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노가타리 2»
시마이부 오컬트 AU «신리神籬 어지럽히기»
3
이부키는 긴장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어깨에 힘을 주고 허리를 펼쳤다. 몸집을 한껏 부풀려 상대를 위협하는 건 동물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그러나 이부키가 서있는 곳은 사바나가 아니라 교무실이었기 때문에 그의 야생적인 노력은 전혀 먹히지 않았다.
이부키의 담임이 될 1학년 B반의 야마구치 선생은 서류를 뒤적이느라 엄청난 시간을 할애했다. 이 선생은 올해로 서른여덟 살이 된 비교적 젊은 교사였지만 타고난 행동거지가 느긋하고 게을러서 굉장히 무성의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이부키는 좀이 쑤시는 것처럼 안절부절못하며 야마구치가 뒤적이는 서류를 내려다보다가 교무실 출입문 쪽을 두리번거리다가 했다. 지나가던 학생들이 잠깐씩 멈추어 서서 가쿠란 차림의 이부키를 구경하듯 살펴보다 가고 있었다. 개중 하나와 눈이 마주쳤다. 여학생이었다. 이부키는 순간 당황했다가 씨익 웃어주었는데, 화들짝 놀란 여학생은 고개를 홱 돌리더니 황급히 사라져버렸다.
“아, 여기 있네.”
야마구치가 파일철 틈에서 서류 한 장을 꺼냈다.
서류를 받아든 이부키는 한 번 슥 훑어보곤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씩씩하게 말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부키 아이입니다.”
“가방을 안 들고 온 거냐?”
“아, 여기 지정가방제인 줄 알았는데요.”
이부키가 쑥스럽게 뒷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오늘 그거 받으려고 온 건데….”
“아냐, 아냐. 그건 5년 전에 폐지됐어. 요즘은 다들 백팩이지.”
“에에, 진짜요?!”
이부키는 하늘이 무너진 표정으로 야마구치를 쳐다봤다.
“스쿨백 로망이었는데….”
야마구치가 파일철을 도로 꽂아두면서 말했다.
“뭐, 뒤쪽 비품창고에 굴러다니는 스쿨백 재고가 있긴 할 거다. 열쇠 줄 테니까 가서 찾아보고 있으면 하나 가져가라.”
이부키의 입 꼬리가 활짝 올라갔다.
“참, 너 재적증명서 안 냈더라.”
이부키의 입 꼬리가 내려갔다.
“이번 주 내로 제출하고 교복도 새로 맞춰 입고.”
땅바닥을 보면서 허공으로 시선을 흘기던 이부키가 마지못해 대답했다.
“네에.”
복도로 나오자 모든 시선이 한순간 이부키에게 집중됐다. 블레이저 와이셔츠 차림의 학생들 틈에서 시꺼먼 가쿠란은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다리가 길고 호리호리한 체형 때문에 서있기만 해도 남다른 느낌이었다. 이부키는 또래들보다 키가 큰 축에 속했다.
이부키는 눈을 굴렸다. 태연한 표정으로 호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고 있지만 사실은 쏟아지는 시선을 신경 쓰느라 바짝 곤두서있었기 때문이다. 괜히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그는 “비품창고, 비품창고…”하고 혼잣말을 하며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우와~ 등이 따갑구만.’
도쿄에서도 이부키는 눈에 띄는 학생이었다. 복도를 걷고 있으면 시선이 쏠리고 등 뒤에서 여러 소문들이 쏟아졌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부키를 두려워했고, 그렇기 때문에 지극히 무관심하게 대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기억하기로 이부키 본인은 그렇게까지 큰 말썽을 부리거나 사고를 친 적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언제나 큰 소란을 일으킨 장본인 취급을 받고 있었다. 아무래도 키가 커서 그런가? 크면 위협적으로 보이니까?
아무튼지 간에 이부키는 이번 학교에서 새롭게 잘 해볼 생각이었다.
‘좋은 인상, 좋은 인상.’
불행히도 이부키는 벌써부터 주목을 받고 있었다. 복도를 헤매던 그가 1학년 복도에 들어서자마자 아이들 사이에서 빠른 속도로 소문이 퍼져나갔던 것이다. 졸업할 때까지 학급 수에 큰 변화가 없는 구석진 지방 공립학교의 특성상 그것은 필연적인 일일 수밖에 없긴 했다. 다만 이부키 자신이 염려한 대로 가쿠란은 첫날부터 굉장히 튀는 옷이 되어버린 데다가 1학년 복도에 들어설 즈음엔 긴장을 감추지 못하고 옛날처럼 어슬렁거리는 발걸음이 튀어나온 탓에 몇몇 아이들은 벌써부터 그가 양아치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전학생?”
“우왁, 커!”
“뭔가 험상궂은 느낌…”
“그래도 좀 멋있지 않아?”
이부키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긴장해서 그런 건지 들떠서 그런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도망치듯 점점 더 빨리 걷다가 머릿속으로 누군가의 격언을 떠올리곤 발걸음을 늦췄다. ‘이부키, 사람들은 네가 대하는 대로 너를 대한다. 그 사실을 기억하렴.’
자리에 멈추어 선 이부키가 고개를 홱 돌리고 우렁차게 인사를 건네려던 순간이었다. 5교시를 알리는 종이 치며 일순 모두의 관심사가 뒤바뀌었다. 우르르 교실로 돌아가는 학생들을 어리둥절하게 바라보던 이부키는 뒤늦게 상황을 이해하고 머쓱하게 뒤통수를 긁었다.
수업이 시작되자 학교 분위기는 금세 가라앉았다. 운동장에서 출석을 부르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이부키는 후문 쪽으로 빠져나왔다가 근처를 서성거리며 자연스럽게 학교 구조를 익혔다. 비품창고는 체육관 뒤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부키가 문을 열려고 주머니를 뒤적이고 있을 때, 수풀 너머에서 이야기소리가 들려왔다.
“최악이잖아, 이 자식.”
“너 이거 어떻게 책임질 셈이야?”
“나는 그저… 나는 그냥….”
“뭐라는 거야, 똑바로 말해.”
정신을 차렸을 땐 고개가 수풀 쪽으로 완전히 돌아간 것도 모자라 몸이 그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안쪽으로 들어가자 키 큰 남학생 셋이 한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실랑이를 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벽에 몰린 남학생은 거의 울 것 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곧이어 분을 이기지 못한 무리 중 하나가 그를 거칠게 벽으로 밀친 순간, 이부키의 눈에서 불꽃이 튀어 올랐다.
“어이! 어이, 어이, 어이!”
갑작스러운 등장에 무리는 물론이고 벽에 몰린 남학생마저 당황한 표정이었다.
“뭐야, 이 녀석은?”
“너희들! 걔한테서 떨어져.”
이부키가 성큼성큼 다가가며 위협적으로 으르렁거렸다.
무리 중 가장 키 큰 녀석이 이부키를 훑어보며 말했다.
“넌 뭐야? 알지도 못하면서 끼어들지 마.”
“친구를 이지메하면 안 되지.”
가까이 다가선 이부키는 멀리서 볼 때보다 훨씬 키가 커보였다. 무리 중 가장 키 작은 녀석이 나머지 두 사람의 눈치를 보았다.
“렌지. 타이세이. 얘 알아?”
“알겠냐?”
두 번째로 키 큰 녀석이 툴툴거리며 이부키를 향해 고개를 치켜들었다.
“너, 이 학교 학생도 아닌 것 같은데 남의 학교 일에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빠져. 이쪽은 이쪽의 사정이 있는 거거든?”
“네에~ 오늘부터 이 학교 학생입니다.”
이부키가 빈정거리며 세 사람을 밀쳤다.
“전학생이거든요, 끼어들 수 있게 돼서 유감이네요.”
그런 뒤 벽에 몰려있는 학생에게 고개 숙이며 물었다.
“어이, 괜찮냐?”
