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문실»
심문실 복도_
복도를 걷는 동안 아주 오랜만에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이 선택을 감당할 자신이 있는가? 그럴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래서 이번엔 반대편에 나를 데려다놓고, 코스챠의 심문이 끝날 때까지 대기하는 내 자신을 상상해본다. 부사관이 갑자기 멈추어 선 나를 돌아본다.
나는 아주 쉽게, 상상한다. 나는 부러진 팔과 다리, 깨진 이마와 피로 흥건한 뒤통수, 매몰된 어깨를 가진 코스챠를 상상할 수 있다. 사람을 많이 죽여왔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많이 저지른 건 주먹이나 발, 곤봉과 총부리를 이용해 때려눕히거나 골절시키거나 머리를 터뜨려 한 인간을 죽느니만도 못 하게 만드는 일이다. 사람들이 기능을 상실하고 바닥에 쓰러지는 수많은 장면이 내 안에 켜켜이 쌓여있다. 코스챠를 떠올리는 일은 아주 쉽고, 그 장면들을 떠올리는 일 역시 쉽기 때문에, 코스챠 위에 그 이미지를 씌우는 일 역시 어렵지 않다. 코스챠가 죽는 장면을 상상하는 일 또한.
중요한 건 상상력이 아니라 마음의 문제일 지도 모르겠다.
이제 나는 심문실 입구를 노려본다. 나는 무장한 상태다.

입구_
가르강튀아 헌병단들에게는 고질적인 습관이 하나 있었다. 심문실에 들어가기 전, 반드시 고열량의 초콜릿 바를 하나씩 까서 먹는 것이다. 처음 심문실에 배치를 받았을 때, 나를 가르치던 RTB.E가 주머니에서 자연스럽게 황금빛 비닐로 포장된 트윅스 바를 꺼내는 것을 보고 당황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RTB.E가 트윅스 바를 해치우는 동안 심문실 입구를 지키는 부사관들은 미동도 없이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런 일들이 아주 익숙해보였다. RTB.E는 바짝 긴장한 채 빳빳하게 굳어있는 나를 햇병아리 보듯 하다가, 선심을 쓰듯 손을 뻗어 어깨를 툭툭 쳤다. 그리고는 손을 내밀라고 명령했다.
그가 트윅스 껍질을 쥐어주며 말했다.
“나는 이게 그나마 제일 맛있단 말이지.”
그러나 그 뒤에도 나는 심문에 임하기 전에 무언가를 먹은 기억이 없다.
주머니에서 트윅스 바를 꺼내는 동안 RTB.E와 처음으로 심문실에 들어가던 순간을 떠올렸다. 가르강튀아의 심문실은 조도를 조절하는데 특별히 신경을 기울였으므로 언제든 깜깜하거나 눈부시게 밝을 수 있었다. 낮과 밤을, 시간의 경과를 구분하거나 인식하지 못 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심문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폭력과 함께 수반되는 시간성이었다. 언젠가는 심문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으로부터 최대한 빨리 떨어뜨리도록 만드는 게 조도 시스템의 존재 이유였다. 그렇게 많은 폭력을 휘두르지 않아도 적당한 선에서 대부분의 죄수들은 공포에 질렸다. 가르강튀아가 주는 위압감 때문도 있었을 것이다. 죄수를 심문하던 RTB.E가 마침내 곤봉을 꺼내들었을 때에도 놀라지 않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한 인간이 기능을 잃고 무참히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부사관이 나를 주시하고 있다. 트윅스 껍질을 까려던 손끝이 하얗게 질려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나는 경련하는 손을 숨기기 위해 다시 장갑을 끼고, 트윅스를 집어넣는다. 그러자 마치 숨을 껍질을 얻은 것처럼 편안해졌다. 표정을 숨기는 일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폭발 정황에 대한 심문을 받는 동안, 내가 중얼거린 말에 관해서도. “제국에 대한 충성심을 증명할 기회를 주세요.”
나는 코스챠의 죽음을 손쉽게 상상하지만, 아무도 코스챠를 죽일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심문실에 끌려가는 일이 무엇인지 안다.
그러므로 이 자리에 서있다.

