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대부고 오케스트라부│하필 비가 오다니
비는 오후부터 침침하게 내렸다. 아침부터 흐리더니 이럴 줄 알았다. 주예민은 얌전히 접이식 우산 케이스를 벗겨냈다. 꿉꿉하게 들러붙은 공기가 지독하게 불쾌했다. 여하튼 여름이라는 계절은 이게 딱 질색이었다.
서관 입구로부터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쏟아져 나온다. 불평불만과 한숨소리가 빗소리에 묻혔다. 활짝 열린 시청각실로 덥진 않지만 차갑다고도 할 수 없는 에어컨의 냉기가 조금씩 쏟아져 나왔다. 뒷정리를 하는 소수의 단원들을 제외하곤 대게의 단원들이 우산을 펼치고 각자의 길로 사라지는 중이었다. 습도 때문에 다들 썩 좋은 얼굴은 아니었다. 예민은 물끄러미 운동장을 채우는 형형색색의 우산들을 바라보다가 우산을 펼쳤다. 12시 30분. 오케스트라 연습이 끝났다.
“주예민 집 가냐!”
도원은 현관 쪽에서 우산을 털고 있었다. 접이식 우산이 아니라 활이 튼튼해 보이는 고급스러운 우산이다. 저거 또 쓸데없이 비싼 걸 들고 있네. 예민은 도원의 우산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한다.
“샀어?”
“우산?”
“어.”
도원은 시험 삼아 우산을 펼쳐 보이며 예민에게 씩 웃어준다. 덥다고 걷어 올린 교복 바지는 여전하고 조금 둔해 보이는 인상도 그대로다. 방학이 끝나가고 있는데 도원이나 예민이나 변한 것이 없었다. 어쩌면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너무 자주 봤던 걸지도 모른다. 오케스트라 연습은 매일 같이 이 더위에도 단원들을 불러들였다. 예민은 투덜거리면서도 빠지지 않고 의자에 앉아 자리를 지키는 멤버 중 하나였다. 도원은… 그러게. 연습 자주 왔었나. 늘 앞좌석에 앉아 있는 예민은 한참 뒤에 앉아 있는 도원의 출석 여부를 잘 확인하지 않았다. 그래도 저 얼굴이 익숙한 걸 보면 확실히 자주 보긴 본 모양이지.
어쨌든 방학 끝나면 더 질리도록 볼 얼굴이다. 제2외국어 시간을 제외하면 저 녀석과 찢어질 일이 별로 없었다. 같은 반 친구라는 관계는 뭐가 되었든 계절을 두 번은 더 넘어야 비로소 끝날 일이었다.
도원은 넓적하고 튼튼한 우산을 썼다. 울퉁불퉁한 운동장 곳곳에 벌써부터 물웅덩이가 져있었다.
“오늘은 버거X 안 가?”
“비 오는데 귀찮게 거길 왜 들러, 그냥 집 가야지.”
어김없이 두꺼운 양말을 신고 왔던 예민은 점점 찝찝해지는 운동화 속에서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빠르게 걸었다. 버스 정류장까지 단숨에 걸을 생각이었다.
예민이 투덜거렸다.
“아, 진짜 별로다. 그냥 연습 좀 일찍 끝내주지, 진짜 30분에 딱 끝냈네.”
“연습 시간 미뤘으니까 어쩔 수 없잖아.”
도원이 지적했지만 예민은 여전히 뚱한 얼굴이었다.
“어차피 에어컨 없이 30분은 했잖아. 그럴 거면 차라리 원래 시간대로 하라고. 어차피 틀어도 엄청 시원하고, 그런 건 아니잖아.”
사실이 그랬다. 10시에 시작하든 10시 반에 시작하든 왁자지껄한 공간에서 에어컨이란 별로 쓸모가 없는 것이다. 더위의 문제가 아니라 습도의 문제였다. 끈적해지기 시작한 피부의 촉감은 연주를 몇 바퀴씩 돌다 보면 잊혀 졌지만 쉬는 시간이 다가올수록 잊었던 만큼 공고하게 의식되었다. 짧은 휴식시간마다 화장실로 달려가 손목, 손등과 팔, 뺨과 머리카락에 정신없이 찬물을 쏟아 붓고 창문을 열어 땀을 식혔다. 그리고 다시 바이올린을 잡고 연주를 한다. 그런 나날들이었다. 질긴 여름방학이여! 다만 오늘은 비가 내린다는 사소한 날씨의 변수만 존재할 뿐이다.
“아, 비는 진짜 또 왜 오고 난리야.”