퍽, 거칠게 떠미는 손길에 몸이 휘청거렸다. 고개를 홱 돌리자 싸울 기세로 주먹을 쥔 두 번째 녀석이 눈에 들어왔다.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나머지들은 뒤로 빠져있었으나 삐딱하게 선 폼이 예사롭지 않았다. 이부키는 저 눈빛들을 알고 있었다. 스위치가 올라가는 게 느껴졌다. 순간 이부키는 눈앞의 세 사람이 아까 택시 안에서 본 그 녀석들이라는 걸 떠올려 냈다.
“어이, 너네 아까의 쓰레기들이네.”
이부키가 천천히 주먹을 쥐면서 웃었다.
“지금 밀었지?”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웃음은 금방 사라졌다.
“밀었잖아.”
‘좋은 인상, 좋은 인상.’
딸깍, 하는 것처럼 순식간에 피가 끓어오르더니 생각 이전에 주먹이 먼저 나가있었다. 우측으로 들어오는 주먹을 본능적으로 피하면서 몸을 숙이자 귓가로 매서운 바람이 스쳤다. 그는 곧바로 명치 부근에 주먹을 꽂아넣었다.
이부키는 타고난 싸움꾼이었다.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싸울 때면 감각이 달랐고 눈앞이 새하얘지면서 머리끝까지 열이 솟구쳐 바글바글 끓었다. 그때쯤엔 모든 게 본능의 영역에 들어섰다. 사람의 말로 가르칠 수 없는 것이 그의 안에 똬리를 틀고 있었다. 이부키는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결국 자기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고 말았다면 필사의 힘으로 휘두르고 싶었다. 그는 얕보여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머리 위에서 묵직하게 컥, 하고 헐떡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서서히 정신이 돌아오면서 맞은 부위가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이부키는 정신을 차렸다. 누군가 그의 어깨를 붙잡고 있었다. 이부키는 잠깐 멍한 상태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상황이 순서 없이 뒤죽박죽 흘러들어왔다. 어깨를 붙잡은 손. 그 손의 주인이 굉장히 화난 얼굴로 무언가를 소리치고 있고, 아까까지 주먹을 휘두르던 두 사람이 배를 움켜쥔 채 널브러져 있다. 나머지 한 명은 허리를 숙이고 코를 움켜쥐고 있었다. 곧이어 체육복 차림의 누군가가 달려와서 그를 부축했다.
이부키는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돌렸다. 벽이 텅 비어있었다. 어, 구해주려던 녀석은 어디에… 그 순간 귀가 뚫리면서 소리가 들렸다.
“어이, 대답 안 해? 너 누구야. 어디서 온 녀석이야!”
이부키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체육복 차림인데 학생이라기엔 너무 늙은 얼굴. 누구냐니. 전학생이라니까? 이부키 아이입니다, 잘 부탁해요. 이부키는 눈을 깜빡이며 깨달았다. 아, 교사구나.
그러자 시야가 트였다. 이부키는 뒤쪽으로 우르르 몰려있는 인영들을 보았다. 체육복 차림으로 두 손을 들어 입을 막거나 경악스러운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 운동장에서 출석을 부르던 반 아이들이 떼로 몰려온 것이다. 체육교사가 격양된 목소리로 이부키를 거칠게 흔들었다.
“너, 교무실로 따라와. 어디 학교인지 똑바로 말하는 게 좋을 거야.”
멍한 상태로 질질 끌려가던 이부키는 아까 그 학생이 어디로 간 게 아니라 벽에 기댄 채 주저앉아있을 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는 눈물 젖은 눈으로 이부키를 올려다보며 공포에 질려 있었다. 내내 저랬을까? 그 순간 떠밀려 났던 모든 감각이 일순 벼락처럼 내리꽂히며 현실감각이 돌아왔다.
쿵쾅거리던 심장이 차갑게 내려앉으면서 웅성거리는 소음, 깔보는 시선, 두려움으로 속삭이는 소리 따위가 하나의 정보 값으로 재조립되었다. 다음 순간 엄청난 속도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하나의 퍼즐로 맞춰졌다. 이부키는 혼자서 자전거를 끌고 집으로 돌아가던 지난 날과 앞으로 그렇게 될 날들을 떠올렸다. 손바닥 안에 묵직하게 감기는 감각이 있었다. 그걸 뭐라 부르지. 불러줘야 하나?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무서워.’
또 망친 것 같았다.
4
“시마, 들었어? 전학생이 네 친구들 두들겨 팼대.”
“하?”
“그냥 팬 것도 아니고 엄청나게 팼다나 봐. 타이세이는 코피 때문에 부축받으면서 양호실 갔다가 아까 조퇴했대.”
종례가 막 끝난 참이라 교실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아이들은 웬일로 곧장 집에 가지 않고 삼삼오오 모여서 떠들고 있었다. 시마는 반 아이들이 저마다 비슷한 주제에 대해 얘기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어쩌다가?”
“나야 모르지. 듣기로는 카스가랑 관련 있다던데.”
반 친구가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카스가가 고용한 양키라는 말이 있어.”
시마가 책상을 정리하며 물었다.
“카스가는?”
“응?”
“무사해?”
“아아, 안 다쳤어, 안 다쳤어. 싸움 난 건 타이세이 쪽.”
“아깐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은 것처럼 말하더니, 역시 싸움인가.”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은 거나 다름없어서 그랬지. 시비도 그쪽에서 먼저 걸었대.”
“헤에.”
“그 전학생, 완전 머리가 이거라니까.”
반 친구가 손가락으로 머리 주변을 뱅뱅 돌렸다.
“눈이 맛탱이 가서 장난 아니었대. 고다가 안 말렸으면 진짜 죽였을지도 몰라. 고다, 그 녀석 때문에 엄청 야마 돈 거 알아? 말렸는데 들은 채도 안 하고 계속 주먹질을 해서 허리 붙잡고 어깨에 매달리고 완전 본새 빠지는 모양새로 겨우 말렸다잖아. C반 애들이 직접 봤대. 완전 무서웠대.”
“카스가도 조퇴냐?”
“아마 아직 교무실에 있을 걸?”
교무실 앞은 바글바글했다. 시마는 아이들을 헤치고 나아가다가 교무실 안에서 소문의 전학생을 보았다. 인파 틈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지만 새카만 가쿠란 때문에 금방 눈에 띄었다. 멀리서 봐도 그는 외지인이라는 분위기를 팍팍 풍겨댔고, 서있는 폼에서부터 불량아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등을 굽힌 채 뒷짐을 지고 교사 앞에 서있었는데, 연신 고개를 쳐들고 무언가 항의하려고 했다. 음, 대강 어떤 놈인지 알겠군. 시마는 금세 흥미를 잃었다.
얼마 뒤 카스가가 교무실 뒷문으로 조용히 빠져나왔다. 그를 놓치지 않고 다가간 시마가 어깨를 붙잡았다. 상대를 확인한 카스가는 대놓고 불편한 티를 냈다.
“왜?”
“너 오늘 본전에 들어갔다며?”
“그래서?”
“액막이 받고 가.”
카스가의 시선이 절로 아래쪽으로 향했다. 시마는 오른손에 야쿠오도시를 쥐고 있었다.
카스가가 빈정거렸다.
“그거 효과 없다며?”
시마는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였고, 그 행동이 어떤 면에서 카스가의 심기를 건드린 것 같았다.
“시마, 너 작작 좀 해. 적당히 하고 컨셉 통일부터 하라고. 보이는 쪽인지 안 보이는 쪽인지 확실히 해. 어차피 넌 어느 쪽이든 주목받으니까 상관없잖아.”
“주목받고 싶었던 거냐?”
어느새 시마는 카스가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 주목받고 싶어서 그런 짓을 저지른 거야?”
카스가는 입을 다물었다. 한참 바닥을 쏘아보면서 말을 고르는 눈치였다. 그가 고개를 홱 들었을 때 시마는 내심 놀랐다. 카스가가 울 줄은 몰랐던 것이다.
