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노가타리 5»

시마이부 오컬트 AU «신리神籬 어지럽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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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바라는 난생 처음으로 위법 영역을 넘나들며 과속운전 중이었다. 오른손엔 캠코더를 쥐고 왼손으로만 핸들을 잡고 있었는데, 그것도 모자라 달리는 전철을 연신 흘끔거리며 위험천만한 질주를 이어가고 있었다.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한적한 도로여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그는 진작 교통사고를 냈을 것이다. 바닷바람이 머리카락을 사정없이 때리는 가운데 터널에 들어갔던 전철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자 캠코더가 쉴 새 없이 렌즈를 움직이며 초점을 잡으려고 애썼다.
그는 열차가 달리는 속도에 맞추어 차 속도를 늦췄다. 차량 몇 칸을 보내주고 나자 그것이 보였다. 희끄무레하게 일렁이는 반투명한 사람 형태가 여전히 차량 한쪽에 달라붙어 있었다. 누군가를 찾는 것처럼 고개를 길게 쭉 빼고 창가를 기웃대는 그것의 모습이 캠코더에 그대로 녹화되는 중이었다. 아니, 녹화되고 있는 건가? 맞지? 아아, 맞잖아. 칸바라는 흥분해서 그야말로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개자식들, 날 놓친 걸 후회하게 해주겠어!’
회사는 겁쟁이들이나 다니는 곳이다. 자질구레하고 하잘것없는 아이템 회의를 거친 후 48시간 동안 밤을 새서 만들어낸다는 게 고작 기존 대형 방송의 자투리 시간에 내보낼 10분짜리 ‘생활 속 지혜’ 코너 따위지 않은가. 더 큰 건수를 노려볼 만도 한데 그들은 인재를 데려다놓고도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법을 모른다. 아니, 심지어는 인재를 데려다놓고 허드렛일이나 시켜왔으니 알만하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형편없다. 칸바라는 더 대단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인데도.
그럴 운명이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에 부닥친 것이다. 이건 계시였다. 확신이 온몸에 피를 돌리는 게 느껴졌다. 거의 십 분 째 한 손으로 캠코더를 들고 있는데도 칸바라는 팔이 아프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벌써 이것에 관한 사업 구상과 코너 계획 따위가 잡동사니를 쏟아내는 박스처럼 어지럽게 펼쳐지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해안도로에 들어서면서 자잘한 언덕길이 많아지자 속력을 내기 쉽지 않았다. 칸바라는 멀어지는 열차를 애타는 눈으로 좇으며 운전하다가 하마터면 인도를 침입할 뻔했다. 차가 휘청거리며 바퀴가 순간적으로 헛돌았다. 손에서 놓친 캠코더가 아스팔트 위를 데굴데굴 굴렀다. 그는 욕지거리를 하다가 결국 갓길에 차를 세웠다. 열차는 완전히 멀어져 더는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칸바라는 차에서 내려 황급히 캠코더를 주워들었다. 캠코더는 개박살이 나있었다.
“젠장!”
칸바라가 세상에 저주를 퍼부으려는 그때, 눈앞으로 휙 하고 무언가 지나갔다. 너무 빨라서 거의 눈치채지 못할 뻔했지만 운 좋게도 칸바라는 그 움직임을 깨달았고 저도 모르게 고개를 홱 돌리면서 주의를 빼앗겼다. 잠시 후, 그는 멍한 얼굴로 더듬거리며 차에 올라탔다. 그러고는 시동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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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키는 계단을 내려오자마자 빠른 걸음으로 그곳을 벗어났다. 걷는 동안 점점 속력이 붙었고 종국에는 뛰고 있었다. 심장이 거칠게 맥박치기 시작하자 가슴을 짓누르는 묵직한 느낌이 어느 정도 가시는 것 같았다. 그는 턱 끝까지 숨을 몰아쉬면서 정신없이 팔다리를 움직였다. 바닷바람이 머리카락을 헤집는 게 느껴졌다.