심문실_
코스챠가 빛 속에 앉아있었다. 입구가 어두웠으므로 나는 그림자 속에 숨어 그 애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었다. 좌측 검은 유리 너머로는 제라스 부함장이 서있었고, AI가 동작하고 있음을 알리는 불빛이 주기적으로 머리 위에서 깜빡이는 게 보였다. 문이 열렸다 닫힌 소리가 들렸기 때문에 코스챠가 고개를 들었다. 그 애는 미동도 없이 내 쪽을 똑바로 응시하더니, 어둠 속에서도 나를 발견할 수 있다는 얼굴을 했다. AI가 심문 시간을 알리며 나를 빛으로 이끌었다. 탁자 앞으로 걸어들어온 내 모습을 주시하는 제라스 부함장의 시선을 느낀다. 나는 어느 곳에서도 안전하지 않다.
“느세파 소위,”
지난 5년 동안 내가 숱하게 벌여온 일을 생각해본다.
스위치를 내리는 일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1시간_
나는 코스챠가 로에 대해 진술하는 것을 듣는다.
제대로 듣지 않는다. 나는 지시를 기다리고 있다.
진술이 끝나기 직전, 제라스가 고개를 까딱인다.
나는 무정함으로 무장한다. 곤봉을 쥐고 일어난다.
다가간다.
다가가서 곤봉을 높게 쳐든다.
숨쉬지 않고,
스위치를 내린다.
눈앞이 깜깜해지는 순간 나는 곤봉을 휘두른다. 무너지는 소리가 아득한 곳에서 들려온다. 의자가 통째로 주저앉아 내 발등을 내리찍는 게 느껴진다. 발등이 삽시간에 흥건해진다. 내 피인지 코스챠의 피인지 모른다. 나는 휘두른다. 나는 휘두르고,
나는 휘두른다. 멈추지 않는다. 제라스가 지시를 걷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멈추지 않는다. 이곳의 모든 눈이 내 얼굴과
표정과
손과
발을
감시하고 지켜보고 판단하기 때문에 나는 멈추지 않는다.
나는 코스챠의 옆구리를 걷어차고 주먹으로 어깨를 내리찍는다. 나는 나에게 저항할 수 없는 인간을 이렇게 다루는 인간이다. 나는 코스챠의 멱살을 잡아 벽으로 집어던진다. 나는 무엇이 정의인지 아는 인간이다. 나는 코스챠의 신음소리를 듣는다. 나는 정의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지 아는 인간이다. 나는 코스챠가 주저앉는 것을 본다.
가르강튀아를 위하여
제국을 위하여
나니아를 위하여.

부디
부디 나의 정의가 평화롭기를.

쉬는 시간_
멍한 기분으로 심문실 바깥 의자에 주저앉았다. 땀이 비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모자를 벗고 땀을 닦아냈다. 이마와 눈가를 훔치고 주먹을 쥐고 인중을 닦아낸 뒤 주머니에서 트윅스를 꺼냈다. 황금색 포장지를 까는 동안 RTB.E와 다른 헌병대원들이 종종 심문실 의자에 주저앉아 다리를 벌리고 등을 기댄 채 초콜릿 바를 씹어먹던 장면을 떠올렸다. 그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심문은 힘든 일이다. 제대로 열량을 보충하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을 것이다. 고작 2시간이었는데도 말이다. 땀이 자꾸만 눈가에 맺혔다. 땀과 피 때문에 장갑을 벗기 조금 힘들었다. 손이 벌벌 떨리고 있었지만 곧 괜찮아졌다.
나는 정면을 응시한 채로 초콜릿 바를 입에 욱여넣었다. 뻑뻑해서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으므로 노력할 필요가 있었다. 트윅스는 내 취향이 아니었다. 맥없이 달달한 초콜릿이 끈적끈적한 시럽과 함께 혓바닥 위로 녹아내렸다. 부사관이 나를 괴물보듯 했다. 표정없이 씹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고개를 숙이다 말고 눈가에 맺힌 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헐떡이기 시작하자 부사관이 다가왔다.
“중위님, 심문 교대하시겠습니까?”
나는 손으로 부사관을 뿌리치면서 남은 트윅스를 전부 입안에 욱여넣고 씹었다. 잘 씹히지 않았으므로 손바닥으로 끊임없이 밀어넣었다. 벌벌 떨리는 손가락 사이로 아몬드 부스러기가 우수수 떨어졌다. 입밖으로 튀어나오는 초콜릿 바를 두 손으로 욱여넣고 있자니 손바닥이 금세 끈적끈적해졌다. 헐떡이는 숨소리 사이로 지저분하게 씹는 소리가 들렸다. 머릿속으로 무언가 부수고 씹고 쪼개는 소리가 울렸다. 나는 쉴 새 없이 뺨과 입술을 매만지며 트윅스를 안으로 욱여넣었다. 손등으로 인중을 훔치자 부사관이 굳은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트윅스를 삼키고는 중얼거렸다.
“꺼지십시오, 부사관.”
손을 내려다보니 핏자국으로 인해 진작부터 엉망이었다.