눈물을 참는 얼굴로 카스가가 말했다. 목소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건 네 얘기 아냐? 또 잘난 듯이 나서서 쑤시고 싶나 봐. 너 같은 게 뭘 안다고. 시마, 네가 보기엔 내가 장난하는 것 같아? 난 말이야, 타이세이 녀석들이 진짜 싫어. 그런데 엄청나게 좋거든.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네 머리로 이해가 되긴 하냐?”
카스가가 비난했다.
“모르겠지?”
무언가 대꾸하려던 시마는 이어지는 말에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넌 그딴 건 전혀 신경 안 쓰니까.”
카스가가 시마의 어깨를 치고 지나갔다.
반 박자 늦게 입을 뻥긋거리던 시마는 카스가를 불러 세우려다가 마음을 바꾸었다. 카스가는 이미 인파를 뚫고 복도 끝으로 향하고 있었다. 멀어져 가는 어깨 위에 희끄무레한 형상이 붙어 흔들리고 있었다.
괜찮겠지. 위험하진 않을 것 같다. 시마는 고민하다가 결론을 내렸다. 저 정도는 귀신 이야기를 했을 때 달라붙는 정도의 것이니까.
만약 위험했다면 시마 자신이 가장 먼저 알아차렸을 것이다. 업이 쌓이고 액이 달라붙은 인간은 가까이 있을 때 도무지 모를 수가 없다. 주변을 쉽게 지치게 하고 나쁜 일들을 불러 모으기 때문이다. 당장 카스가가 아주 깨끗한 기운을 갖고 있는 게 아니긴 했지만, 그건 본전을 들락거렸으니 한동안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 부분은 방과 후에 신사에 들러 조치를 취하면 될 일이라고 시마는 생각했다.
‘본전 물건에 손을 댄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복도 끝에 도착한 카스가가 코너를 돌아 자취를 감췄다.
5
이부키는 카스가가 풀려나고 나서 몇 분 뒤에 풀려났다. 야마구치 선생은 훈계조차 귀찮아하는 눈치였다. 그는 얼른 퇴근해서 남은 금요일 저녁을 만끽하고 싶어했다. 어차피 맞은 녀석들도 크게 다치지 않았고, 카스가의 말을 들어보니 이유 없는 시비도 아니었다. 전학 온 지 하루도 채 되지 않아 소란을 일으킨 이부키가 다소 충동적이고 경솔한 학생이란 생각만큼은 톡톡히 박혀버렸지만.
야마구치는 주변 시선을 신경 써서 억지로 다그치는 것처럼 이부키에게 성의 없이 몇 가지 사안을 묻고 의무적인 훈계를 한 뒤에 그를 놓아주었다.
교무실을 나서는 동안 대부분의 교사들은 벌써부터 이부키를 향한 적대적인 감정을 감추려고 들지 않았다. 야마구치 선생님, 저렇게 놔줘도 되는 거예요? 누군가 작게 볼멘소리를 했다. 이부키는 쾅 소리 나게 문을 닫았다.
모여 있던 아이들이 황급히 흩어지면서 급작스럽게 딴청을 부렸다. 이부키는 이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는 화가 머리끝까지 난 사람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무척 절망한 상태였다. 도망치듯 학교를 벗어난 이부키는 교문을 넘는 도중 아까 구해주려고 했던 학생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나무에 기대어 있는 것을 보았다.
이부키가 다가가자 학생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부키가 냅다 물었다.
“너 괜찮은 거야?”
“뭐가?”
이부키가 멀뚱멀뚱 학생을 바라보았다.
“그야 아까 그 녀석들 나 때문에 엄청 약 올랐으니까…? 이런 데 서 있으면 너 또 시비 걸리는 거 아니냐구?”
“아…. 괜찮아. 걔네 아까 조퇴했거든.”
“그럼 다행인데 말이지.”
두 사람은 걷기 시작했다.
“너 이름이 뭐야? 난 이부키 아이.”
“…카스가 호타루.”
카스가는 주택가 쪽으로 빠지는 대신 도로가 이어지는 언덕길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부키는 잠깐 멈추어 서서 주택가 쪽을 한 번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성큼성큼 걸어 카스가와의 거리를 좁혔다.
“집으로 안 가?”
카스가가 대답하지 않자 이부키는 음, 하고 고민하다가 다시 물었다.
“아깐 삥 뜯기고 있던 거야?”
“…….”
“어-이, 대답 좀 해. 나 기다리고 있던 거 아니었냐구?”
카스가가 멈추어 서서 이부키를 돌아보았다.
“삥 뜯기고 있던 거 아니야.”
“에, 그러면?”
“걔네, 나랑 친구야.” 그러더니 카스가는 약간 씁쓸한 투로 덧붙였다. “일단은.”
다음 순간, 카스가는 그렇게 말한 데에 자존심이 상한 것 같기도 하고 화가 난 것 같기도 한 굉장히 복잡한 태도를 취했다. 그렇게 말해버린 스스로에게 혐오감을 느끼는 것 같은 표정을 지어보였던 것이다. 이부키가 그 표정을 유심히 들여다보자 카스가가 눈을 피하면서 방어적으로 말했다.
“아깐 네가 괜히 덤벼든 거야.”
“…….”
“그 얘기하려고… 기다린 것뿐이야.”
카스가는 황급히 걸어 나가려고 했다. 그 때 덥석 손목이 붙잡혔다.
“나 미안하다고 말해야하는 건가?”
단숨에 그와의 거리를 좁힌 이부키가 물었다.
“아니, 아니다. 미안. 그러니까 그 말은, 내가 뭔가 오해한 거지? 나 때문에 뭔가 곤란해졌다고 말한 거지? 그러면 나, 그 녀석들한테 제대로 사과할게. 정말로 미안.”
카스가는 대답 대신 입을 꾹 다문 채 앞을 노려보았다. 이부키는 카스가를 쳐다보면서 천천히 그의 손목을 놓아주었다.
“그래도 다음번에 또 그런 상황이 오면, 나는 아마 그 녀석들 또 두들겨 팰지도 몰라….”
카스가가 이부키 쪽으로 고개 돌렸다.
“왜?”
이부키는 꼭 남의 얘기를 하는 투로 말했다.
“그야 뭐… 난 그런 놈이니까?”
두 사람은 말없이 언덕을 넘었다. 내리막길이 시작되는 동안 동쪽에서부터 바람이 불어왔다. 숲의 울창한 흙 내음과 바닷가 짠 내가 뒤엉킨 기묘한 냄새였다. 바닷가 쪽을 응시하던 카스가가 입을 열었다.
“아까 괴롭힘 당하고 있던 거 맞아.”
첫 번째 내리막을 내려가고 나자 본격적으로 경사가 시작되어 길이 울퉁불퉁해졌다. 몇 미터 앞에 또다시 오르막길이 나타났다. 카스가는 앞을 바라보며 걷고 있었지만 생각에 잠긴 것처럼 발걸음이 느려졌다.
“나, 너처럼 여기 온 지 얼마 안 됐어. 중학교 3학년 때 전학 온 건데, 그전까진 지바에서 살았어.”
“지바?! 근처네. 난 도쿄에서 왔어.”
“내가 있던 곳도 그렇게 큰 지역은 아니긴 했지만… 여긴 장난 아니게 좁잖아. 그래서 도착했을 때까지만 해도 별 기대 없었어. 지바에선 쭉 혼자였거든. 아니, 이지메 당한 건 아니지만 친한 친구랄까, 그런 거 있잖아. 같이 몰려다니는 무리 같은 게 있어서, 그걸 모두가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어서, ‘아, 그 녀석들 말이지~’에 포함되는 그런 거. 나 학교 다니는 내내 그런 친구들을 사겨본 적 없었거든.”
“아. 그거 알지, 알지. 난 다섯 명끼리 모이게 되면 고고파이브*(1999년 2월부터 2000년 2월까지 토에이에서 방영했던 특촬물 시리즈) 같은 거 하고 싶었어.”
만담처럼 던진 말이었지만 카스가는 웃지 않았다.
