러는 동안 새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얌전해졌다. 때마침 지역대회가 시작되었다. 타 학교와 몇 번의 경합을 마치고 돌아왔을 즈음, 습관처럼 새를 찾았지만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한참 나중에 체육관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공터에서 덩그러니 앉아 있는 새를 찾았다. 새는 폐타이어를 쌓아둔 탑 위에 앉아 노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새는 다시 지지직거리고 있었다. 료타는 깨달았다. 돌보지 않은 한 차차 다시 투명해지는 것이다. 그런데도 왜일까. 그게 영영 사라질 거라는 기대가 들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삶이라는 건 원래 이런 것을 데리고 사는 일인지 모른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으로 했던 것 같다. 사라졌다가 불현듯 모습을 드러내고, 기억 속에서 멀어질수록 흐릿해지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잊을 수는 없기에 결국 다시 나타나고야 마는 무언가를 데리고 사는 일이다. 어쩌면 남들도 비슷한 것을 데리고 사는지 모른다. 아무리 몸을 바쁘게 움직이고 아무리 빠르게 달려보아도, 자신의 삶을 충실히 이행해 보려고 해도, 언젠가는 견딜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온다는 것을 료타는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영원히 이것과 함께 살겠구나. 료타는 직감했다. 새와 영원히 살아가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겠구나. 누구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 자꾸만 늘어나는구나. 그런 삶을 살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 다음에는 새를 방치해두는 법을 터득해 가기 시작했다. 그것의 존재를 항시 느끼고 있더라도 반쯤은 무시한 채 생활할 수 있는 무심함을 몸에 익히게 되었고, 나중에는 잊어버린 듯 굴면서 일상을 보내다가, 가끔은 정말로 잊어버릴 수도 있게 되었다. 생각이 많아지고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나 분노가 몰려올 때면 어쩔 수 없이 새가 떠올랐다. 그러면 밖으로 나가서 달렸고, 어느 순간에는 그것이 습관이 되었다.
미츠이가 새를 불러왔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던 것도 같다. 때때로 미츠이가 무엇을 하는지가 궁금했다. 어느 순간에는 소타보다도 그의 생각을 더 자주 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자각한 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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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성수기의 물떼새장은 인터하이 때와는 다른 운치가 있었다. 인터하이 때는 여관을 드나드는 다른 손님들과 마주치지 않도록 커튼을 친 채 생활해야 했지만, 늦가을에는 정원 쪽으로 통하는 문을 눈치 보지 않고 열어둘 수 있었고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운데 가까운 야산에서 밤새가 우는 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할 수도 있었다.
가을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아직 풀벌레가 드문드문 울고 있었다. 늘 그렇듯 사쿠라기가 소란을 떨다가 한 소리를 들었고, 큰 무대에 나가본 경험이 없는 후배 녀석들은 평소보다 밥을 적게 먹은 채 어영부영 주변을 산책하다 돌아왔다. 안자이 감독은 아이들을 일찍 해산시키고 방으로 돌려보냈다. 긴장감으로 점점 팽팽해지고 있는 분위기를, 지나친 비장함이 만들어내기 시작한 아이들의 두려움을 그가 느끼지 못할 리가 없었다. “내일을 위해 모두 일찍 주무시길 바랍니다.” 그 말에 동의했지만, 료타는 일찍 잠들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주장이 되고 처음 나가는 전국대회였고, 그는 어느 때보다 중압감을 느끼고 있었다. 아직 새가 곁에 왔다고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밤에는 분명 근처를 서성거리기 시작할 테였고 결국 료타를 한 번은 깨우고 말 것이었다.
눈을 떴을 때는 한밤중이었다. 몇 시인지 알 수 없었지만 곁에 누운 녀석들은 모두 잠이 들어 있었다. 료타는 습관처럼 닫힌 문 쪽을 확인했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어렴풋한 냉기가 느껴지고 있었으므로 료타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원으로 나와 산책을 하는 동안 새를 만나게 된다면 무슨 말을 할지 고민했다. 료타는 아마 정중하게 부탁할 것이다. “이만 돌아가 주세요.” 어쩌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중요한 시합이 있습니다.” 새가 들어줄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두려움을 떨쳐내고 다시 잠에 들려고 노력할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차가운 바람이 발목을 스치고 지나갔고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흔들렸다. 료타는 멈추어 섰다. 정원 쪽으로 통하는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그 앞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미츠이는 유카타 차림이었다. 헐거운 소매에 팔을 집어넣은 채 느슨하게 팔짱을 낀 자세로 문간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인기척을 느끼고는 고개를 들었다. “너였냐.” 시시한 것을 보았다는 듯 툴툴거리다 이내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왜, 긴장돼서 잠이 안 와?” 료타가 울컥해서 대꾸했다. “그런 거 아니에요.”