‘믿어버렸는데.’
이부키가 생각했다.
‘이번에는 진짜로 믿었는데.’
미친 듯이 질주하는 차 한 대가 인도를 침입할 것처럼 휘청거리며 쌩 지나갔다. 이부키는 조금 더 달리다가 횡단보도 신호에 걸려 멈추어 섰다. 그는 거기서 헐떡이며 숨을 골랐다. 그러고는 신호가 바뀌자마자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가 역 근처에 도착했을 즈음엔 열차 한 대가 라이오카역에 정차해 있었다. 이곳에서 내리는 사람은 주민들뿐이었으므로 역사에서 빠져나오는 사람들은 몇 되지 않았다. 이부키는 횡단보도에 서 있다 말고 타이세이네를 보았다. 창백한 얼굴의 그들이 빠른 보폭으로 걸어왔다. 그러더니 맞은편 신호등 옆에 섰다. 그들은 너무 정신이 없는 나머지 이부키의 존재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사실 이부키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타이세이네가 아니라 그 뒤쪽의 무언가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아무것도 없었지만, 분명 ‘무언가가 있다’고 이부키는 느꼈다. 무언가가 타이세이네 바로 등 뒤에 서 있었다. 그러다 ‘이쪽’을 봤다. 무언가가 그를 바라보고 있음을 이부키는 느낄 수 있었다.
신호가 바뀌었다. 타이세이네는 좌우를 살필 여유도 없이 당장 보도로 내려왔다. 세 사람은 정신없이 옆을 스쳐가다가 이부키와 어깨를 부딪쳤다. 누군가의 휴대폰이 땅바닥을 굴렀다. 타이세이는 죄송합니다, 하고 중얼거리며 휴대폰을 향해 허리 숙였다. 그 순간 이부키는 누군가 새끼손가락을 훅 잡아당기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곤 저도 모르게 그들을 돌아보았다.
그때 세 사람을 쫓아 걷는 어떤 불투명하고 보이지 않고 결코 잡을 수도 없는 그것이, 설명할 수도 포착될 수도 없는 그것이, 그 ‘무엇’이 이부키를 통과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바람처럼 이부키의 귓가로 수많은 목소리들이 속삭였고 오감을 곤두세우게 했고 귀 기울이게 했다. 그것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깊은 슬픔과 고통을 알게 해주는 속삭임, 애달픔과 상실감이 무엇인지 알게 하는 속삭임이었다. 사람의 마음이었다. 잠시 후 ‘무엇’이 비틀거리며 빠져나갔고 이부키는 상념에서 벗어났다. 그는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그러고는 깨달았다.
“…카스가?”
좌측에서 타이어가 아스팔트 위를 미끄러지며 비명을 질렀다. 다음 순간 모든 상황이 슬로모션처럼 펼쳐졌다. 휴대폰을 주운 타이세이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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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는 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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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바보바보바보바보바보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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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을 수 있어? 생각 이전에 몸이 나가고 있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이부키는 그곳으로 손을 뻗고 있었다. 동시에 등 뒤에서 누군가 퍽 이부키를 밀쳤다. 시야가 빙그르르 돌면서 몸이 앞으로 넘어갔다. 헤드라이트가 코앞으로 닥쳐오면서 눈앞이 새하얘졌다. 코를 찌를듯한 흙냄새가 난 건 왜였을까. 하얀 손이 언뜻 보인 것도 같았다. 웃음소리와 웃음소리와 웃음소리.
“이부키!!!!”
누군가 그를 훅 잡아당기는 순간 끼이이익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퍼졌다. 차가 브레이크를 밟았다. 쿵 하고 무언가가 퉁겨져 나와 아스팔트 위를 데굴데굴 굴렀다.
시마와 이부키가 인도 위로 엎어졌다. 차가 주욱 미끄러졌다가 위태롭게 멈추어 섰다.