“그런데 예상 외로 전학 오자마자 엄청나게 요란한 녀석들하고 어울리게 됐어. 네가 오늘 쥐어 패서 코피 터뜨린 애 말이야. 타이세이라는 녀석인데, 그 녀석 골 때리게 웃기거든. 수업 중에 농담을 던지면 모두가 자지러져서 일주일 내내 그게 유행어로 돌아다닐 정도야. 그런데 어쩌다 그 녀석 옆자리에 앉게 돼서, 정신을 차려보니 같이 몰려다니고 있더라고. 난 친구가 그렇게 어이없을 정도로 허무한 우연으로 만들어지는 줄은 그때 알았어. 학창시절의 추억이랄까, 우정 같은 거, 결국은 운이 따라줘야 되는 거더라. 지바에 있을 땐 무슨 짓을 해도 안 생겼는데, 고작 그 녀석 옆자리에 앉았다는 이유로, 어쩌다 그 녀석 농담에 재밌게 이용됐다는 이유로 갑자기 주변이 와글와글해지는 거야.”
두 사람 곁으로 승용차 한 대가 부웅 지나갔다. 이부키는 카스가의 속도에 맞추느라 걷다가 멈추기를 반복하고 있었지만 카스가는 생각에 잠겨서 그를 눈치채지 못 했다.
“다들 타이세이를 좋아해. 몰려다닐 때도 타이세이가 어디 가서 뭘 하자고 의견을 내면 보통은 그렇게 되는 분위기야. 처음엔 눈치채지 못했는데, 나중에 깨닫고 나니까 엄청 거부감 들더라. 타이세이 녀석, 아닌 척해도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굴러가야 만족하는 놈이거든. 덕분에 다른 사람들이 의견을 내도 자연스럽게 묵살하고 자기 의견을 밀어붙이는 게 습관이 되어버린 녀석이었어. 다른 애들도 거기에 익숙해져서, 따로 반감을 가지거나 항의하질 않는 거야. 그게 너무 싫어서 지난 방학식 때는 엄청 따졌어.”
카스가는 씁쓸한 표정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됐는지 알아? 다들 내 탓을 하는 거야. ‘우리는 몇 년 동안이나 이렇게 지내왔는데 갑자기 네가 이러는 거 무례하고 기분 나빠.’라면서. 뭐, 사실 알고는 있었어. 난 중간에 낀 녀석이고 평소에 아무리 동등한 척 어울려봤자 정말로 중요한 일에는 끼어들 수 없단 거. 주말이면 나를 빼고 어딘가로 놀러가기도 한다는 거. 어울리고 있는 것 같아도 사실 나는 투명인간이라는 거….”
“그 일로 미움을 사버린 거야?”
“응?”
이부키가 진지하게 물었다.
“이지메 당하기 시작한 건, 방학식날 사건 때문에?”
“아, 아… 그렇지. 방학 내내 그랬어.”
생각에서 빠져나온 카스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길, 뭐야. 그런 줄 알았으면 더 패주는 건데! 불러내서 괴롭힌 거야?”
이부키가 씩씩거리자 카스가는 조금 당황한 것 같았다.
“아, 아니. 때리진 않았어. 딱히 부르지는….”
“하? 그러면?”
카스가가 부정확한 투로 우물거렸다.
“뭐어. 음, 일부러 라인을 씹거나, 내 말에 무조건 재미없다고 대답하거나. 음, 음…. 아, 나는 모르는 얘기를 일부러 단체 대화 방에 올린다던가….”
“그 녀석들 진짜 최저네.”
이부키가 자기 일처럼 분통을 터뜨렸다. 카스가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쑥스러운 건지 시선 둘 곳을 못 찾고 바닥을 이리저리 쓸면서도 입에는 조용히 미소가 걸려 있었다.
신이 난 카스가가 한결 밝아진 투로 말했다.
“오늘 아침엔 그 녀석들이 날 불렀어. 7시 반까지 신사 앞으로 나오라고 해서 나갔더니 ‘용서해줄 테니까 부탁 하나만 들어줘’라고 했어. 그러더니 나를 신사 안쪽으로 끌고 가서, 본전에 있는 물건을 하나 가지고 오라고 했어. 우정을 증명해달라면서…. 자기들도 어릴 때 돌아가며 다 해본 일이라는 거야. 난 싫다고 했는데, 그런데 거절할 수가 없어서….”
“아니, 아니. 그건 진짜로 큰일이잖아. 그래서 정말로 가지고 나온 거야?”
카스가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어, 으응….”
이부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에에에, 신사에서 함부로 장난치면 벌받는다고 그랬는데. 그거 지금 갖고 있어?”
카스가는 눈을 굴리다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그것은 나무를 깎아 만든 인간 형태의 입상 조각이었다. 다만 머리는 잉어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형태만 잡혀 있을 뿐 세세한 표현은 이루어지지 않아 조각은 투박해 보이면서도 어떤 면에선 조잡해 보였다.
이부키가 펄쩍 뛰었다.
“야, 이거 위험해. 진짜로 위험한 거 아니야?”
카스가가 어쩔 줄 모르고 눈을 굴렸다.
“그래도 강제로 시키는 바람에 억지로 가지고 나온 거니까 아마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
“무슨 소리야, 그래도 도로 가져다놔야지!”
잠시 고민하던 이부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았어, 내가 같이 가줄게! 내친 김에 제대로 사과도 드리자.”
카스가가 화들짝 놀라 되물었다.
“지, 지금?”
“당연하지. 가능하면 빨리 가져다 놓는 게 좋지 않아?”
카스가는 곧장 대답하지 않고 눈을 굴렸다. 그러더니 갑자기 한없이 소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저기…. 그렇게 큰일인가?”
“응? 당연하지. 아, 마침 저 언덕 위 아니야? 타이밍 좋네~ 잘됐잖아.”
아까 보이던 언덕이 코앞에 있었다. 일전보다 완만한 길이라 걷는데 별로 힘이 들지 않았다. 이부키는 속력을 냈다. 낙사주의 팻말이 붙은 경사면을 지나쳐 우다다 달려 올라가더니 어느 순간 뒤돌아서서 내려다보았다.
카스가는 아래쪽에서 뺀질거리고 있었다. 마지못해 올라오는 것 같긴 했지만 표정이 이상했다. 이부키는 건널목 너머로 보이는 신사의 입구를 가리켰다. 빨리 오라는 것처럼 팔을 흔들어대더니 먼저 신호를 건너 반대편으로 건너갔다.
카스가는 느릿느릿 뒤따르다가 결국 멈추어 섰다. 신호가 파란불이 되었지만 그는 움직이지 않고 이부키 쪽만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었다. 카스가를 소리쳐 부르던 이부키가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횡단보도를 건너왔다. 그는 카스가의 얼굴이 급격히 창백해진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카스가. 너 얼굴이 갑자기 왜 그래? 허옇게 질렸잖아.”
“이부키, 나 그냥 집에 갈래. 난 저기 들어가고 싶지 않아.”
“에, 그렇지만.”
“아침에도 억지로 저기 안에 들어갔다 왔단 말이야. 무서워서 가고 싶지 않아.”
“그러다 나중에 안에서 뭐 없어진 거 알려지면 분명 혼날 거야.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벌 받으면 억울하잖아! 나쁜 건 그 녀석들인데도!”
“상관없어. 그냥 돌아가자.”
카스가는 막무가내였다.
이부키는 신사 입구를 올려다보았다. 나무에 드문드문 가려진 붉은 토리이 너머로 배전이 우뚝 서서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 내가 대신 다녀올까?”
“뭐?”
느닷없이 이부키가 오른손을 펼치더니 손가락을 현란하게 움직이며 입으로 “푸슝~”소리를 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카스가가 얼빠진 얼굴로 보고 있으니 갑자기 번개 같은 움직임으로 그의 손에 들린 목상을 낚아채는 것이었다. 미처 말리기도 전에 이부키는 계단을 뛰어올라가면서 고개를 홱 돌리고 씩 웃었다.