갑자기 미츠이가 괘씸하게 느껴졌다. 이런 감정이 부당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미츠이는 저녁 내내 긴장으로 뻣뻣하게 굳은 팀 분위기를 풀기 위해 일부러 사쿠라기와 우스꽝스러운 역할을 자처했다. 사쿠라기와 그의 차이점이 있다면, 사쿠라기는 명백히 그런 선의를 가지고 그러한 행동을 한다는 것이고, 미츠이는 그저 하던 대로 행동한 것뿐이라는 것이겠지만. 미츠이가 이런 사람인 줄 처음에는 전혀 몰랐다. 료타는 그가 얼빠지고 제멋대로인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중학교 시절에 만난 미츠이와 지금 눈앞의 미츠이는 다른 존재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 다시 만났을 때 그를 한눈에 알아본 자신이 이상할 정도였다.
이런 사람에게서 형을 떠올리고, 그 바람에 오키나와에 남아있던 새를 불러오고 말았다니. 료타는 복도 쪽 장지문을 멍하니 응시했다. 새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을 본 듯했다.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앉아.” 미츠이가 옆자리를 두드렸다. 대답 없이 서 있자 미츠이가 다시 불렀다. “어이, 미야기.” 료타는 그와 슬쩍 거리를 두고 대청에 앉았다. 미츠이는 흘끔거리기만 할 뿐 무어라 따로 말 붙이지는 않았다.
등 뒤에서 냉기가 어른어른 느껴졌다. ‘방 밖에 서 있구나.’ 료타는 뒤를 흘끔거렸다. ‘다가오는 걸까, 멈추어 선걸까….’ 온 신경이 복도 쪽 문에 쏠려있을 무렵, 미츠이가 실없는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인터하이 때, 아직 농구부에 남아있던 3학년들끼리 있었던 일화에 대한 것이었다. 아카기 이야기를 하면서 미츠이는 유독 즐거워 보였다. 그 우직했던 아카기가 실은 이곳에 앉아 얼마나 긴장하고 겁을 먹었었는지, 왜 미츠이 넌 떨지 않느냐고 물어보고는 얼마나 짜증스러운 듯 자신을 흘겨보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대화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료타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고 어느새 미츠이는 그때의 일과 지금을 비교하고 있었다.
“너, 그때 아카기랑 똑같은 표정이야.”
미츠이의 이야기는 료타를 짜증스럽게 만들었다. 헛소리를 들은 얼굴로 흘겨보았다.
“긴장돼서가 아니라 미츠이상이 쓸데없는 말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 거예요.”
“이 자식이.”
료타는 툴툴거렸다. “조금은 선배답게 굴어달라고요.”
말문이 막혔는지 미츠이는 끙 소리를 냈다. 료타는 냉기가 가까워진 것을 느꼈다. 새가 장지문 너머에 일렁일렁하고 있었다. 오늘 제대로 잠을 잘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을 때였다. 미츠이가 입을 열었다.
“네가 말을 안 하니까 그렇지.” 턱을 긁으면서 떨떠름해 했다.
“넌 이런 얘기 잘 안 하는 녀석이잖아.”
“…….”
미츠이는 신경 쓰이는 게 있냐면서 료타를 따라 뒤를 한 번 돌아보고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들어줄게.”
료타는 곧바로 알아듣지는 못했다.
“예?”
“그러니까, 들어준다고.”
“뭐, 뭘요?”
그러자 미츠이는 뭐 이런 바보가 다 있냐는 표정으로 료타를 바라보았다.
“뭐가 걱정돼서 잠을 설치는 거냐고 물어보는 거잖아.”
평소 같았으면 자리를 뜨거나, 무슨 소리냐고 얼버무리면서 대화 주제를 돌렸을 것이다. 여태껏 료타는 자신의 문제를 남들에게 제대로 털어놓은 적이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새에 대한 이야기를 누구에게 털어놓을 수 있단 말인가. 서로가 애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