“타이세이!!!”
렌지와 와타루가 허겁지겁 횡단보도로 뛰어들었다.
타이세이는 머리를 감싼 채 등을 말고 주저 앉아있었다. 그를 스쳐간 차가 몇 미터 앞까지 미끄러진 상태였다. 아스팔트 위로 길게 바퀴자국이 남았다. 잠시 후 차문이 열리고 운전자가 비틀거리며 내렸다. 그는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차 앞으로 갔다가 아무것도 치지 않은 것을 확인하곤 타이세이에게 달려갔다. 뒤따라오던 차량 한 대가 천천히 멈추어 서더니 마찬가지로 운전자가 내렸다. 그는 휴대폰을 높이 들고 있었는데, 그가 동영상을 찍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렌지가 “어이!”하고 손가락질을 했다. “어이, 지금 뭐하는 거냐고.” “비켜.” “뭘 찍고 있는 거냐고, 어이!”
이부키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고개를 번쩍 들고 상황을 파악하려 했다. 시마가 그의 멱살을 붙잡고 귀청이 떠나가라 소리쳤다.
“얼간아!!!!!!!”
이부키는 얼빠진 표정으로 시마를 바라봤다.
“대체 무슨 정신으로 거기 뛰어든 거야? 너 네가 어떤 상태인지 알아? 생각이란 게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시마가 멱살을 쥔 손을 거칠게 흔들면서 씩씩거렸다.
“쉽게 생각하지 말랬지. 너 얕보는 거냐? 무슨 정신으로 그 녀석에게 덥석 부적을 넘겨준 거야. 그게 진짜로 필요한 게 누군데. 부탁을 받아서 물건을 두고 왔다고? 천벌 같은 거 받을 일 없다고? 멋대로 속 편하게 말하지 마! 이쪽 일에 상관해봤자 좋은 일 같은 거 없어. 우습게 여기지 마. 그냥 그쪽에서 살아. 남한테 왜 그렇게까지 신경 쓰는 거야… 너한테 엄청 많이 붙어있는 거 알아? 산 사람이 그러면 안 돼. 그래봤자 사람들은 말이야, 자기 좋을 대로 살고 좋을 대로 저지른다고. 결국 어울리는 녀석들끼리 어울리게 되는 거야. 사람 관계라는 건 그런 거라고.”
방학식 때의 일이 떠올랐다. 카스가가 쏘아붙이자 잠시간 정적이 흘렀다. 어색해진 분위기를 바로잡으려고 타이세이가 낄낄거리며 시마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가 우스갯소리를 하자 렌지와 와타루가 웃음을 터뜨렸다. 시마는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타이세이를 떼어냈다. 그는 카스가가 서 있는 곳에 대해 생각했다. 필요할 때만 곁에 달라붙어 치근거리는 타이세이와, 환호성을 지를 때면 얼굴이 빨갛게 물드는 혈기왕성한 렌지와, 눈을 굴리다 장난스럽게 씩 눈웃음을 짓는 와타루. 종종 그곳에서 동떨어지던 시마와 카스가. 세 사람의 등을 바라보며 엇갈려 걷던 둘은 한 번도 서로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시마는 개의치 않았다. 관계를 맺는 일의 자질구레한 무거움에 대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넌 그딴 건 전혀 신경 안 쓰니까.’ 아니, 신경 쓰니까 개의치 않으려는 것뿐이야. 시마는 자신이 한 번도 웃지 않았다는 걸 떠올려 냈다. 그러면 카스가는 언제나 그 얼굴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린다. 대화가 끊어지고 이야기는 닫힌다. 내가 너한테 상처를 줬다면 미안하게 됐다. 시마는 생각한다. 좀 더 대화해볼 걸 그랬네. 네가 그것을 불러오기 전에.
“그래도 넌 날 불러세웠잖아.”