더위보단 습도가 더 질색인 예민이 쉼 없이 투덜거렸다. 도원은 그것이 익숙해서 별 대꾸 없이 걷기만 했다. 정류장까지 도착해서야 둘은 나란히 우산을 접었다. 바닥에 우산을 털어냈다. 물방울이 붙은 손바닥까지 털고 전광판을 보니 ‘잠시 후 도착’에 예민이 기다리는 버스 번호가 떠있었다.
“야, 정도원.”
도원은 버스 오는 쪽을 바라보며 대답하지 않았다. 주예민이 신경질적으로 재차 불렀다.
“야!”
“어? 나? 왜.”
도원이 느릿느릿 고개를 돌렸다. 건너편 신호등에 멈춰선 예민의 버스가 보였다. 비 젖은 아스팔트를 구르는 바퀴들은 쏴아, 하고 시원한 소리를 냈다. 매미들은 울지 않는다. 비 오는 날엔 그게 좋았다.
예민은 우산대를 접으며 버스 오를 준비를 했다.
“나 먼저 간다.”
“버스 왔어?”
“저게 내 버스야.”
도원은 그가 턱짓으로 가리키는 건너편의 마을버스를 바라보았다. 뒤통수를 끌어 까만 고무줄로 묶은 도원이 연갈색 머리카락이 달랑거렸다.
예민은 툭, 도원의 어깨를 가볍게 치며,
“내일 보자.”
라고 뱉곤, 문득, 그러니까 내일이 개학이라는 것을 깨닫곤 서글퍼진다. 결국 방학을 이렇게 소모해버린 자신도 기껏 방학 마지막 날인데 비나 쏟고 있는 하늘도 전부 다! 그러니까 정말로 오늘은 짜증날 일들이 잔뜩인 것이다.
도원은 그런데도 시원하게 웃기만 했다.
“그래, 내일 보자, 주예민.”
쟤는 뭐가 좋아서 저렇게 웃나. 절로 한숨이 나왔다. 내일이면 또 지겹도록 저 얼굴을 보겠구나. 딱히 도원이 싫다는 건 아니었지만, 도원의 얼굴을 평일 내내 봐야한다는 것은 곧 개학을 의미했기 때문에 주예민은 그 사실 자체로도 이미 퍽 다운되어 있었다.
신호가 바뀐다. 녹색 버스가 정류장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며 예민은 호주머니에서 교통카드를 꺼냈다. 끈적거리는 팔뚝, 꾸리꾸리하고 꿉꿉한 날씨. 한 것도 없는 방학 마지막 날의 빗줄기는 조금씩 옅어지고 있었다. 여하튼 개학 하루 전에 내리는 비는 재수가 없었다.
2015/08
서관 입구로부터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쏟아져 나온다. 불평불만과 한숨소리가 빗소리에 묻혔다. 활짝 열린 시청각실로 덥진 않지만 차갑다고도 할 수 없는 에어컨의 냉기가 조금씩 쏟아져 나왔다. 뒷정리를 하는 소수의 단원들을 제외하곤 대게의 단원들이 우산을 펼치고 각자의 길로 사라지는 중이었다. 습도 때문에 다들 썩 좋은 얼굴은 아니었다. 예민은 물끄러미 운동장을 채우는 형형색색의 우산들을 바라보다가 우산을 펼쳤다. 12시 30분. 오케스트라 연습이 끝났다.
“주예민 집 가냐!”
도원은 현관 쪽에서 우산을 털고 있었다. 접이식 우산이 아니라 활이 튼튼해 보이는 고급스러운 우산이다. 저거 또 쓸데없이 비싼 걸 들고 있네. 예민은 도원의 우산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한다.
“샀어?”
“우산?”
“어.”
도원은 시험 삼아 우산을 펼쳐 보이며 예민에게 씩 웃어준다. 덥다고 걷어 올린 교복 바지는 여전하고 조금 둔해 보이는 인상도 그대로다. 방학이 끝나가고 있는데 도원이나 예민이나 변한 것이 없었다. 어쩌면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너무 자주 봤던 걸지도 모른다. 오케스트라 연습은 매일 같이 이 더위에도 단원들을 불러들였다. 예민은 투덜거리면서도 빠지지 않고 의자에 앉아 자리를 지키는 멤버 중 하나였다. 도원은… 그러게. 연습 자주 왔었나. 늘 앞좌석에 앉아 있는 예민은 한참 뒤에 앉아 있는 도원의 출석 여부를 잘 확인하지 않았다. 그래도 저 얼굴이 익숙한 걸 보면 확실히 자주 보긴 본 모양이지.
어쨌든 방학 끝나면 더 질리도록 볼 얼굴이다. 제2외국어 시간을 제외하면 저 녀석과 찢어질 일이 별로 없었다. 같은 반 친구라는 관계는 뭐가 되었든 계절을 두 번은 더 넘어야 비로소 끝날 일이었다.