“잠깐,”
“얼른 돌려놓고 올게!”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우다다 뛰어올라갔다.
이부키는 긴장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어깨에 힘을 주고 허리를 펼쳤다. 몸집을 한껏 부풀려 상대를 위협하는 건 동물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그러나 이부키가 서있는 곳은 사바나가 아니라 교무실이었기 때문에 그의 야생적인 노력은 전혀 먹히지 않았다.
이부키의 담임이 될 1학년 B반의 야마구치 선생은 서류를 뒤적이느라 엄청난 시간을 할애했다. 이 선생은 올해로 서른여덟 살이 된 비교적 젊은 교사였지만 타고난 행동거지가 느긋하고 게을러서 굉장히 무성의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이부키는 좀이 쑤시는 것처럼 안절부절못하며 야마구치가 뒤적이는 서류를 내려다보다가 교무실 출입문 쪽을 두리번거리다가 했다. 지나가던 학생들이 잠깐씩 멈추어 서서 가쿠란 차림의 이부키를 구경하듯 살펴보다 가고 있었다. 개중 하나와 눈이 마주쳤다. 여학생이었다. 이부키는 순간 당황했다가 씨익 웃어주었는데, 화들짝 놀란 여학생은 고개를 홱 돌리더니 황급히 사라져버렸다.
“아, 여기 있네.”
야마구치가 파일철 틈에서 서류 한 장을 꺼냈다.
서류를 받아든 이부키는 한 번 슥 훑어보곤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씩씩하게 말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부키 아이입니다.”
“가방을 안 들고 온 거냐?”
“아, 여기 지정가방제인 줄 알았는데요.”
이부키가 쑥스럽게 뒷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오늘 그거 받으려고 온 건데….”
“아냐, 아냐. 그건 5년 전에 폐지됐어. 요즘은 다들 백팩이지.”
“에에, 진짜요?!”
이부키는 하늘이 무너진 표정으로 야마구치를 쳐다봤다.
“스쿨백 로망이었는데….”
야마구치가 파일철을 도로 꽂아두면서 말했다.
“뭐, 뒤쪽 비품창고에 굴러다니는 스쿨백 재고가 있긴 할 거다. 열쇠 줄 테니까 가서 찾아보고 있으면 하나 가져가라.”
이부키의 입 꼬리가 활짝 올라갔다.
“참, 너 재적증명서 안 냈더라.”
이부키의 입 꼬리가 내려갔다.
“이번 주 내로 제출하고 교복도 새로 맞춰 입고.”
땅바닥을 보면서 허공으로 시선을 흘기던 이부키가 마지못해 대답했다.
“네에.”
복도로 나오자 모든 시선이 한순간 이부키에게 집중됐다. 블레이저 와이셔츠 차림의 학생들 틈에서 시꺼먼 가쿠란은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다리가 길고 호리호리한 체형 때문에 서있기만 해도 남다른 느낌이었다. 이부키는 또래들보다 키가 큰 축에 속했다.
이부키는 눈을 굴렸다. 태연한 표정으로 호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고 있지만 사실은 쏟아지는 시선을 신경 쓰느라 바짝 곤두서있었기 때문이다. 괜히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그는 “비품창고, 비품창고…”하고 혼잣말을 하며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우와~ 등이 따갑구만.’
도쿄에서도 이부키는 눈에 띄는 학생이었다. 복도를 걷고 있으면 시선이 쏠리고 등 뒤에서 여러 소문들이 쏟아졌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부키를 두려워했고, 그렇기 때문에 지극히 무관심하게 대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기억하기로 이부키 본인은 그렇게까지 큰 말썽을 부리거나 사고를 친 적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언제나 큰 소란을 일으킨 장본인 취급을 받고 있었다. 아무래도 키가 커서 그런가? 크면 위협적으로 보이니까?
아무튼지 간에 이부키는 이번 학교에서 새롭게 잘 해볼 생각이었다.
‘좋은 인상, 좋은 인상.’
불행히도 이부키는 벌써부터 주목을 받고 있었다. 복도를 헤매던 그가 1학년 복도에 들어서자마자 아이들 사이에서 빠른 속도로 소문이 퍼져나갔던 것이다. 졸업할 때까지 학급 수에 큰 변화가 없는 구석진 지방 공립학교의 특성상 그것은 필연적인 일일 수밖에 없긴 했다. 다만 이부키 자신이 염려한 대로 가쿠란은 첫날부터 굉장히 튀는 옷이 되어버린 데다가 1학년 복도에 들어설 즈음엔 긴장을 감추지 못하고 옛날처럼 어슬렁거리는 발걸음이 튀어나온 탓에 몇몇 아이들은 벌써부터 그가 양아치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전학생?”
“우왁, 커!”
“뭔가 험상궂은 느낌…”
“그래도 좀 멋있지 않아?”
이부키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긴장해서 그런 건지 들떠서 그런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도망치듯 점점 더 빨리 걷다가 머릿속으로 누군가의 격언을 떠올리곤 발걸음을 늦췄다. ‘이부키, 사람들은 네가 대하는 대로 너를 대한다. 그 사실을 기억하렴.’
자리에 멈추어 선 이부키가 고개를 홱 돌리고 우렁차게 인사를 건네려던 순간이었다. 5교시를 알리는 종이 치며 일순 모두의 관심사가 뒤바뀌었다. 우르르 교실로 돌아가는 학생들을 어리둥절하게 바라보던 이부키는 뒤늦게 상황을 이해하고 머쓱하게 뒤통수를 긁었다.
수업이 시작되자 학교 분위기는 금세 가라앉았다. 운동장에서 출석을 부르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이부키는 후문 쪽으로 빠져나왔다가 근처를 서성거리며 자연스럽게 학교 구조를 익혔다. 비품창고는 체육관 뒤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부키가 문을 열려고 주머니를 뒤적이고 있을 때, 수풀 너머에서 이야기소리가 들려왔다.
“최악이잖아, 이 자식.”
“너 이거 어떻게 책임질 셈이야?”
“나는 그저… 나는 그냥….”
“뭐라는 거야, 똑바로 말해.”
정신을 차렸을 땐 고개가 수풀 쪽으로 완전히 돌아간 것도 모자라 몸이 그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안쪽으로 들어가자 키 큰 남학생 셋이 한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실랑이를 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벽에 몰린 남학생은 거의 울 것 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곧이어 분을 이기지 못한 무리 중 하나가 그를 거칠게 벽으로 밀친 순간, 이부키의 눈에서 불꽃이 튀어 올랐다.
“어이! 어이, 어이, 어이!”
갑작스러운 등장에 무리는 물론이고 벽에 몰린 남학생마저 당황한 표정이었다.
“뭐야, 이 녀석은?”
“너희들! 걔한테서 떨어져.”
이부키가 성큼성큼 다가가며 위협적으로 으르렁거렸다.
무리 중 가장 키 큰 녀석이 이부키를 훑어보며 말했다.
“넌 뭐야? 알지도 못하면서 끼어들지 마.”
“친구를 이지메하면 안 되지.”
가까이 다가선 이부키는 멀리서 볼 때보다 훨씬 키가 커보였다. 무리 중 가장 키 작은 녀석이 나머지 두 사람의 눈치를 보았다.
“렌지. 타이세이. 얘 알아?”
“알겠냐?”
두 번째로 키 큰 녀석이 툴툴거리며 이부키를 향해 고개를 치켜들었다.
“너, 이 학교 학생도 아닌 것 같은데 남의 학교 일에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빠져. 이쪽은 이쪽의 사정이 있는 거거든?”
“네에~ 오늘부터 이 학교 학생입니다.”
이부키가 빈정거리며 세 사람을 밀쳤다.
“전학생이거든요, 끼어들 수 있게 돼서 유감이네요.”
그런 뒤 벽에 몰려있는 학생에게 고개 숙이며 물었다.
“어이, 괜찮냐?”