시마는 자신이 여전히 이부키의 멱살을 쥐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너도 달려왔잖아, 여기까지.”
이부키가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면 말이야, 계속 믿어도 되는 거 아니야?”
뭘? 손에서 힘이 쭉 빠져나갔다. 이부키가 벌떡 일어나더니 시마에게 손을 내밀었다. 시야 한가득 손바닥이 불쑥 들어왔다. 시마는 가만히 그 손을 바라보다가 붙잡고 일어났다. 이부키가 씩 웃었다. 한바탕 혼쭐이 난 가쿠란 셔츠는 그야말로 엉망진창 구겨져 있었다.
“구해줘서 고마워.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진 전혀 모르겠지만.”
“시마!”
와타루가 허겁지겁 뛰어왔다. 거의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는 시마 옆에 멀뚱멀뚱 서서 자신을 바라보는 이부키를 발견하곤 잠깐 흠칫했다.
“카스가는?”
“집에 돌아갔어.”
와타루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좋을지 모르는 사람처럼 굴었다.
“다 알고 온 거야?”
“아니. 그냥 어떤 바보를 쫓다가 우연히.”
시마는 고개를 기울여 사고현장을 훑었다.
“타이세이는?”
“그게….”
와타루가 돌아보며 말했다.
“치이진 않았다고 하는데….”
“어. 무사한 것 같네.”
“하지만 분명 무언가 치였어. 쿵 소리가 났다고!”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내 말이. 운전자도 분명 뭔가 쳤다고 생각하더라. 그런데 블랙박스를 돌려도 아무것도 없고 그냥 쿵 소리뿐이야! 그거 확인하는 동안 운전자는 귀신이라도 친 것 같은 얼굴이었어….”
“음.”
시마는 눈을 가늘게 뜨고 차 주변을 살폈다.
“그래, 무언가 대신 치였어.”
“…카스가야.”
이부키의 중얼거림에 와타루와 시마가 동시에 그를 쳐다봤다.
이부키가 사고현장을 가리켰다.
“카스가가 있었어.”
“그, 그렇지만 방금 시마가….”
“아~ 저 녀석은 또 뭐야?”
시마가 투덜거리는 것과 동시에 렌지가 소리를 질렀다.
“한 번 해보자는 거냐, 이 자식아!”
렌지가 거칠게 팔을 휘두르자 휴대폰을 들고 있던 상대방은 어깨를 으쓱이더니 차로 돌아갔다. 흥분한 렌지가 그 뒤를 쫓았다. 재빨리 시동을 건 차는 약 올리는 것처럼 약간 후진했다가 쏜살같이 그 자리를 벗어났다. 렌지가 그 뒤에 대고 고래고래 욕지거리를 뱉어댔다.
“할 짓도 없다.”
시마는 보도블록 위에 내동댕이쳐진 야쿠오도시를 집어 들었다. 한쪽이 심하게 깨져 있었다. 시험 삼아 휘둘러보자 대나무 한 짝이 허공에서 덜렁거리다 간신히 딱 소리를 내며 반대편에 맞부딪쳤다. 이부키가 어! 하고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망가졌다! 시마도 참, 조심 좀 하지.”
“너 때문이잖아.”
“에, 그랬어?”
와타루가 소리쳤다.
“시마, 가는 거야?”
“가야지. 벌써 8시잖아.”
와타루가 간절하게 되물었다.
“액땜은?!”
시마는 작살난 야쿠오도시를 보란듯이 흔들었다.
“네, 오늘은 영업 끝.”
“그럼 나도 진짜로 바이바… 엑, 왜 잡아 끄는거야?”
“넌 따라와.”
뒤늦게 밀려오는 피로를 느끼며 시마가 말했다.
“이대로 집에 가면 너 주말 내내 가위 눌린다.”