도원은 넓적하고 튼튼한 우산을 썼다. 울퉁불퉁한 운동장 곳곳에 벌써부터 물웅덩이가 져있었다.
“오늘은 버거X 안 가?”
“비 오는데 귀찮게 거길 왜 들러, 그냥 집 가야지.”
어김없이 두꺼운 양말을 신고 왔던 예민은 점점 찝찝해지는 운동화 속에서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빠르게 걸었다. 버스 정류장까지 단숨에 걸을 생각이었다.
예민이 투덜거렸다.
“아, 진짜 별로다. 그냥 연습 좀 일찍 끝내주지, 진짜 30분에 딱 끝냈네.”
“연습 시간 미뤘으니까 어쩔 수 없잖아.”
도원이 지적했지만 예민은 여전히 뚱한 얼굴이었다.
“어차피 에어컨 없이 30분은 했잖아. 그럴 거면 차라리 원래 시간대로 하라고. 어차피 틀어도 엄청 시원하고, 그런 건 아니잖아.”
사실이 그랬다. 10시에 시작하든 10시 반에 시작하든 왁자지껄한 공간에서 에어컨이란 별로 쓸모가 없는 것이다. 더위의 문제가 아니라 습도의 문제였다. 끈적해지기 시작한 피부의 촉감은 연주를 몇 바퀴씩 돌다 보면 잊혀 졌지만 쉬는 시간이 다가올수록 잊었던 만큼 공고하게 의식되었다. 짧은 휴식시간마다 화장실로 달려가 손목, 손등과 팔, 뺨과 머리카락에 정신없이 찬물을 쏟아 붓고 창문을 열어 땀을 식혔다. 그리고 다시 바이올린을 잡고 연주를 한다. 그런 나날들이었다. 질긴 여름방학이여! 다만 오늘은 비가 내린다는 사소한 날씨의 변수만 존재할 뿐이다.
“아, 비는 진짜 또 왜 오고 난리야.”
더위보단 습도가 더 질색인 예민이 쉼 없이 투덜거렸다. 도원은 그것이 익숙해서 별 대꾸 없이 걷기만 했다. 정류장까지 도착해서야 둘은 나란히 우산을 접었다. 바닥에 우산을 털어냈다. 물방울이 붙은 손바닥까지 털고 전광판을 보니 ‘잠시 후 도착’에 예민이 기다리는 버스 번호가 떠있었다.
“야, 정도원.”
도원은 버스 오는 쪽을 바라보며 대답하지 않았다. 주예민이 신경질적으로 재차 불렀다.
“야!”
“어? 나? 왜.”
도원이 느릿느릿 고개를 돌렸다. 건너편 신호등에 멈춰선 예민의 버스가 보였다. 비 젖은 아스팔트를 구르는 바퀴들은 쏴아, 하고 시원한 소리를 냈다. 매미들은 울지 않는다. 비 오는 날엔 그게 좋았다.
예민은 우산대를 접으며 버스 오를 준비를 했다.
“나 먼저 간다.”
“버스 왔어?”
“저게 내 버스야.”
도원은 그가 턱짓으로 가리키는 건너편의 마을버스를 바라보았다. 뒤통수를 끌어 까만 고무줄로 묶은 도원이 연갈색 머리카락이 달랑거렸다.
예민은 툭, 도원의 어깨를 가볍게 치며,
“내일 보자.”
라고 뱉곤, 문득, 그러니까 내일이 개학이라는 것을 깨닫곤 서글퍼진다. 결국 방학을 이렇게 소모해버린 자신도 기껏 방학 마지막 날인데 비나 쏟고 있는 하늘도 전부 다! 그러니까 정말로 오늘은 짜증날 일들이 잔뜩인 것이다.
도원은 그런데도 시원하게 웃기만 했다.
“그래, 내일 보자, 주예민.”
쟤는 뭐가 좋아서 저렇게 웃나. 절로 한숨이 나왔다. 내일이면 또 지겹도록 저 얼굴을 보겠구나. 딱히 도원이 싫다는 건 아니었지만, 도원의 얼굴을 평일 내내 봐야한다는 것은 곧 개학을 의미했기 때문에 주예민은 그 사실 자체로도 이미 퍽 다운되어 있었다.
신호가 바뀐다. 녹색 버스가 정류장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며 예민은 호주머니에서 교통카드를 꺼냈다. 끈적거리는 팔뚝, 꾸리꾸리하고 꿉꿉한 날씨. 한 것도 없는 방학 마지막 날의 빗줄기는 조금씩 옅어지고 있었다. 여하튼 개학 하루 전에 내리는 비는 재수가 없었다.
2015/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