퍽, 거칠게 떠미는 손길에 몸이 휘청거렸다. 고개를 홱 돌리자 싸울 기세로 주먹을 쥔 두 번째 녀석이 눈에 들어왔다.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나머지들은 뒤로 빠져있었으나 삐딱하게 선 폼이 예사롭지 않았다. 이부키는 저 눈빛들을 알고 있었다. 스위치가 올라가는 게 느껴졌다. 순간 이부키는 눈앞의 세 사람이 아까 택시 안에서 본 그 녀석들이라는 걸 떠올려 냈다.
“어이, 너네 아까의 쓰레기들이네.”
이부키가 천천히 주먹을 쥐면서 웃었다.
“지금 밀었지?”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웃음은 금방 사라졌다.
“밀었잖아.”
‘좋은 인상, 좋은 인상.’
딸깍, 하는 것처럼 순식간에 피가 끓어오르더니 생각 이전에 주먹이 먼저 나가있었다. 우측으로 들어오는 주먹을 본능적으로 피하면서 몸을 숙이자 귓가로 매서운 바람이 스쳤다. 그는 곧바로 명치 부근에 주먹을 꽂아넣었다.
이부키는 타고난 싸움꾼이었다.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싸울 때면 감각이 달랐고 눈앞이 새하얘지면서 머리끝까지 열이 솟구쳐 바글바글 끓었다. 그때쯤엔 모든 게 본능의 영역에 들어섰다. 사람의 말로 가르칠 수 없는 것이 그의 안에 똬리를 틀고 있었다. 이부키는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결국 자기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고 말았다면 필사의 힘으로 휘두르고 싶었다. 그는 얕보여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머리 위에서 묵직하게 컥, 하고 헐떡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서서히 정신이 돌아오면서 맞은 부위가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이부키는 정신을 차렸다. 누군가 그의 어깨를 붙잡고 있었다. 이부키는 잠깐 멍한 상태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상황이 순서 없이 뒤죽박죽 흘러들어왔다. 어깨를 붙잡은 손. 그 손의 주인이 굉장히 화난 얼굴로 무언가를 소리치고 있고, 아까까지 주먹을 휘두르던 두 사람이 배를 움켜쥔 채 널브러져 있다. 나머지 한 명은 허리를 숙이고 코를 움켜쥐고 있었다. 곧이어 체육복 차림의 누군가가 달려와서 그를 부축했다.
이부키는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돌렸다. 벽이 텅 비어있었다. 어, 구해주려던 녀석은 어디에… 그 순간 귀가 뚫리면서 소리가 들렸다.
“어이, 대답 안 해? 너 누구야. 어디서 온 녀석이야!”
이부키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체육복 차림인데 학생이라기엔 너무 늙은 얼굴. 누구냐니. 전학생이라니까? 이부키 아이입니다, 잘 부탁해요. 이부키는 눈을 깜빡이며 깨달았다. 아, 교사구나.
그러자 시야가 트였다. 이부키는 뒤쪽으로 우르르 몰려있는 인영들을 보았다. 체육복 차림으로 두 손을 들어 입을 막거나 경악스러운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 운동장에서 출석을 부르던 반 아이들이 떼로 몰려온 것이다. 체육교사가 격양된 목소리로 이부키를 거칠게 흔들었다.
“너, 교무실로 따라와. 어디 학교인지 똑바로 말하는 게 좋을 거야.”
멍한 상태로 질질 끌려가던 이부키는 아까 그 학생이 어디로 간 게 아니라 벽에 기댄 채 주저앉아있을 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는 눈물 젖은 눈으로 이부키를 올려다보며 공포에 질려 있었다. 내내 저랬을까? 그 순간 떠밀려 났던 모든 감각이 일순 벼락처럼 내리꽂히며 현실감각이 돌아왔다.
쿵쾅거리던 심장이 차갑게 내려앉으면서 웅성거리는 소음, 깔보는 시선, 두려움으로 속삭이는 소리 따위가 하나의 정보 값으로 재조립되었다. 다음 순간 엄청난 속도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하나의 퍼즐로 맞춰졌다. 이부키는 혼자서 자전거를 끌고 집으로 돌아가던 지난 날과 앞으로 그렇게 될 날들을 떠올렸다. 손바닥 안에 묵직하게 감기는 감각이 있었다. 그걸 뭐라 부르지. 불러줘야 하나?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무서워.’
또 망친 것 같았다.
4
“시마, 들었어? 전학생이 네 친구들 두들겨 팼대.”
“하?”
“그냥 팬 것도 아니고 엄청나게 팼다나 봐. 타이세이는 코피 때문에 부축받으면서 양호실 갔다가 아까 조퇴했대.”
종례가 막 끝난 참이라 교실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아이들은 웬일로 곧장 집에 가지 않고 삼삼오오 모여서 떠들고 있었다. 시마는 반 아이들이 저마다 비슷한 주제에 대해 얘기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어쩌다가?”
“나야 모르지. 듣기로는 카스가랑 관련 있다던데.”
반 친구가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카스가가 고용한 양키라는 말이 있어.”
시마가 책상을 정리하며 물었다.
“카스가는?”
“응?”
“무사해?”
“아아, 안 다쳤어, 안 다쳤어. 싸움 난 건 타이세이 쪽.”
“아깐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은 것처럼 말하더니, 역시 싸움인가.”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은 거나 다름없어서 그랬지. 시비도 그쪽에서 먼저 걸었대.”
“헤에.”
“그 전학생, 완전 머리가 이거라니까.”
반 친구가 손가락으로 머리 주변을 뱅뱅 돌렸다.
“눈이 맛탱이 가서 장난 아니었대. 고다가 안 말렸으면 진짜 죽였을지도 몰라. 고다, 그 녀석 때문에 엄청 야마 돈 거 알아? 말렸는데 들은 채도 안 하고 계속 주먹질을 해서 허리 붙잡고 어깨에 매달리고 완전 본새 빠지는 모양새로 겨우 말렸다잖아. C반 애들이 직접 봤대. 완전 무서웠대.”
“카스가도 조퇴냐?”
“아마 아직 교무실에 있을 걸?”
교무실 앞은 바글바글했다. 시마는 아이들을 헤치고 나아가다가 교무실 안에서 소문의 전학생을 보았다. 인파 틈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지만 새카만 가쿠란 때문에 금방 눈에 띄었다. 멀리서 봐도 그는 외지인이라는 분위기를 팍팍 풍겨댔고, 서있는 폼에서부터 불량아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등을 굽힌 채 뒷짐을 지고 교사 앞에 서있었는데, 연신 고개를 쳐들고 무언가 항의하려고 했다. 음, 대강 어떤 놈인지 알겠군. 시마는 금세 흥미를 잃었다.
얼마 뒤 카스가가 교무실 뒷문으로 조용히 빠져나왔다. 그를 놓치지 않고 다가간 시마가 어깨를 붙잡았다. 상대를 확인한 카스가는 대놓고 불편한 티를 냈다.
“왜?”
“너 오늘 본전에 들어갔다며?”
“그래서?”
“액막이 받고 가.”
카스가의 시선이 절로 아래쪽으로 향했다. 시마는 오른손에 야쿠오도시를 쥐고 있었다.
카스가가 빈정거렸다.
“그거 효과 없다며?”
시마는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였고, 그 행동이 어떤 면에서 카스가의 심기를 건드린 것 같았다.
“시마, 너 작작 좀 해. 적당히 하고 컨셉 통일부터 하라고. 보이는 쪽인지 안 보이는 쪽인지 확실히 해. 어차피 넌 어느 쪽이든 주목받으니까 상관없잖아.”
“주목받고 싶었던 거냐?”
어느새 시마는 카스가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 주목받고 싶어서 그런 짓을 저지른 거야?”
카스가는 입을 다물었다. 한참 바닥을 쏘아보면서 말을 고르는 눈치였다. 그가 고개를 홱 들었을 때 시마는 내심 놀랐다. 카스가가 울 줄은 몰랐던 것이다.