16
20 : 14 : 09
[ 흔들리는 화면. 차 안. 거센 바람소리. 흐릿하게 밤바다 보인다. 잠시 후 초점이 잡힌다. 빠른 속도로 이동 중인 풍경. 헐떡이는 숨소리가 간간히 들려온다. 깜빡이를 켜고 좌회전. ]

20 : 14 : 42
[ 빛에 노출된 화면이 잠깐 하얘졌다가 서서히 돌아온다. 한산한 도로. 오렌지색 가로등 불빛이 빠르게 스쳐가고 있다. 잠깐 흔들리다 초점 돌아온다. 순간적으로 잡히는 긴 팔다리. 클로즈업하려고 하면, 화면이 통째로 뭉개진다. 다시 물러난다. 점점 형태가 드러난다. 하얀 사람? 아니, 무언가다. 무언가가 갓길을 달리고 있다. 차량 속도와 거의 동일하다. 電… 町… 역 간판이 지나고 우측으로 역사가 나타난다. 신호등이 언뜻 스쳐 지나간다. 이때 300m 앞에서 하얀 인영이 사라진다. 잠시 후 횡단보도 위에서 다시 나타나는 하얀 실루엣. 거칠게 흔들리는 화면. 끼이익 소리와 함께 앞 차가 급정거한다. 쿵!!! ]

20 : 15 : 04
[ 헐떡이는 소리. 카메라가 들어 올려진다. 횡단보도 위에 웅크린 채 주저앉은 교복 차림의 학생 보인다. 앞차에서 운전자가 비틀거리며 내린다. 카메라 화면 잠깐 내려간다. 문고리를 잡은 손. 깜빡이 켜진 소리와 함께 차 문 열리는 소리. 시야가 확 밝아진다. 학생 둘이 인도에 엎어져 있는 게 보인다. 횡단보도로 내려오던 다른 학생 하나가 카메라를 발견한다. “어이!” 손가락질을 하며 다가온다. 화면 다시 내려간다. “어이, 지금 뭐하는 거냐고.” “비켜.” “뭘 찍고 있는 거냐고, 어이.” 실랑이 이어지며 화면 마구 흔들리다가 암전. ]


17
두 사람은 주택가를 가로질러 완만한 오르막길에 들어섰다.
“시마, 어디까지 가?”
“…….”
“시이마.”
집마다 불이 밝혀져 있어 골목은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시간상 저녁을 먹고 가족끼리 여가시간을 가지고 있을 무렵이었으므로 마당 창이 활짝 열려 있거나 TV소리가 간간히 새어나오는 집도 있었다. 가로등을 지날 때마다 시마는 점점 더 피로한 모습이었다.
“시마, 엄청 피곤해보이네.”
“어. 누구 때문에.”
이부키가 키득거렸다.
“난 꽤 재밌었는데.”
“아, 그러셔?”
“아까 말이야, 시마 완전 히어로 같았어!”
긴 다리로 휘적휘적 앞서 걷던 이부키가 시마와 보폭을 맞추느라 걸음을 멈춰 세웠다. 이 과정이 몇 번 정도 반복되자 시마는 귀찮은 것처럼 곁눈질을 하면서도 아까보다 보폭을 빨리해 걷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부키가 덜컥 멈추어 섰다. 앞서서 걷던 시마가 뒤돌아보았다. 이부키가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또 뭐야?”
얼떨떨한 모습으로 서 있는 이부키는 좀 바보같이 보였다.
“뭐냐니까.”
“아니.”
이부키가 절레절레 고개 젓더니 냉큼 시마 곁에 붙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눈을 빛내며 헤헤 웃던 이부키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고 보니 둘이 전-혀 안 닮은 것 같네.”
“하?”
“아니, 본전 그림말이야. 그거 오로치랑 싸운 히어로 장남 아니야?”
이부키가 눈을 가늘게 뜨고 시마의 얼굴을 꼼꼼히 살폈다.