3시간_
슬슬 그 시간이 오는가 싶더니 어느새 나는 내 등을 보고 있었다. 아나렉샤 중위가 곤봉을 들고 서서 심문 대상의 몸을 걷어차는 중이었다. 나는 탁자로 걸어가 자리에 앉았다. 아나렉샤 중위가 코스챠 소위를 붙잡아 의자에 던져놓았을 때, 나는 인중이 피로 흥건한 코스챠의 얼굴을 마주볼 수 있었다. 아나렉샤 중위가 곤봉으로 탁자를 두들겼다. 나는 그녀가 뻣뻣하게 긴장한 상태로 심문실 바깥 유리에 서있는 부함장과, 상단의 AI를 의식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조심하는 게 좋아, 아나렉샤.
나는 나의 옆모습을 보며 충고했다.
다리는 부러뜨리면 안 돼.
“팔도.”
아나렉샤 중위가 중얼거리며 우측에 위치한 검은 유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팔도 부러뜨려야 할까요?”
제라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아나렉샤 중위가 곤봉을 고쳐쥐었다.
나는 무감하게 모든 장면을 지켜보았다. 한 인간이 폭력 앞에 굴복하는 것은 무척 안타깝고 두려운 장면이다. 매번 이곳에서 아나렉샤를 지켜보면서 나는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로웠다. 폭력은 아나렉샤의 것이지 나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코스챠는 이제 아나렉샤를 미워하겠지만 나를 미워하지는 않는다. 그를 죽일 만큼 몰아붙이고 있는 사람은 아나렉샤이지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전의 일도, 그 이전의 일도 마찬가지의 이야기다. 사람을 죽이거나 학대한 사람은 아나렉샤이기 때문에, 죽을 만큼 맞거나 학대받은 사람은 아나렉샤이기 때문에, 나의 시절은 무고하고 안전하다. 정원으로 가고 싶다. 누군가에게 어깨를 내주거나 어깨를 빌려 번갈아 잠을 청하던 곳으로. 물이 튀기고 빛이 흘러내리는 공간으로. 나와 아나렉샤가 한 몸에 존재하고 영원히 그럴 것이라 믿던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다. 좋은 시절로. 지나가기엔 아쉬운 시절로.
나는 아나렉샤 중위가 콘스탄틴 소위를 벽으로 밀어붙이는 것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콘스탄틴의 얼굴이 어떤 모양새가 되었는지 보이지 않는다. 아나렉샤가 가려준다.
심문이 길어질수록 아나렉샤는 눈앞의 사람을 종종 구분하지 못했다. 시야가 멀어져 사물과 인물을 뭉개놓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나렉샤가 제정신을 차리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폭력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고, 따라서 때리거나 때려선 안 되는 부분을 구분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 곁에 서서 격려의 말을 내놓는다. 그러다 엉망진창으로 구겨진 코스챠를 내려다보고 조금 놀란다. 충격을 받기 직전, 나는 이것이 코스챠가 아니라 느세파 소위라는 것을 깨닫고 다시 안전해진다. 그러다 그것을 본다.
나는 느세파 소위가 시선을 들고 입모양으로 중얼거리는 것을 본다.
그가 나를 부르는 것을 본다.
아나렉샤의 손에서 곤봉이 흘러내린다. 순간, 나는 빨려들어간다. 다시 그 몸으로. 폭력의 생산지로. 굴레로. 내가 가고 싶지 않았던 내 안으로 빨려들어가 그 눈으로 본다. 나는 코스챠가 바닥에 쓰러지는 매순간 나를 올려다보던 눈과 피가 흥건한 바닥과 헐떡이는 숨들과 슬픔과 고통과 일그러지는 표정들을 본다. 나는 코스챠가 나를 부르기 위해 매순간 입을 벌렸다 닫는 것을 본다. 내가 아나렉샤임을 증명하는 시선을 본다. 그 시절을 간직한 자가 나를 불러와 이곳에 세워놓는 것을 본다. 나는 내가 저지른 짓을 본다. 내가 정의를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을 본다. 정의에 대해 단 한 번도 제대로 고민하지 않았으므로 이르른 오늘 날을 본다. 나를 본다.
나는 코스챠의 눈으로 나를 본다.
“보지 말아줘….”
너무 작게 흐느껴서 들리지도 않는 말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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