눈물을 참는 얼굴로 카스가가 말했다. 목소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건 네 얘기 아냐? 또 잘난 듯이 나서서 쑤시고 싶나 봐. 너 같은 게 뭘 안다고. 시마, 네가 보기엔 내가 장난하는 것 같아? 난 말이야, 타이세이 녀석들이 진짜 싫어. 그런데 엄청나게 좋거든.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네 머리로 이해가 되긴 하냐?”
카스가가 비난했다.
“모르겠지?”
무언가 대꾸하려던 시마는 이어지는 말에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넌 그딴 건 전혀 신경 안 쓰니까.”
카스가가 시마의 어깨를 치고 지나갔다.
반 박자 늦게 입을 뻥긋거리던 시마는 카스가를 불러 세우려다가 마음을 바꾸었다. 카스가는 이미 인파를 뚫고 복도 끝으로 향하고 있었다. 멀어져 가는 어깨 위에 희끄무레한 형상이 붙어 흔들리고 있었다.
괜찮겠지. 위험하진 않을 것 같다. 시마는 고민하다가 결론을 내렸다. 저 정도는 귀신 이야기를 했을 때 달라붙는 정도의 것이니까.
만약 위험했다면 시마 자신이 가장 먼저 알아차렸을 것이다. 업이 쌓이고 액이 달라붙은 인간은 가까이 있을 때 도무지 모를 수가 없다. 주변을 쉽게 지치게 하고 나쁜 일들을 불러 모으기 때문이다. 당장 카스가가 아주 깨끗한 기운을 갖고 있는 게 아니긴 했지만, 그건 본전을 들락거렸으니 한동안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 부분은 방과 후에 신사에 들러 조치를 취하면 될 일이라고 시마는 생각했다.
‘본전 물건에 손을 댄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복도 끝에 도착한 카스가가 코너를 돌아 자취를 감췄다.
5
이부키는 카스가가 풀려나고 나서 몇 분 뒤에 풀려났다. 야마구치 선생은 훈계조차 귀찮아하는 눈치였다. 그는 얼른 퇴근해서 남은 금요일 저녁을 만끽하고 싶어했다. 어차피 맞은 녀석들도 크게 다치지 않았고, 카스가의 말을 들어보니 이유 없는 시비도 아니었다. 전학 온 지 하루도 채 되지 않아 소란을 일으킨 이부키가 다소 충동적이고 경솔한 학생이란 생각만큼은 톡톡히 박혀버렸지만.
야마구치는 주변 시선을 신경 써서 억지로 다그치는 것처럼 이부키에게 성의 없이 몇 가지 사안을 묻고 의무적인 훈계를 한 뒤에 그를 놓아주었다.
교무실을 나서는 동안 대부분의 교사들은 벌써부터 이부키를 향한 적대적인 감정을 감추려고 들지 않았다. 야마구치 선생님, 저렇게 놔줘도 되는 거예요? 누군가 작게 볼멘소리를 했다. 이부키는 쾅 소리 나게 문을 닫았다.
모여 있던 아이들이 황급히 흩어지면서 급작스럽게 딴청을 부렸다. 이부키는 이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는 화가 머리끝까지 난 사람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무척 절망한 상태였다. 도망치듯 학교를 벗어난 이부키는 교문을 넘는 도중 아까 구해주려고 했던 학생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나무에 기대어 있는 것을 보았다.
이부키가 다가가자 학생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부키가 냅다 물었다.
“너 괜찮은 거야?”
“뭐가?”
이부키가 멀뚱멀뚱 학생을 바라보았다.
“그야 아까 그 녀석들 나 때문에 엄청 약 올랐으니까…? 이런 데 서 있으면 너 또 시비 걸리는 거 아니냐구?”
“아…. 괜찮아. 걔네 아까 조퇴했거든.”
“그럼 다행인데 말이지.”
두 사람은 걷기 시작했다.
“너 이름이 뭐야? 난 이부키 아이.”
“…카스가 호타루.”
카스가는 주택가 쪽으로 빠지는 대신 도로가 이어지는 언덕길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부키는 잠깐 멈추어 서서 주택가 쪽을 한 번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성큼성큼 걸어 카스가와의 거리를 좁혔다.
“집으로 안 가?”
카스가가 대답하지 않자 이부키는 음, 하고 고민하다가 다시 물었다.
“아깐 삥 뜯기고 있던 거야?”
“…….”
“어-이, 대답 좀 해. 나 기다리고 있던 거 아니었냐구?”
카스가가 멈추어 서서 이부키를 돌아보았다.
“삥 뜯기고 있던 거 아니야.”
“에, 그러면?”
“걔네, 나랑 친구야.” 그러더니 카스가는 약간 씁쓸한 투로 덧붙였다. “일단은.”
다음 순간, 카스가는 그렇게 말한 데에 자존심이 상한 것 같기도 하고 화가 난 것 같기도 한 굉장히 복잡한 태도를 취했다. 그렇게 말해버린 스스로에게 혐오감을 느끼는 것 같은 표정을 지어보였던 것이다. 이부키가 그 표정을 유심히 들여다보자 카스가가 눈을 피하면서 방어적으로 말했다.
“아깐 네가 괜히 덤벼든 거야.”
“…….”
“그 얘기하려고… 기다린 것뿐이야.”
카스가는 황급히 걸어 나가려고 했다. 그 때 덥석 손목이 붙잡혔다.
“나 미안하다고 말해야하는 건가?”
단숨에 그와의 거리를 좁힌 이부키가 물었다.
“아니, 아니다. 미안. 그러니까 그 말은, 내가 뭔가 오해한 거지? 나 때문에 뭔가 곤란해졌다고 말한 거지? 그러면 나, 그 녀석들한테 제대로 사과할게. 정말로 미안.”
카스가는 대답 대신 입을 꾹 다문 채 앞을 노려보았다. 이부키는 카스가를 쳐다보면서 천천히 그의 손목을 놓아주었다.
“그래도 다음번에 또 그런 상황이 오면, 나는 아마 그 녀석들 또 두들겨 팰지도 몰라….”
카스가가 이부키 쪽으로 고개 돌렸다.
“왜?”
이부키는 꼭 남의 얘기를 하는 투로 말했다.
“그야 뭐… 난 그런 놈이니까?”
두 사람은 말없이 언덕을 넘었다. 내리막길이 시작되는 동안 동쪽에서부터 바람이 불어왔다. 숲의 울창한 흙 내음과 바닷가 짠 내가 뒤엉킨 기묘한 냄새였다. 바닷가 쪽을 응시하던 카스가가 입을 열었다.
“아까 괴롭힘 당하고 있던 거 맞아.”
첫 번째 내리막을 내려가고 나자 본격적으로 경사가 시작되어 길이 울퉁불퉁해졌다. 몇 미터 앞에 또다시 오르막길이 나타났다. 카스가는 앞을 바라보며 걷고 있었지만 생각에 잠긴 것처럼 발걸음이 느려졌다.
“나, 너처럼 여기 온 지 얼마 안 됐어. 중학교 3학년 때 전학 온 건데, 그전까진 지바에서 살았어.”
“지바?! 근처네. 난 도쿄에서 왔어.”
“내가 있던 곳도 그렇게 큰 지역은 아니긴 했지만… 여긴 장난 아니게 좁잖아. 그래서 도착했을 때까지만 해도 별 기대 없었어. 지바에선 쭉 혼자였거든. 아니, 이지메 당한 건 아니지만 친한 친구랄까, 그런 거 있잖아. 같이 몰려다니는 무리 같은 게 있어서, 그걸 모두가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어서, ‘아, 그 녀석들 말이지~’에 포함되는 그런 거. 나 학교 다니는 내내 그런 친구들을 사겨본 적 없었거든.”
“아. 그거 알지, 알지. 난 다섯 명끼리 모이게 되면 고고파이브*(1999년 2월부터 2000년 2월까지 토에이에서 방영했던 특촬물 시리즈) 같은 거 하고 싶었어.”
만담처럼 던진 말이었지만 카스가는 웃지 않았다.