“하다못해 그 입에 점이라도 똑같이 찍혀 있었으면 비슷하다고 우겨봤을 텐데.”
“난 또 뭐라고…. 그런데 너 어떻게 그 이야기를 알고 있는 거야?”
“택시기사님이 들려줬는데.”
두 사람이 코너를 돌자 주민체육공원이 나타났다. 벤치에 앉아 스포츠백을 뒤적이던 아이들이 배드민턴 채를 들고 일어났다. 가로등 아래로 날벌레가 날아다녔다. 잠시 후 배드민턴공이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졌다가 퉁 소리와 함께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본전 안에 있는 그림은 오로치와 싸운 남자가 아니야. 그 사람은… 마을 사람들을 대신해서 제물이 된 청년들 중 하나야.”
시마가 말했다.
“여기 신사마다 한 명씩 모셔져 있어. 사람들이 신사에 가서 에니시츠무가미緣紬神님에게 인사드리는 건… 동시에 그들의 넋을 달래는 거야. 사실 이곳의 신사들은 언덕마다 앉아서 그들의 넋을 ‘누르고’ 있는 거나 다름없어. 그러니까 이 마을 경내에서 장난을 치는 건 정말로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인 거야. 신성한 동시에 살기가 있는 땅이니까. 무언가 불경한 게 들어오면, 내쫓기는 게 아니라 힘을 얻게 돼. 너 다시는 경내에서 그런 짓 하지 마.”
주민 공원을 지나치자 물 냄새가 났고, 곧이어 작은 연못이 나타났다. 작은 금붕어 몇 마리가 천천히 헤엄치고 있었다. 시마는 이부키를 데리고 연못에 놓인 가교를 건너 오솔길로 향했다. 곧이어 짧은 돌계단이 나타났다. 계단을 다 오른 시마는 이부키를 돌아보더니 여기서부턴 따라오지 않아도 된다고 얘기했다.
“싫어! 나도 볼래. 뭐 할 건데?”
“그럼 그러던가.”
이부키가 계단을 올라갔을 때 시마는 저만치 앞서 걷고 있었다. 이부키는 달라진 풍경에 놀라 멈추어 섰다. 계단 위는 숲이라기보다 잘 가꾸어진 정원처럼 보였다. 나무들이 길을 침범하지 않고 보기 좋게 가지를 드리우며 늘어서 있고 바닥은 돌로 포장되어 있었다. 드문드문 조도가 낮은 자주색 등불이 길을 밝히고 있어 늘어지는 사물의 그림자마다 살아있는 것처럼 신비롭게 일렁거렸다. 두리번거리며 시마를 따라잡은 이부키는 무언가 말하려다가 시마의 진지한 표정을 보곤 입을 다물었다.
길을 따라 걷다보니 작은 음수대가 세워진 둥그런 장소가 나타났다. 음수대에 맑은 물이 고여 있었다. 시마는 그 근처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땅을 파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충분한 깊이가 되자, 그는 주머니에서 목상을 꺼냈다. 작금의 소동을 일으킨 그 물고기-반 인간 형태의 목상이었다. 시마는 그것을 깊숙하게 파묻은 후 꼼꼼히 흙을 덮고 일어났다. 일련의 과정은 조용하고 침착하게 진행되었다. 시마는 그 앞에서 짧게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기도가 끝난 뒤엔 음수대에 동동 떠있는 바가지로 그 위에 물을 두 바퀴씩 뿌렸다.
두 사람은 길을 되돌아 그곳을 빠져나왔다.
“있잖아, 아까 뭐 한 거야?”
이부키가 들떠서 물었다.
“신에게 협박.”
“에에에?”
“을 빙자한 부탁.”
시마는 손에 묻은 흙을 털어내며 음산하게 말했다.
“저긴 할아버지가 관리하는 일종의… 음, 그래. 정원이라고 하자. 할아버진 저기를 카미조노라고 불러. 그리고 난 방금 널 그곳에 파묻고 오는 길이지….”
“너무해. 날 저주한 거야?!”
“비슷할 지도. 널 직접 신에게 부탁드리고 온 셈이니까.”
이부키는 잠깐 정지상태였다.
“그거 좋은 거 아냐?”
“글쎄. 신과 관계 맺는 게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어째서?”
시마가 발걸음을 멈췄다. 내려가는 계단 앞에 석상이 세워져 있었다. 아까의 목상과 굉장히 비슷한 형태였다. 잉어의 얼굴을 한 반인반수가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는데, 다만 목상과 차이가 있다면 비늘들이 좀 더 디테일하게 조각되어 있다는 것뿐이었다. 이쪽이 오리지널 같았다.
시마는 넥타이를 풀면서 말했다.
“신과 관계 맺는다는 건 이쪽에 가까워진다는 거야.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
이부키가 도리질을 했다.
“신의 영역에 들어서면, 그만큼 이쪽의 장난질에도 노출되기 쉬워진단 소리야. 너…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라서 한동안 그쪽에 액을 묶어놓고 부탁하긴 했지만… 솔직히 어떻게 될 진 모르겠다. 어쨌든 거기에 대한 책임은 질게.”
시마는 석상에 넥타이를 매기 시작했다.
“에. 뭐하는 거야. 석상꾸미기?”
“엔쥬히메가미緣紬神는 비단을 좋아하거든. 이건 비단은 아니긴 하지만. 빚을 지고만 있기 싫으니까 전령에게 이걸 주고 갈 거야.”
매듭을 짓는 손이 엉성해서 몇 번이고 미끄러졌다. 가만히 지켜보던 이부키가 히죽히죽 웃었다.
“헤에. 시마짱 넥타이 전혀 못 매는구나.”
“…….”
“그렇구만. 귀여운 구석이 있구만~”
“시끄러워.”
마침내 반인반수의 석상이 어설프게 넥타이를 맸다.
“엔쥬히메가미님, 저의 운명을 잘 부탁드립니다.”
이부키가 꾸벅 인사를 했다.
“가자.”
“엉.”
두 사람은 카미조노의 영역에서 완전히 빠져나왔다.
계단을 내려오던 이부키가 문득 떠오른 것처럼 물었다.
“아까 타이세이 대신 차에 치인 거 말이야. 역시 카스가의, 뭐라고 하지. 그래, 영혼 맞지?”
시마가 슬쩍 인상을 찌푸렸다.
“왜 그렇게 생각해?”
이부키는 아까 횡단보도에서 ‘무언가’와 몸을 겹치며 경험한 기묘한 순간에 관해 이야기했다.
“갑자기 엄청 슬퍼졌는데, 뭐랄까, 내 기분이 아니었어. 슬프지만 슬프지 않았달까? 아니, 슬픈 건 슬픈 거지만 말이야. 이건 내 기분이 아니니까 빨려 들어갈 필요는 없어, 라는 느낌.”
연못을 지나 주택가로 들어설 때까지 시마는 말이 없었다.
주민 공원을 지날 즈음 시마가 입을 열었다.
“그건 아마 카스가가 아니라 그 녀석이 불러낸 사념일 거야.”
“그럼 ‘진짜’ 카스가는 무사해?”
“응.”
“그럼 카스가는 역시 거짓말하지 않은 거네.”
이부키가 중얼거렸다.
“사념이란 거, 그런 거잖아? 엄청나게 화가 나거나 쓸쓸한 마음들이 떠돌아다니는 거잖아. 그런데도 그 녀석의 마음은 타이세이를 지켜주려고 했으니까… 역시 좋은 녀석인 거지?”
“아니. 그 전에 그 녀석이 오늘 경내로 뭘 불러왔는지 잊지 말아줬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시마의 목소리는 누그러져 있었다.