“그런데 예상 외로 전학 오자마자 엄청나게 요란한 녀석들하고 어울리게 됐어. 네가 오늘 쥐어 패서 코피 터뜨린 애 말이야. 타이세이라는 녀석인데, 그 녀석 골 때리게 웃기거든. 수업 중에 농담을 던지면 모두가 자지러져서 일주일 내내 그게 유행어로 돌아다닐 정도야. 그런데 어쩌다 그 녀석 옆자리에 앉게 돼서, 정신을 차려보니 같이 몰려다니고 있더라고. 난 친구가 그렇게 어이없을 정도로 허무한 우연으로 만들어지는 줄은 그때 알았어. 학창시절의 추억이랄까, 우정 같은 거, 결국은 운이 따라줘야 되는 거더라. 지바에 있을 땐 무슨 짓을 해도 안 생겼는데, 고작 그 녀석 옆자리에 앉았다는 이유로, 어쩌다 그 녀석 농담에 재밌게 이용됐다는 이유로 갑자기 주변이 와글와글해지는 거야.”
두 사람 곁으로 승용차 한 대가 부웅 지나갔다. 이부키는 카스가의 속도에 맞추느라 걷다가 멈추기를 반복하고 있었지만 카스가는 생각에 잠겨서 그를 눈치채지 못 했다.
“다들 타이세이를 좋아해. 몰려다닐 때도 타이세이가 어디 가서 뭘 하자고 의견을 내면 보통은 그렇게 되는 분위기야. 처음엔 눈치채지 못했는데, 나중에 깨닫고 나니까 엄청 거부감 들더라. 타이세이 녀석, 아닌 척해도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굴러가야 만족하는 놈이거든. 덕분에 다른 사람들이 의견을 내도 자연스럽게 묵살하고 자기 의견을 밀어붙이는 게 습관이 되어버린 녀석이었어. 다른 애들도 거기에 익숙해져서, 따로 반감을 가지거나 항의하질 않는 거야. 그게 너무 싫어서 지난 방학식 때는 엄청 따졌어.”
카스가는 씁쓸한 표정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됐는지 알아? 다들 내 탓을 하는 거야. ‘우리는 몇 년 동안이나 이렇게 지내왔는데 갑자기 네가 이러는 거 무례하고 기분 나빠.’라면서. 뭐, 사실 알고는 있었어. 난 중간에 낀 녀석이고 평소에 아무리 동등한 척 어울려봤자 정말로 중요한 일에는 끼어들 수 없단 거. 주말이면 나를 빼고 어딘가로 놀러가기도 한다는 거. 어울리고 있는 것 같아도 사실 나는 투명인간이라는 거….”
“그 일로 미움을 사버린 거야?”
“응?”
이부키가 진지하게 물었다.
“이지메 당하기 시작한 건, 방학식날 사건 때문에?”
“아, 아… 그렇지. 방학 내내 그랬어.”
생각에서 빠져나온 카스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길, 뭐야. 그런 줄 알았으면 더 패주는 건데! 불러내서 괴롭힌 거야?”
이부키가 씩씩거리자 카스가는 조금 당황한 것 같았다.
“아, 아니. 때리진 않았어. 딱히 부르지는….”
“하? 그러면?”
카스가가 부정확한 투로 우물거렸다.
“뭐어. 음, 일부러 라인을 씹거나, 내 말에 무조건 재미없다고 대답하거나. 음, 음…. 아, 나는 모르는 얘기를 일부러 단체 대화 방에 올린다던가….”
“그 녀석들 진짜 최저네.”
이부키가 자기 일처럼 분통을 터뜨렸다. 카스가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쑥스러운 건지 시선 둘 곳을 못 찾고 바닥을 이리저리 쓸면서도 입에는 조용히 미소가 걸려 있었다.
신이 난 카스가가 한결 밝아진 투로 말했다.
“오늘 아침엔 그 녀석들이 날 불렀어. 7시 반까지 신사 앞으로 나오라고 해서 나갔더니 ‘용서해줄 테니까 부탁 하나만 들어줘’라고 했어. 그러더니 나를 신사 안쪽으로 끌고 가서, 본전에 있는 물건을 하나 가지고 오라고 했어. 우정을 증명해달라면서…. 자기들도 어릴 때 돌아가며 다 해본 일이라는 거야. 난 싫다고 했는데, 그런데 거절할 수가 없어서….”
“아니, 아니. 그건 진짜로 큰일이잖아. 그래서 정말로 가지고 나온 거야?”
카스가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어, 으응….”
이부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에에에, 신사에서 함부로 장난치면 벌받는다고 그랬는데. 그거 지금 갖고 있어?”
카스가는 눈을 굴리다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그것은 나무를 깎아 만든 인간 형태의 입상 조각이었다. 다만 머리는 잉어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형태만 잡혀 있을 뿐 세세한 표현은 이루어지지 않아 조각은 투박해 보이면서도 어떤 면에선 조잡해 보였다.
이부키가 펄쩍 뛰었다.
“야, 이거 위험해. 진짜로 위험한 거 아니야?”
카스가가 어쩔 줄 모르고 눈을 굴렸다.
“그래도 강제로 시키는 바람에 억지로 가지고 나온 거니까 아마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
“무슨 소리야, 그래도 도로 가져다놔야지!”
잠시 고민하던 이부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았어, 내가 같이 가줄게! 내친 김에 제대로 사과도 드리자.”
카스가가 화들짝 놀라 되물었다.
“지, 지금?”
“당연하지. 가능하면 빨리 가져다 놓는 게 좋지 않아?”
카스가는 곧장 대답하지 않고 눈을 굴렸다. 그러더니 갑자기 한없이 소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저기…. 그렇게 큰일인가?”
“응? 당연하지. 아, 마침 저 언덕 위 아니야? 타이밍 좋네~ 잘됐잖아.”
아까 보이던 언덕이 코앞에 있었다. 일전보다 완만한 길이라 걷는데 별로 힘이 들지 않았다. 이부키는 속력을 냈다. 낙사주의 팻말이 붙은 경사면을 지나쳐 우다다 달려 올라가더니 어느 순간 뒤돌아서서 내려다보았다.
카스가는 아래쪽에서 뺀질거리고 있었다. 마지못해 올라오는 것 같긴 했지만 표정이 이상했다. 이부키는 건널목 너머로 보이는 신사의 입구를 가리켰다. 빨리 오라는 것처럼 팔을 흔들어대더니 먼저 신호를 건너 반대편으로 건너갔다.
카스가는 느릿느릿 뒤따르다가 결국 멈추어 섰다. 신호가 파란불이 되었지만 그는 움직이지 않고 이부키 쪽만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었다. 카스가를 소리쳐 부르던 이부키가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횡단보도를 건너왔다. 그는 카스가의 얼굴이 급격히 창백해진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카스가. 너 얼굴이 갑자기 왜 그래? 허옇게 질렸잖아.”
“이부키, 나 그냥 집에 갈래. 난 저기 들어가고 싶지 않아.”
“에, 그렇지만.”
“아침에도 억지로 저기 안에 들어갔다 왔단 말이야. 무서워서 가고 싶지 않아.”
“그러다 나중에 안에서 뭐 없어진 거 알려지면 분명 혼날 거야.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벌 받으면 억울하잖아! 나쁜 건 그 녀석들인데도!”
“상관없어. 그냥 돌아가자.”
카스가는 막무가내였다.
이부키는 신사 입구를 올려다보았다. 나무에 드문드문 가려진 붉은 토리이 너머로 배전이 우뚝 서서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 내가 대신 다녀올까?”
“뭐?”
느닷없이 이부키가 오른손을 펼치더니 손가락을 현란하게 움직이며 입으로 “푸슝~”소리를 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카스가가 얼빠진 얼굴로 보고 있으니 갑자기 번개 같은 움직임으로 그의 손에 들린 목상을 낚아채는 것이었다. 미처 말리기도 전에 이부키는 계단을 뛰어올라가면서 고개를 홱 돌리고 씩 웃었다.
“잠깐,”
“얼른 돌려놓고 올게!”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우다다 뛰어올라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