“사람의 마음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누군가를 구하는 동시에 떠밀기도 하는 거야. 너 같은 바보는 그 뒷면의 존재를 좀 기억할 필요가 있어.”
“됐어, 그런 건 질렸어.”
이부키가 묘한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실컷 봤으니까.”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이부키가 손을 쭉 뻗으며 기지개를 켰다.
“아아~ 카스가 녀석 어떻게 되려나.”
“알아서 하겠지. 거기서부턴 우리가 신경 쓸 영역이 아니야.”
“타이세이네는 카스가의 기분 같은 거 전혀 이해 못 하겠지?”
“그렇겠지.”
“에. 그럼 역시 나랑 친구하자고 해야겠다.”
“아니. 넌 그것보다 학교 일을 어떻게 수습할 지나 생각해. 전학 첫날부터 쌈박질하는 녀석이 어딨냐?”
“아차.”
이부키가 투덜거렸다.
“망했다, 주말 끝나고 학교 가기가 두렵구만~”
‘이 녀석… 전혀 걱정하는 투가 아니잖아.’
주택가 골목이 갈라지자 이부키가 멈추더니 “난 이쪽이야.”하고 반대편을 가리켰다.
“딴 데 새지말고 곧장 집에 들어가.”
“네엡.”
그러나 몇 걸음 걷기도 전에 이부키는 멈추어 섰다. 홀린 것처럼 깜빡이는 가로등 아래를 빤히 응시하던 이부키가 잠시 후 시마를 쳐다보며 어둠 속을 가리켰다.
“시마짱, 저기 앉아있는 여자애… 길 잃은 걸까?”
시마는 그곳을 바라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뭔가가 있을 거라는 확신은 있었지만, 어쨌든 시마에겐 보이지 않았다.
문득 시마는 이부키의 주변으로 뿜어져 나오던 시커먼 액의 기운이 방향을 달리해 안쪽으로 ‘잡아당기듯’ 빨려들어가기 시작한 것을 깨달았다. 그 역행하는 힘이 시마의 안쪽에 눈 감고 있는 신기를 잡아당기면서 천천히 사방의 어둠을 깨우고 뒤흔들고 주목시키고 있었다. 신은 이부키의 액을 어떻게 하고 싶은 걸까? 에니시츠무가미는 부탁을 받아들이고 이부키의 새끼손가락을 가져갔지만, 동시에 시마에게 말도 안 되는 과제를 내린 듯했다. 그 증거로 시마의 신기가 조금씩 깨어나고 있었고, 그는 여전히 야쿠오도시를 왼손에 쥐고 있었다. 원래 쥐고 있어야만 했던 그 손에.
시마가 “아아”하고 탄식했다.
“너 정말 쓸데없는 체질이 돼버렸구나.”
귀찮은 일이 시작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 여는 노래

1 오컬트 사건에 엮여 졸지에 귀신 꼬이는 체질이 된 이부키와 그와 얽힌 시마의 우당탕탕 즐거운 오컬트 옴니버스 시리즈~~ 를 계획하고 쓰기 시작했는데... 시작부터 너무 길어졌네요... 너무.. 창피..하네요.. (ㅋㅋ) 과연 제가 이 뒤에도 뭔가 쓸진 모르겠지만 ㅠㅠ 흑흑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창피해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이.. 심정..
2 라이오카와 얽힌 토지신과 오로치 신화는 일본 야마타노오로치vs스사노오 설화 중 한 장면을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거대한 뱀이 술통을 마시고 잠드는 장면' 외에는 전부 창작입니다. 마을 지명, 시마가 쓰는 대나무 부적대(사실상 방망이인듯)... 신사 설정, 신사 구조와 경내 규칙... 등등은 쓰면서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 지어냈습니다. 고증은 다메다메 다메요 다메나노요~...
3 시마가 읊은 불경은 실제 항마진언降魔眞言의 일부 한자 or 뜻을 개변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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